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엽서시 Apr 20. 2016

누의설

개미와 세상에 대해 논하다

어느 날 내가 돌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노라니, 누군가 나의 발목을 건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작은 개미 한 마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무릇 군자는 자신의 고통을 제 안에 가두어 겉에 드러내지 아니하며, 성인은 발밑의 미물마저 어여삐 여기는 것이거늘, 그대는 어찌 남의 굴 앞에서 한숨을 쉬어 뭇 생명들을 해치려드는가.”

 나는 개미를 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개미야, 이 미물아, 참새가 어찌 붕의 뜻을 알며 개미가 어찌 세상을 걱정하는 선비의 고됨을 알리오. 개미의 세상이 고되다한들 미물이 고민할 일이 없으니 그대는 한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리라.”

 그러자 개미가 답하였다.

 “고대에 한 개미가 있었으니 깨달음을 얻어 땅을 파는 일개미의 굴레를 벗어나 스스로를 누의(螻蟻)라 하였다. 누의가 어찌 깨달음을 얻었는지 알지 못하나 개미들 사이에 전하기로, 누의는 강태공이 흘린 생선 비늘을 먹고 깨달음을 얻었다고도 하며,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갉아먹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도 하였다. 누의가 깨달음을 얻고 제일 먼저 생각하기를,

 ‘나는 개미의 세상을 만들 것이되, 그 세상은 개미가 개미를 압박치 아니하고, 개미 무리가 다른 개미 무리를 박탈치 아니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하였다. 자신의 깨달음을 설파한 누의는 큰 개미 무리를 일구어 봉래산 인근에 도읍을 정하고 굴을 파니 그 굴을 ‘개미의 꿈과 같은 세상’이라는 뜻으로 의몽(蟻夢)이라 하였다. 누의는 의몽을 슬기롭게 다스리다가 다른 개미들을 구원하기 위해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누의는 남쪽의 큰 가지 밑에서 또 하나의 굴을 만들고 그 이름을 남가지몽(南柯之夢)이라 하였으며, 나부지라고 하는 나라에 이르러 또 굴을 만들고 나부지몽(羅浮之夢)이라 하였으며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 이르러 굴을 만들고는 한단지몽(邯鄲之夢)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 회화나무에 굴을 만들고 괴안몽(槐安夢)이라는 굴을 만들었으며, 태양이 희게 작열하는 곳에 이르러 백일몽(白日夢)이라는 굴을 만들었다. 어느 늙은이의 목침에도 구멍을 뚫고 굴을 만들었으니, 그 굴은 여옹침(呂翁枕)이라고 불렀으며, 좁쌀을 쑤어 술을 빚는 곳에 이르러 그 온기를 빌어 굴을 파니 그 굴은 황량일취(黃粱一炊)라고 불렀다. 이렇게 수많은 굴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던 누의가 어느 날 한 개미굴을 마주쳤다. 그 곳 앞에 일하는 개미들에게 이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이 굴은 의몽이라고 부릅니다.’

 하였다. 누의가 생각하기를,

 ‘세상은 개미의 알처럼 둥글어 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다시 시작한 곳에 이르는 법이다. 나는 아마 내가 시작한 곳에 이른 모양이다.’

 하며, 즐겁게 일개미들에게 물었다.

 ‘나는 개미의 무리를 모아 이 곳에 굴을 만든 누의다. 한 때 이 굴을 떠났다가 다시 이 굴에 이르니 너희들의 삶이 어떠한지 묻고자 하노라.’

 그러자 일개미들이 공손히 더듬이를 모으며 대답하였다,

‘우리는 새벽에 깨어나 임금의 몸을 단장하고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 아침에 굴을 나와 밖을 다니며 곡식을 모읍니다. 해가 떠 밖에 나다니지 못할 때는 굴에 돌아와 병정들이 먹을 밥을 준비하고 수개미들이 먹을 간식을 만듭니다. 저녁이 되면 또 다시 굴에 나가 곡식을 모으되 다른 개미들과 마주치기를 삼갑니다. 얼마 전에 이웃 굴에서 적병을 보내니 조만간 전쟁이 있을 모양입니다.’

 이 대답에 누의가 놀라 성을 내니, 그 더듬이가 꼿꼿이 서 마치 말벌의 더듬이 같았다. 이 모양을 보고 일개미들이 달아나니 누의가 그 뒤를 쫓아 굴로 들어갔다. 굴 안에서 일개미들이 지내는 것은 과연 일개미들이 말한 것과 꼭 같았다. 누의는 한숨을 쉬며 굴을 없애고 다시 새로운 굴을 파고자 하였다. 그때 한 늙은 개미가 나와 누의를 막았다, 누의는 그 늙은 개미를 비켜 세우며,

 ‘나는 이 굴을 세운 누의라는 개미요. 노인장께서는 어찌 나를 막으십니까.’

 하며 물었다. 이에 늙은 개미가 답하기를,

 ‘그대가 누의인지, 누에인지는 알지 못하나, 내가 알기로 개미가 살기를 일개미는 섬기니 병정은 싸우고 임금은 귀하게 대접받는 것이라 하였다.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가 새로 굴을 세워가며 바꾼 것은 개미들인가, 아니면 단지 굴의 이름인가.’

  하였다. 이에 누의는 더듬이를 들지 못하고 한숨을 쉬다가 마침내 북쪽으로 떠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인간의 세상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며 한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허나 누의는 물론이거니와 개미보다 만 배 무거운 인간의 한숨이 개미 세상조차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선비의 한숨이란 도통 쓸모가 없는 것이요, 만일 그대가 무엇인가 바꾸고자 한다면 그대는 썩 일어나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이니 그대의 한숨은 더욱 쓸모가 없는 것이다.”

 나는 개미의 말을 듣고 부끄러워 세상으로부터 숨고자 하였으나, 월요일(月曜日)이 나를 찾아내어 어찌할 도리 없이 출근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맹우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