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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서시

논두렁에 꽃게가 썩다

by 엽서시
IMG_20150908_211945.jpg 올 여름 태안의 논두렁에 폐꽃게가 잔뜩 썩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폐꽃게가 두렁에 쌓였다.

폐꽃게는 나부랭이 꽃게들이다.

그래도 꽃이련만,

이 놈들은 살이 텅 빈 놈, 껍질이 무른 놈, 다리가 여덟 개 밖에 없는 놈, 어린 놈, 터무니 없이 어린 놈, 암만 먹어도 키가 자라지 않는 놈, 껍데기만 튼실한데 다른 곳은 영 시원치 않은 놈, 한 쪽 눈이 애꾸인 놈, 집게발 하나가 오그라들어 영영 펴지지 않는 놈, 게딱지 같은 집이 더럽게도 못사는 놈, 절룩거리는 놈, 곱사등이인 놈, 껍데기 속까지 가난하여 살이 텅 빈 그런 놈들이라

논두렁에 쌓인 주검째 무덤이 되었다.

파리는 꽃게의 눈물을 핥았다.

괜찮아, 괜찮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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