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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 박하림 Aug 01. 2020

‘디스전’에 대한 고찰

디스...전? 




디스...전? 아니 디스를 하는데.... 전을 하세요?
이상하네.. 지금 나라가 이상해...


 쇼미, 고등래퍼, 언프랩 같은 힙합 컴퍼티션 프로그램들은 참 애증의 대상이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매력적인 아티스트들이 주어진 제약 조건 하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건 사실이다. (일단 난 이영지의 무지막지한 팬이다. 멋있어, 나보다 열 살 어린 언니.) 다른 한편으로는 푸릇푸릇한 이들이 프로그램 기획자의 큰 그림에 놀아나는 듯한 인상을 받는 순간이 있다. 


 악마의 편집은 이미 너무 많은 논란들이 제기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친다. 내가 가장 의아한 부분은 ‘디스전’이다. 이름부터가 의문투성이다. ‘디스’로 어떻게 ‘전’을 꾸릴 수가 있지? 애초에 디스라는 건 ‘신랄한 비판’을 말한다. 물론 신랄한 비판이 아니라 못난 비난 내지는 근거 없는 모욕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걸 골라내는 것조차도 디스를 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너는 지금 그게 정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냐?’ 아티스트들 간에 디스 주거니 받거니가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이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이런 것이기도 하다. 통념상으로는 욕먹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들 했는데, 사실 욕먹을 일이 아닌 경우. 

 예를 들어서 얼굴이 못생긴 것. 그게 래퍼로서 욕먹을 일은 아니잖아? 사실 나는 누가 ‘못생긴 주제에 어디서 랩을 하려고 드냐’고 디스 같지 않은 디스를 했을 때 ‘갑자기 못생겼다는 말이 왜 나와?’라고 맞받아치는 것이 그렇게 속시원할 수가 없었다. 씨잼이 ‘랩이나 잘 하라고! 불만만 많은 래퍼들!’하고 쏘아붙인 장면이 떠오르면서 머릿속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방송에서 꾸리는 디스전은, 스테미나 팡팡 돌도록 사료를 잔뜩 먹여 키운 싸움닭 두 마리를 링에 붙여 놓은 것 같은, 유치하고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아니 해당 프로그램에서 초면이다시피 한 래퍼들 둘을 붙여 놓고 서로를 얼마나 잘 헐뜯는지 겨루는 게 어떻게 ‘디스’일 수 있을까? 상대방에 대해 뭘 알기라도 해야 ‘신랄한 비판’이라는 걸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초면인 상대랑 디스전을 뜨라고 제작진이 요구하면 뭐 인터넷으로 리서치라도 해서 오나? 그 리서치 자료가 정확한지 어쩐지 상대방에게 확인은 받나? 

 방송에서 이루어지는 디스전이 결국 딱히 근거 없는 실력 까내리기, 외모 까내리기 정도에 그치는 것은 애초에 ‘디스전’이라는 컨셉 자체가 너무 작위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디스‘라는 표현에 걸맞는 디스전도 있기는 했다. 대표적으로 씨잼과 비와이의 디스전. 그 둘은 원체 친하고 서로의 약점을 낱낱이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청중들도 대강 알고 있으니까 진짜 제대로 된 디스가 오고 갔던 것 같다, 그런데 씨잼과 비와이의 디스전에 상응하는 수준의 디스전이 그 외에 얼마나 있었나? 


 만약에 내가 래퍼였다면 (만약 그랬다면 일단 나는 예선에서 떨어졌겠지? 그 뿐만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랩을 못하는지 본인만 모르는 웃긴 지원자’로 별책부록처럼 유명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깔깔), 그래서 만약 디스전 같은 걸 하게 되었다면 나는 무대 위에서 디스전 따위를 시키는 제작진을 신나게 디스했을 것 같다. 느그들이 올라와서 해보라고. 왜 일면식도 없는 우리한테 싸움을 붙이냐고. 우리가 무슨 싸움닭인 줄 아냐고. 이영지가 했던 말 ‘쏠쏠하세요?’. 그럼 열심히 나를 까려고 디스 랩을 준비했던 상대방을 간접적으로 디스하는 셈이 되기도 하겠지. 만약 상대방도 나와 생각이 같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고.


 아무튼 그렇다.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 예술 영역에서, 재능을 가진 사람과 재력을 가진 사람이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는 하는데, 힙합 컴퍼티션 프로그램의 ‘디스전’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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