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것은 그리는 것과 같다
많이 그리면 잘 그리게 된다
물론 잘 그리는 것은 또 정말 잘 그리는 것과 같지 않다
심이 여린 연필로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리는 것도 지우는 것도 반복한다 종이가 지우개에 닳아 말려 올라가 찢어진다 찢어진 자리에 피가 맺히고 고름이 지고 딱정이가 굳어온다
나는 더 멍하니 생각하는 일이 잦고 문득 서러움이 북받치는 일이 잦고 무작정 뛰어서 헐떡거리도록 울부짖고 싶어지는 일이 잦다
그저 참고 그리고 그릴 뿐이다 그리고 오래된 종이가 마침내 빈틈이 없도록 찢어지고 닳아 내가 무심해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