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소설

절벽에 사는 사내

세상에 이런 일이(2)

by 엽서시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험한 산골. 하지만 이 산골에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범상치 않은 도인이 살고 있다는 제보. 아니, 이 산골에 도대체 누가 산다는 거에요?”

봐. 니들이 화면을 보면, 니들 머릿속에는 그 나레이션이 들려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푸른 잠바에 가득한 몸을 뒤흔들며, 피디는 걸걸한 목소리로 외쳤다. 투실투실한 볼에 성성하게 난 수염이 흔들렸다. 나는 애써 편안한 척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모자를 쓴 VJ는 애먼 카메라를 닦으며 피디의 고함을 말없이 삭이고 있었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 양 태연하게 행동하려 들었다. 이 번이 세 번째다. 그러니까,

TV에 나오는 것 말이다.

바람이 분다. 나는 또 흔들린다. 그 모습을 놓칠세라, 안경을 낀 VJ는 줌을 당긴다. 아마도 내 얼굴표정을 찍는 것이리라. 나는 또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아니, 세상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띤다. 휘파람까지 불어보이고 싶지만, 사실, 나는 휘파람을 불 줄 모른다.

그렇다.

나는 8년 째 벼랑에 사는 도인이다. 아니,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안다. 벼랑에 잠자리를 마련한 것은 8년이 맞지만, 사실 8년 내내 이곳에서 산 것은 아니다. 다만 주말이나, 아니면 잘 곳이 없거나 할 때만 이 곳에서 잔다. 왜냐하면 이 벼랑은 나를 떠나지 않은 유일한 재산이자, 아무도 탐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산이랍시고 이 게딱지만한 돌산을 물려준 아버지도, 아니, 무슨 그것도 양반이랍시고 처음 이 돌무더지에 선산을 만든, 내 조상이라는 이름 모를 양반네도 몰랐을 것이다. 아무튼 모든 것을 잃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내게 남은 것이라곤, 이 한 귀퉁이가 떨어져나가 절벽이 되어버린 돌무더기가 전부인 것이다.

그렇다.

방송에 나오는 여느 괴인들이 그렇듯 나 역시 쫄딱 망한 사람이다. 모든, 쫄딱 망한 사람이 그러하듯 나도 변명하고 싶다. 나는 운이 없었다. 그럴 뿐이다.
나는 한 번도 게으르 않았다. 사실 지금도, 지금도 그렇다. 누워 입가에 게으른 미소를 띠고, 새소리가 들릴 때마다 피디에게 “저 새가 휘파람샌데요…….” 따위를 중얼거리는 지금도 나는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다.

도시에 살 때에는,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고, 아파트 8층에 집이 있었다. 가정이 있고 직급이 있고 직책이 있었다. 즉, 이 세 놈이 모두 손에 혁대를 말아쥐고 나를 세차게 후드려 팼다 말이다.
14년 동안 나는 부지런히 살았다.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과장을 달기도 했다.

결혼한 나이에 비해, 아들놈은 좀 늦게 태어났다. 누구는 그게 오히려 부럽다고 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쓰게 웃었다. 아내는 장모를 따라 절에 다니기도 했고,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니다가, 다시 한의원을 찾아갔다가 교회로 돌아가곤 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우습게도, 우리는 시작을 마주하면서 그것이 시작인지 모른다. 그 아내의 쓰디쓴 미소가 시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나는 그것이 아내가 미안해서 짓는 미소인줄로만 알았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낮에도 밤에도 열심히 살았다. 어느날 아내는, 두 줄이 그어진 임신테스트기를 내 눈 앞에 보여주었고, 나는 그 것이 내 삶에 대한 보답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세게 아내를 끌어안았고,

회사에서는 더 많은 일을 더 세게 끌어당겼다. 이제 이 회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내 주변도, 내 윗사람도 알고 있었다.

이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한 순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참 우스웠다. 언제부터였던가, 그렇지. 그게, 누군가가 전무님과의 식사에서 들었다며, 이번에 회사가 받은 경영컨설팅 결과가 어떻다고, 얘기했고, 다른 누군가가 그 말을 자르며, 정치인 A가 모 기업으로부터 얼마를 받아먹은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가 또 가라앉기 전에 다른 누군가가 연예인 B가 연예인 C를 따먹었다는 루머가 있다며, 또 지저분한 소리를 했다. 나도 그 자리에서 지저분하게, 웃었다.

