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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 박하림 Sep 07. 2020

동적 균형 : 인간으로서의 재능

매료하길 원하나요, 매료되길 원하나요







거창해지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니체의 강자의 도덕에 관한 아이디어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냥 내가 그런 취향을 지닌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누군가는 니체의 아이디어가 폭력적으로 남용될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서, 강압적으로 느껴져서, 현실성이 없다고 보여져서 싫어할 수도 있겠죠. 실제로 니체의 아이디어들이 나치즘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에 여러 차례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내 생각에 동의를 하지 않는대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게다가 나는 취향의 영역에서 이를 좋아할 뿐이니 객관적 정당성을 내세울 생각도, 그럴 필요도 없겠죠.



니체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나의 취향을 대변하느냐. 내게 중요한 건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잘 이해하려는 섬세함과, 이를 구현함에 있어 불어닥치는 외풍에 대한 무던함. 언뜻 모순되는 이 두가지 특성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사고가 본능만큼이나 원활하게 기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섬세하자면 얼마든지 섬세해질 수 있지만 지금은 섬세해져서 좋을 게 없는 순간이다, 와 같은 판단으로 섬세함과 무던함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여기서의 합리적 사고는 결국엔 본인 스스로가 설정한 가치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맹목적 이성주의와는 다릅니다. 객관성에 편승해야 한다는 강박도, 누군가를 설득해서 동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고집도 없습니다. 그 점이 있어서는 다시 본인과 타인의 차이를 정교하게 파악하는 정서적 섬세함이 활발히 작용해야 한다고 볼 수 있어요.  결국 정서적 섬세함과 합리적 판단력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동적 균형 상태를 스스로 유지하고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 볼 수 있겠죠.


인간관계의 역학을 관음하길 즐기는 내게는 니체가 말하는 강자 둘이 만나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큼 커다란 쾌감을 선사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미 각자의 동적 균형점을 발견하고 유지하고 회복할 능력을 갖춘 이들은 관계 자체에 동적 균형을 부여할 정도의 인격을 갖춘 것과 다름 없거든요. 천문학자들이 70-80년에 한 번 되돌아오는 핼리 혜성이나, 반세기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금환 일식을 보고 환희에 젖는 것만큼이나, 내게는 그런 두 사람의 랑데부를 목격하는 것이 희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들 관계의 특징은 역시 엎치락 뒤치락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강자의 내면에서 감수성과 합리성이 끊임 없이 자리 다툼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런 연인 관계에는 강자와 약자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매혹하는 쪽과 매료되는 쪽이 고정되어 있지도 않죠. 그렇다고 강자-약자 구도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애초에 연인이라는 관계가 성립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이런 이들이 보기 드문 이유는 그처럼 역동적이고 긴장집약적인 관계를 지탱할 정도로 에너지가 강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관계역학 속에서 자신의 지위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신경쓰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또 약자의 지위에서 강자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자질과 재능이 있어야겠죠. 그런데 이것들의 발휘가 승부욕으로 치닫지 않을 정도의 튼튼한 자존감도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매료하기만 하려 드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매료할 사람을 찾아다니기는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끌어당기는 사람을 스스로 매혹하길 추구하는 사람이고, 본인에게 매료된 사람이 자신을 유혹하기 위해 필요한 정서적 공간을 남겨두는 사람입니다.


나는 ‘동적 균형’만큼 섹시한 개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도, 조형도, 그림도, 음악도, 사람도, 튀어나갈듯 튀어나가지 않은, 혹은 과감히 뛰쳐나간 자리에서 물흐르듯 스윽 방향을 돌리는 순간만큼은 끊어질 듯한 긴장을 자아냅니다. 그처럼 광기와 이성을 자재로 오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외모, 배경, 성격, 습관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요. 이미 그는 인간으로서의 재능을 출중히 발휘하고 있는 것인데요. 내게는 오직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재능만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범인과 비범인을 나누는 기준이다 강자와 약자를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내 취향이죠. 하지만 확고한 취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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