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즈(Beams)의 욱일기 논란 02.

이슈아나토미아 팩트체크

by 정다면

앞선 포스팅에서는 욱일기 사용으로 인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조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본 포스팅에서는 지난 7일 빔즈가 빔즈 재팬 계정에 게재한 이미지로 인해 불거진 논란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스크린샷 2018-07-17 오후 2.29.15.png 인스타그램 전체 이미지 (출처 @beams_japan 계정)
스크린샷 2018-07-16 오후 7.46.29.png 문제의 이미지 (출처: @beams_japan 인스타그램 계정)

앞선 포스팅에서 살펴보았 듯이, 단지 욱일 문양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외국인이 사용한 경우보다 일본인이 사용한 경우 더 비난의 여지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일정한 명시적/암묵적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다른 근거가 없는 한 여전히 문제 삼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이 포스팅은 빔즈의 정치적 노선을 가늠할 수 있는 다른 요소들이 있는지에 포커스를 맞출 예정이다. 우선 (1) 위의 이미지 자체가 갖는 정치적 함의를 파헤치고, (2) 빔즈라는 브랜드 자체가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제시해온 브랜드 이미지를 살펴볼 것이다.

1. 게재된 이미지의 성격에 관하여: 위의 이미지는 빔즈가 제작한 것이 아니다.
위의 게시물에 달린 빔즈 측의 캡션을 잘 살펴보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위의 이미지가 빔즈가 자체 제작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 없이 빔즈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위 게시물은 빔즈의 아트샵 'B-gallery'에서 판매하는 연극 포스터 도록의 홍보를 위한 것이다. 이 도록의 이름은 '재팬 아방가르드 안그라 연극걸작 포스터' (『ジャパン・アヴァンギャルドーアングラ演劇傑作ポスター100』編)이고 카마루사와 하리스 컴퍼니(・カマル社+ハリス・カンパニー)의 합작으로 출판한 것이다.

스크린샷 2018-07-17 오후 2.32.24.png '재팬 아방가르드 안그라 연극걸작 포스터 집'의 표지 (출처: b-gallery 인스타그램 계정)
스크린샷 2018-07-17 오후 2.32.39.png '재팬 아방가르드 안그라 연극걸작 포스터 집'의 속지 (출처: b-gallery 인스타그램 계정)

그 중에서도 문제된 이미지는 < 속치마바람 오센(腰巻お仙)>의 포스터의 일부분을 빔즈 측에서 사용한 것이다.

스크린샷_2018-07-17_오후_2.36.55.png 1960년대 제작된 <속치마바람 오센>의 포스터

<속치마바람 오센>은 1960년대 일본의 현대 전위 연극을 이끌었던 가라 쥬로(唐十郞)의 작품이다. 가라 쥬로는 자궁을 연상시키는 붉은 천막에서 공연을 올리던 가라구미 극단을 이끌며 일본 문화계를 요동치게 했던 인물이다. 기노구니야 연극상、요미우리 문학상、쯔루야 난보크 희곡상 등을 수상하며 일본 국내 문단에서 쾌거를 이루었고, 2010년에는 일본인 최초로 한국의 '이병주 국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위의 포스터는 일본 팝아트의 거장이자 일본의 앤디워홀이라고도 칭해지는 타다노리 요코오(横尾忠則)의 작품으로서, 상당히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포스터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던 작품이라고 한다. 1960년대 <속치마바람 오센>이 상영되던 당시 포스터를 훔쳐가는 사람들이 많아 문제가 되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위의 포스터는 일본 현대 예술계의 전설이라고 할 만도 하다.

