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엽서시

느릅나무

by 엽서시

1.

느릅나무는 하늘이 퍼런 것만 보고 뿌리를 뻗었다. 하늘이 그를 속인 것을 두고 나무는 성내지 않았다. 대신 그 어느 것보다 질긴 녹색으로 그물을 짰다. 촘촘한 녹색이 햇빛을 삼키는 동안 나무는 제 속에 돌을 던져두고 동심원을 그렸다.


2.

느릅나무는 땅속에 가지를 뻗었다. 둥치 위로 침묵하는 겨우내, 흙속에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잎과 꽃과 열매가 울울창창했다. 땅 속 굼벵이가 눈이 멀도록 환한 것이었다.


3.

굴착기가 용트림을 했다. 나무는 쓰러졌다. 벌건 흙을 파던 인부가 흙 사이 수없는 흔적을 보고 갸웃하다가, 그를 부르는 동료들의 담뱃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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