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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 박하림 Mar 23. 2020

00. 어정쩡한 글쓰기

남들이 읽었으면 좋겠지만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나를 위해서 쉬는 숨... 이건 나를 위해서 쉬는 숨...'


나는 몸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을 하고,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는 약을 먹는다. 적어도 자기돌봄에 관련된 나의 모든 결정은 몸과 정신의 이분법에 근거해왔다.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몸을 돌보고, 몸의 건강을 위해서 마음을 돌보는 일은 내게 너무 낯설다. 요가에서 말하는 '몸과 마음의 균형'은 언젠가 들었던 '정반합의 변증법' 만큼이나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지난 몇주 간 나는 정신줄을 잡는 데에 정신이 팔려 정신줄을 놓은 채로 지냈다. 말장난 같지만 '정신 차려야 해!'라는 압박감에 매몰될 때, 바로 그때가 슬럼프의 바닥을 치는 때이다. 나 자신과 20년 하고도 수년을 지내고도 나는 아직 슬럼프에 휘말리는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 그나마 기특한 건, 맷돌 같은 슬럼프에 곱디 곱게 갈려나가면서도 언젠가의 나 자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분투해온 결과, 나는 집에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40분 짜리 요가를 하고 있다.


만오천원 주고 산 중고 모니터로 영상을 보며, 넘어가지 않는 다리를 넘기고 돌아가지 않는 허리를 돌리려 낑낑대기를 일주일, 그제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현타가 먼저 왔다. 도대체 이효리가 말하는 요가의 맛이 왜 내게는 느껴지지 않는 거지? 이거 그냥 너도 나도 유행 따라서 하는 거 아니야? 부처님 있을 때부터 요가가 유행했을 테니까 참 유행이 오래도 간다. 


내게 요가의 맛을 알려주고 싶어했던 친구 민지에게 아이메세지를 남겼다. 

요가 내게는 너무 어려워. 나는 아직도 번아웃인 것 같아.

아마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을 민지는 점심시간 즈음으로 생각되는 시간에 이런 답장을 보냈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에서 선생님이 '나마스테'라는 말에 대해 설명해주신 적이 있어. '당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든,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이든, 나는 지금의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요가는 그런 사랑을 나 자신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호흡하면서 이어가는 거래. 사실 우리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숨을 쉬는 시간은 잘 없잖아."


나를 위해 쉬는 숨? 숨은 불수의근들이 알아서 쉬어주는 거 아닌가? 불수의근들의 운동에 의식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가? 아니면 호흡을 불수의근에만 맡기지 말고 수의근을 동원한다는 건가? 나의 뇌는 오늘도 물음표 살인을 할 건수를 잡는데 성공했지만, 나는 떠오르는 의문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당분간 공부할 때 빼고는 의문이 생겨도 무시하기로 했다. 내 생각들을 적절히 무시하는 법을 연습 중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요가는 다리가 넘어가든 말든, 허리가 돌아가든 말든, '나를 위해 쉬는 숨'이 무엇인지 체득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한 동작 한 동작, 동작이 제대로 되건 말건 가능한 한 영상 속 선생님과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 놓고는 눈을 감고 되뇌었다. '나를 위해 쉬는 숨.. 나를 위해 쉬는 숨...' 어느 순간 징그럽게도 조금 울컥했다. 호흡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있구나, 호흡조차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어서 내 마음은 너무 외로웠던 거구나. 몸이 알아서 하던 호흡에 나의 마음을 담으면, 몸은 마음을 위해, 마음은 몸을 위해 들이쉬고 내쉬는 구나. 이렇게 요가를 통한 자기돌봄이 시작되는 것이구나.


요가 플로우 말미의 사바사나(온몸을 바닥에 이완하여 아무 동작도 하지 않는(?) 동작)를 하면서 앞으로 나를 위한 숨과 나를 위한 무언가 한 가지를 더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지금까지 들춰보지 않았던, 찌그러지고 찌질하고 때때로 더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멈춤 없이 이어온 내 삶의 분투들, 마냥 수치스러워 하기에는 약간의 재평가가 필요할지도 모를,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내가 했던 시도들을 되돌아보는 일이었다. 어차피 시간은, 그리고 내 삶의 서사는 불수의근에 의한 호흡처럼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그것이 나를 위해 쉬는 숨, 나를 위해 사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위해 쉬는 숨, 나를 위해 쓰는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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