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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 박하림 Sep 02. 2020

나낳괴

나 자신이 낳은 괴물






우는 소리하기 싫은데  누구보다 우는 소리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서 자괴감이 드는 요즘입니다. 애초에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에게 잘 안 하는 얘기들을 인터넷에 하기 시작한 건데, 인터넷에서 만나는 이들도 점점 그냥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이름모를 타인 그 이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망설이게 됩니다. 내 추한 면면에 대해 쓰다가도 엎어버리거나 임시저장만 해두고 끄는 일이 많아집니다. 스스로도 ‘솔직한 게 짱이여!’라고 열심히 떠들어온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자존심 세우고 있는 것 같아서 웃기네요. 자존심을 안 세우는 척 하는 것조차 몸에 익을 정도로 자존심 세우기 바쁜 사람인가봐요.


사실 우는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도 스스로도 몰라서 그게 제일 부끄러운 것 같아요. 활기 찰 때는 뭘 해도 재밌는데, 바람에 나뭇잎이 박수치는 모습이나 방구석에 먼지 굴러다니는 것만 보고 있어도 재밌는데, 무기력해지면 숨쉬는 것도 귀찮아요. 진짜 흉곽을 감싼 갈비뼈 다발을 들어올렸다 내렸다 하는 그 자체도 온몸이 적극적으로 귀찮아하는 게 느껴진다니까요.


옛날에는 무기력해지면 미래가 불안해지고 왠지 내 인생 망한 것 같아서 슬프고 그랬는데, 이제 그런 건 없어요. 왠지는 모르겠는데, ‘와 나 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는 망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떻게 살아도 망했다는 생각은 안 들 것 같기도 해요. 내 고집대로 살 테니까 적어도 후회는 안 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는 건가 싶네요.


다만 무기력할 때조차 다음 순간, 내일, 다음 달을 최소한으로나마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내일 더 무기력해지면 안 되니까 밥을 챙겨 먹어야 하고, 감정에 너무 소모되면 안 되니까 자꾸 감정 스위치를 꺼야 하고, 그렇다고 너무 답답한 채로 방치하면 가슴 두근거림이 심해져서 며칠은 가니까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춤을 추든 뭐라도 해야 하고, 체력이 떨어지면 최악이니까 요가든 산책이든 해야 한다는 게 너무 황당할 정도에요. 1 더하기 1이 3이라고 고막에 때려 박아야 하는 것만큼 부조리하게 느껴져요.


이제 곧 이번 삽화의 피크를 찍을 것 같은데 그러고 나면 좀 나아지겠죠. 마음이 너무 답답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건 말해도 달라지는 게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이따금씩 누군가가 정말 깊게 공감해줄 때 우연히 민트를 가슴에 바른 것 같은 힐링이 될 때가 있기는 한데, 전 그런 힐링을 주고 받는 관계가 지속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기대를 거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도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싶은 게, 내가 높은 기대를 걸지 않는 건 그 사람들을 과소 평가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속가능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나는 나의 마음에 대해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게 몇 안 되는데, 이건 확신할 수 있어요. 내가 말 대신 글을 쓰는 건 사적으로 소중한 관계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소비해버리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근데 또 모르죠. 나는 내가 뚱한 표정을 안 지으려고 늘 방긋방긋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노력은 내킬 때만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굴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답답해서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이런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유튜브로 찾아 들어보고도 있는데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두지 말라는 말이 빡치면서도 마음에 박히더라고요. 십년 넘게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도달한 유일한 결론이랑 맞닿아 있어서요. 내가 이것저것 깔짝대서 대강 할 줄 아는 게 잡다하게 많고, 호기심도 많고, 취미가 엄청 다양한 것도 매번 삽화가 시작될 때마다 취미 후보 리스트들을 몇 줄씩 소비해버리기 때문이거든요. 근데 가끔씩 새로운 취미생활 소비리스트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현타가 와요. 이것도 곧 바닥이 나면 또 열심히 머리를 쥐어 짜내서 목록을 만들어야 하겠지....


올해가 가기 전에 진짜 운전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적어도 혼자 노래 들으면서 운전하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건 몇 년은 해야 질릴 만한 취미가 아닐까 싶어서요. 블로그 이웃과 인스타 친구 중에 모터사이클에 푹 빠진 분들이 몇몇 있는데 그분들을 보면서 폭주도 해보고 싶어졌어요. 멋있는 벨스타프 자켓을 질러서 튼튼한 헬멧과 부츠와 맞춰 입고 밤새도록 한적한 국도를 시원하게 달리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상상을 요즘 자주 합니다.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글을 쓰니 한결 낫네요. 그리고 생각보다 혼자 반말로 시불시불하는 것보다 약간 예의 차려서 전달한다는 느낌으로 쓰는 게 털어놓는 효과도 큰 것 같아요. 이런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도 아는데 솔직히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별로 안 들어요.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니까 미안한 마음은 듭니다. 근데 대동맥 같은 데에 돌멩이 같은 게 콱 박혀서 심장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이 이상 착해지려고 노력하면 안 되겠다 싶어요. 유리체력들이 몸 사리듯 유리멘탈이 멘탈 사리는 거라 생각해주세요. 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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