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형은 백석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 오히려 천박한 사람이다.
1.
야, 왔냐. 앉아라. 아, 밖에 눈 오냐? 그래? 옷 좀 털고. 여기요, 예, 맥주 오백 하나 주세요. 회사엔 별일 없냐? 그러냐.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나도 별 일 없어. 왜 불렀냐고? 야, 그냥 생각나니까 부르는 거지, 무슨 이유가 있냐. 이 겨울밤에 형이 혼자 쓸쓸히 소주나 마시다가 부른 거지.
2.
존나 외롭다.
뭐? 야, 형 요새 그런 데 안간지 꽤 됐어. 뭐? 정신 차렸다고? 야, 그런 데 가는 거랑 정신 차리는 거랑 뭔 상관이야. 좆이 문제지 머리랑은 아무 상관없다.
왜, 너도 그런 데 가보게? 야, 요샌 그런 데서 초짜 안받아줘, 인마. 요새 하도 단속이다 뭐다 해서. 너 갈 때 명함 들고 가야된다.
야, 진짜라니까? 너 명함 받고 가도 입구에서 그 새끼들이 카톡이랑 문자랑 다 검사하고 간다. 혹시 짭새나 형사 새끼들 번호 있나 그 새끼들이 한 번 보고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거야. 무슨 서류심사 통과랑 비슷해. 취직하는 것도 아니고 씨발. 아예 면접을 보던가. 개새끼들.
차라리 안마방이나 키스방을 가. 그런데 한 두 번 가서 거기 실장들, 좀 얼굴 트고 하면 삼촌이라고 부르거든? 그 삼촌들이랑 잘 지내면 돼. 어차피 거기 그 놈들이 다른 데 가서 다 그런거 하고 그런 놈들이라. 걔네들이 신원 보증해주면 명함 이런 거 없어도 된다. 웃기지 않냐. 이런 것도 인맥이 있어야 돼. 대한민국, 진짜.
아무튼. 형이 원래 그런 덴 잘 안 갔었는데. 그러다가 어떻게 가게 됬냐면.
저번에 일 마치고 가는데, 형 직장이 선릉이잖아. 선릉에 그런 데 엄청 많거든. 나도 왜 선릉에 그런 데가 많은지 모르겠다. 그냥 회사들 모여 있는 곳인데. 회사원 새끼들이 다 머리에 그것만 들었던지. 아니면 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아무튼 그날따라 갑자기 눈에 들어오더라고. 길거리에 삐라가 쫙 뿌려져 있는데. 하긴, 뭐 맨날 무슨 가로수 낙엽처럼 뿌려져있긴 하다만. 나 지금 살고 있는 고시텔에서 걸어서 한 10분 거린가? 바로 1번 출구 옆이라는 거야. 그때 그냥 별 생각 없이 주워놨다가.
어느 날 주말에 그거 한 장 들고 전화해본거지. 야, 그땐 뭣도 모르고. 내 핸드폰으로. 내가 미쳤지. 무튼 그때 시간 되는 애 있냐고 물어보니까, 실장이 그러더라고. 에나벨인가? 에나벨 얘 예쁘니까 얘 한 번 먹어보라고. 개새끼. 그 새끼들은 말 또 꼭 지 인생처럼 해요.
갔지. 가니까 진짜 외국애 있더라. 이쁜진 모르겠던데, 그래도 서양애랑은 처음이니까. 그래도 다 똑같더만. 그래서 그냥 했지.
뭐 그 짓 끝나고 여자랑 얘기할 게 있냐. 그것도 영어도 못하는 애랑. 그래서 그냥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너 러시아 애냐, 물어보니까. 얘가 그러는 거야. 지 우즈베키스탄이라고. 근데 생각해보니까, 그렇대. 우즈베키스탄인데 이름이 에나밸일 리가 없잖아. 그래서 물어봤어.
너 진짜 이름이 뭐냐.
그랬더니 얘가 잘 못 알아듣더라. 에나벨이라는거야. 아니, 그 이름 말고, 너 진짜 이름이 뭐냐고. 그랬더니 알아듣더라. 막 웃더니, 그거 물어보는 건 내가 처음이래.
그러더니 뭐라고 대답을 하는데. 내가 따라하지를 못하겠더라. 아니, ‘ㄴ’으로 시작하는 거 빼곤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고. 그러니까 얜 또 웃고. 그러더니 얘가 나보고 사실 자기도 에나벨이라는 이름은 별로라고. 나보고 이름 달라는거야. 그래서 생각하는데.