상기 포스터에 사용된 욱일 문양은 타다노리 요코오의 스타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타다노리가 가라의 작품의 메세지를 잘 반영한 결과일 수도 있다. 우선, 타다노리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욱일 문양이 다수 사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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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속치마바람 오센>의 내용도 일본 군국주의의 옹호와는 별 상관이 없어보인다. 이 작품은 환상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쓰여진 부조리 극으로, 한 여자아이가 군인들의 성 노리개로 전락하여 망가져가는 것을 보는 남자아이의 이야기이다. 어떠한 가치판단도 유보하려는 작품이지만, 굳이 분류를 하자면 극동제국의 재건을 꿈꾸는 군인들은 가해자로 그려지는 작품이다. 나아가 60년대 주로와 함께 일본의 전위 연극을 이끌었던 인물들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무자비
함, 떄로는 조선인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고발했던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작품도, 작품을 위한 포스터도 특정 정치색을 띠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2. 빔즈가 포스터 도록 홍보를 위해 위의 이미지를 선택한 이유도 명확해 보인다.
일단 위의 포스터 자체는 군국주의 옹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빔즈는 왜 하필 이 이미지로 도록을 홍보했을지를 의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극우 단체에서 반중 시위에 (욱일 문양이 그려진) 티벳 국기를 악용하는 것처럼, 빔즈도 불순한 의도 위의 이미지를 사용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치마바람 오센> 포스터는 일본 팝아트 계의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다. 상기 서술한 바와 같이, 공개되자마자 도난이 다수 발생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97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빔스 측 설명으로는 '근대 미술관'이라고 하나, 뉴욕에 근대미술관이라는 것은 없으므로 Museum of Modern Art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에서 개최된 '세계포스터 전"에서 1960년대를 대표하는 포스터 1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빔즈에서 도록을 홍보하기 위한 대표 이미지로 <속치마바람 오센>의 포스터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려워보인다. 다시 말해, 빔즈에서 위의 포스터를 정치적으로 악용했을 가능성도 희박해보인다.

3. 빔즈에게 욱일기 논란 전적이 있는가?: 빔즈의 브랜드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빔즈에서 욱일기 논란이 일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가령 빔즈의 마크부터가 논란의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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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즈의 로고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다음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 빅정보: 빔즈 로고 논란 >

그러나 이것도 앞선 포스팅에서 살펴본 '대어기' '신년 카드 이미지' 등과 마찬가지로, 군국주의 옹호를 상징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는 것 같다.
이 밖에 빔즈의 브랜드 이미지가 우익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주장이 간간이 제기되어 왔으나, 그것이 군국주의 옹호에 이르는 경우는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아는 바가 있다면 자유롭게 제보해주시기 바란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문제: 왜 많은 일본인들은 욱일 문양에 대한 경각심을 갖지 않는가?
다른 많은 케이스들이 그러한 것처럼, 빔즈의 경우도 보이콧까지 하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많다. 빔즈의 의사 결정권자들이 군국주의를 옹호하고 우익성향을 드러낸다고 볼만한 결정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문제 없다, 열심히 애용하자'라고 말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일부 네티즌들이 일본 문화 애호가들을 모조리 퉁쳐서 가하는 '일뽕 맞은 매국노'라는 비난과도 맥이 닿아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 국민으로서 볼 때, '저거 가지고 빔즈를 보이콧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느냐'는 결론 자체가 드러내는 문제는 일본인들이 아직 백 년도 지나지 않은 자국의 전쟁범죄에 대해 충분한 경각심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진짜 문제는 '욱일기를 사용했는데도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이다. 독일 전쟁범죄의 상징이 욱일기였다면 오늘날 독일인들이 '역사적으로 여기저기에서 많이 썼으니까!'를 이유로 마음 편히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한국, 중국 등의 국민들이 바라는 정도의 역사적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때문에 일본 브랜드들이 욱일 문양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한국 및 중국의 소비자들이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이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과거사는 아직 청산되지 않았으므로, 조심하게 만들 필요는 있다. 실제로 <원펀맨>의 원작자는 연하장 일러스트로 욱일기 논란이 불거지자 다음과 같이 수정본과 함께 사과문을 발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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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개선이 가능함을 고려할 때, 빔즈 사태의 경우 보이콧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적극적인 해명을 요구할 수는 있으리라 생각된다. 나아가 그러한 요구는 빔즈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빔즈에게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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