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했다가 접기를 반복했던 이유
내 본진은 네이버 블로그이다. 글쓰기를 원체 좋아하는 나는 블로그를 연지 어언 15년이 넘었고, 끊김 없이 그곳에 글을 시작한 것도 10년이 넘었다. 그러니 브런치가 처음 생겼을 당시 당연히 브런치라는 플랫폼에도 혹했다. 그렇지만 끝내 정착하지 못하고 그만 두기를 반복했다. 그것도 네 번이나.
브런치를 나의 블로그처럼 캐주얼하게 운영하지 못했던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첫번째로는 두 플랫폼을 동시에 운영한다는 게 참 쉽지가 않은데, 특히 둘 다 주요 콘텐츠가 글임을 고려할 때 더더욱 쉽지 않았는데, 나는 네이버 블로그에 성기게 형성되어 있는 이웃관계망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의 블로그 이웃들은 그때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내게 소중한 친구들이다. 비록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서로의 주변인들에게 내보이지 않는 내밀한 면면들을 공유하고 있다. 누군가는 잠시 그곳을 떠나기도 하지만, 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괜찮다. 기다리기도 하고, 기다리지 않기도 하고, 온전히 마음을 주는 경험을 나누는 관계를 꾸려왔다.
그러니 블로그와 브런치 채널을 동시에 운영한다는 건, 모국을 떠나 타국에서의 정착을 시도하는 것과 비슷했다. 구태여 모국을 떠날 이유는 없었지만, 더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이유로 다른 플랫폼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모국을 떠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가 더더욱 쉽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도 새로 만나야 했고,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들도 새로 찾아야 했다.
두번째로는 브런치가 굉장히 빠르게 시장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예 누군가의 일기장처럼 기록이 차곡차곡 나이테처럼 누적되거나, 아예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으로서 껍질 뿐인 포스팅이 생산되는 네이버 블로그와는 달리, 브런치는 시장을 위한 글들이 빠르게 증가하는, 글을 위한 시장으로 변모해갔다.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통찰력 있는 글은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 하고, 브런치는 그러한 대우를 네이버 블로그보다 더 잘 보장하는 체제로 나아갔던 것 같다. 다만 모든 물건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그러하듯, 누군가의 글이 갖는 가치와 그에 '상응하는 대우'라는 것도 결국에는 시장과 경제주체의 상호관계 속에서 우연적으로 결정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가치를 갖는 글' 만큼이나, '가치를 갖는 것처럼 보이는 글' 혹은 '오로지 시장가치만을 가지기 위해 쓰여진 글'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황색과 백색 저널리즘을 구분하는 것이 거의 무의미해지다 시피한 온라인 언론 시장에서처럼, 브런치에서도 값어치 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들을 구별해내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소음이든, 대기든 공해에 민감한 나는 브런치를 금방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는, 아무래도 브런치가 상업화되다 보니, 나처럼 상업성과 동떨어진 인간이 쓰는 글은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소심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글을 써서 공유하는 건 작가 마음인데, 괜히 잘못 찾아간 파티에서 홀로 구석에 서있을 때의 어색함이 불편했다. 누구도 나를 어색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데, 혼자 괜히. 그래서 번번이 브런치를 길게 가져가는 일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다시 돌아왔을까?
역시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가슴이 아픈 일이 있어서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장 솔직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역설적으로 누군가가 소중할수록 솔직해지기 어려운 면면들이 있다. 블로그는 비슷한 이유로 내게 더 이상 예전만큼 솔직하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블로그에 거짓을 쓴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예전에라면 편하게 썼을 글들을 더 이상 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어딘가에는 그 마음들을 고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철저히 이방인인 공간이 필요해서다. 블로그는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소중한 마음을 담아 운영해 나가겠지만, 그곳은 더 이상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이미 현실속, 그리고 온라인 속에서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네이버 블로거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억들이 사람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나의 내면을 담아 띄운 편린들이 사람의 형상을 갖추지 못하는, 그런 유의 장소가 필요하다. 누구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없는 곳.
내 글이 브런치에 어울리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더 이상 내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내게는 글을 전시할 곳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그 글이 우연한 기회에 나와 공명할 누군가에게 읽혀질 곳이 필요할 뿐이다. 이처럼, 어쩌면 타인은 전혀 알아채지 못할, 내면의 사소한 파도에 의해 누군가의 결단이 결정화되기도 하는 법이다.
+ 그렇지만 나는 기다리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