갑자기 그 시가 생각난 거야. 그 시 있잖아. 백석이 쓴 거. 눈 푹푹 내리고. 그거. 그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거기서 나타샤. 그 나타샤가 갑자기 생각나더라고. 대학 다닐 때 그 시 좋아한 것도 아닌데 그 시가 갑자기 왜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그랬어. 나타샤. 나타샤 어떻냐고. 그랬더니 걔가 웃더라. 왜 웃는지 모르지. 그게 웃긴 건 아니었을텐데. 애 웃는게 이쁘니까, 나도 웃고. 그러다가 헤어질 때 되니까 걔가 그러더라. 나중에 또 나타샤랑 보자고. 그때는 별 생각없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그 나타샤만 찾아갔어.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개가 나타샤가 된다고 내가 백석이 되는 것도 아닌데.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보고 싶어서 가겠더라고. 실장은 좋아죽지. 단골로 호구 새끼 하나 생겼으니까. 근데, 근데 또 미치겠는 게. 아니, 뭐 나도 그 짓하려고 얘 만난 거니까 얘가 몸 파는 건 상관없는데.
근데 그걸 떠나서 얘가 나를 다른 손님이랑 똑같이 보는 게 싫더라고. 내가 그렇다고 얘를 데리고 나가고, 밖에서 얘를 만나고, 이럴 건 아닌데. 갑자기 어느 날 그게 너무 싫은 거야.
그래서, 그래서 술 한 잔 먹고.
또 보러 갔지. 또 보러 갔는데. 그날은 도저히 못하겠더라고. 그게 안 서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갑자기. 그냥. 존나 하기 싫은거야. 이게 다 뭔지. 모르겠더라고.
갑자기.
세상 다 부수고 싶은데. 부술 수는 없고. 얘를 데리고 어디 진짜 산골짜기라도 달아나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고. 얘 한테 뭐라고 내가 말을 하면 얘가 알아듣기를 하나, 그 것도 아니고. 그냥 되는 게,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
그러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그래서, 뭘 어째. 울었지. 그렇게 우는데.
얘가 안아 주대.
안아 주더니 뭐라고 종알종알 하더라. 뭐라고 혼자 종알종알 하는데. 그게 영어도 아니고. 우즈베키스탄 말인데 내가 알아들을 수가 있냐. 그냥 꼭 안겨서 들었다. 아무 말 안하고. 뭐라고. 뭐라고 그냥 한참을 안겨 있었어.
다음에 가니까 없더라.
실장 새끼는 다른 백마 많다고 뭐라 뭐라 하는데. 그냥. 그냥 왔다. 왠지 싫더라. 실장한테 어디 갔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러지도 않았어. 그래. 나타샤 고향으로 돌아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싶더라. 또 굳이 확인해서, 이 지랄 맞은 서울 땅 어느 골방에 처박혀 있는 걸 또 보느니. 또 그걸 내 돈 쓰고 그 방에 기어들어가 억지로 보느니. 차라리. 차라리 돈 많이 벌어서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갔겠거니 생각하는 게 홀가분하더라고. 그래, 이놈의 세상에 돈 만 좀 있으면 어디 가서는 못살겠냐. 어느 산골짝, 어느 통나무집이라도.
에이, 남자 새끼 둘이 앉아서 여자 얘기나 하고 있고. 시발. 왕년 황동현이도 다 죽었다. 어디 겨울밤에 이렇게 징글징글한 새끼랑 앉아서. 그래? 지금 눈 온다고? 아, 너 아까 올 때 눈 왔다고 했었지. 밖에 눈 많이 오냐? 그래? 많이 왔다고? 지금도 오나, 어디 한 번.
3.
야, 눈 진짜 많이 온다. 그치, 형. 와, 아까 나 걸어올 때 보다 더 많이 오네. 내일 군바리들 일어나면 다 뒤지겠다.
이제 열두 신가, 형, 그거 알아? 백석이 사랑한 기생, 그 기생한테 붙여준 이름이 자야(子夜)거든? 그 자야라는 이름 뜻이 북쪽으로 떠난 애인을 밤 세워 기다린다, 뭐 이런 뜻이더라고. 갑자기 생각이 난다.
야…….
눈은 나리는데.
눈은 진짜 이렇게 푹푹 나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