사실 그것도 시작이었는데.

생각해보니까 경영컨설팅은, 맙소사, 돼지가 도축당하기 전 무게를 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연말이었고, 회장은 기념사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이겨내었으며 이를 통해 또 한 번, 성장했다고 말했다. 인사팀에서 회장의 기념사를 화장실 문 마다 붙여놓았기에 나는 매일 똥을 누면서, 회장의 말을 보아야 했다.

‘히말라야의 독수리는 일백 살을 산다고 합니다. 새의 부리와 발톱은 오십년을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십 살이 된 독수리는 발톱과 부리가 다 닳아빠져 더 이상 사냥을 하지 못합니다. 그 때 이 독수리는 절벽에 자신의 몸을 던진다고 합니다. 그 죽음의 고통 속에서 닳아빠진 발톱과 부리는 빠지고, 새 발톱과 부리가 돋아나는 것입니다. 그 새 발톱과 부리를 가지고 독수리는 싱싱한 몸과, 50년간 쌓아온 경험이 덧붙어 다시 하늘의 제왕으로 반백년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뭐 이따위 이야기였다. 그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는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독수리가 다시 태어낰 위해 빠져야하는 낡은 부리와 발톱이 지금 앉아서 똥을 누고자신이라는 것을.

희망퇴직을 하기 전까지, 나는 직책이 세 번 바뀌었고, 자리는 다섯 번 옮겨야 했다. 그래도, 화장실 앞에 자리가 놓인 누구보다는 낫잖아. 나는 속으로 그렇게 위로했지만.

사실 그랬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회사에서 잘렸다는 말을 전했을 때 아내의 얼굴은.

아.

그래,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무슨, 소용이랴.

아무튼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변호사는 아직 내가 모든 것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게 바로 이 선산이었고.

나는 지금도, 지도를 쥔 채 복덕방 주인과 이 산길을 올라 이 절벽을 보았던 처음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대화까지도.

‘저 바위가 높이가 얼마쯤 되죠?’

‘아, 저게.’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을 만큼 머리가 벗겨진 복덕방 주인은, 손가락으로 과거 머리가 성성했을 부분을 긁적이더니,

‘아파트 한 8층 높이쯤 되나?’

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결심한 것이다. 이제 죽기 전까지 이 높이에서 절대 내려가지 말자고.

절벽 끝에 잠자리를 만드는 일은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꼬박 두 달이 걸렸다. 건설 현장에서 만난 사람 중에, 등산과 비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조언을 얻기도 했다. 돌에 철근을 박는 일은 금방 늘었다. 몸 하나 굴릴 새도 없는, 절벽에 매달린 텐트에서 자는 것도 금방 익숙해졌다.

오히려 방송은 훨씬 어려웠다.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특히 이 피디는 더욱 그랬다. 조금만 어색한 장면이 나와도, 그는 연신 “다시”를 외쳤다.

리얼이 아니잖아!

피디는 VJ들에게 연신 성을 냈다. 그럴 때마다 나도 움츠러들었다. 사실 저 말은 내게 하는 말이 아닌가 싶어,

에이, 씨팔.

또 무언가 잘못된 모양이다. 피디는 안경잡이에게 또 성을 부리고 있었다.

야, 내가 리얼만 찍으라고 했지. 너 이따위로 찍으면 화면에 안 나올 거 같아? 시청자들이 모를 거 같아? 이 선생님의 인생은 리얼인데 네가 리얼이 아니면, 결과물은 전혀 리얼이 아니게 된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해. 재료가 좋으면 뭘 해, 레시피가 좋으면 뭘 해, 요리사가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냐, 엉?

피디는 내게 친절했다. 아니, 내게만 친절했다. 그것이 더 곤혹스러웠다. 피디는 나를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게 나를 놀려대는 것만 같아 고민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대체 누구의 선생님이란 말인가.

선생님, 수고많으셨습니다. 이게 설 특집으로 나가는 거라, 이번엔 유독 촬영이 길었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피디가 내 손을 덥석 쥐었다. 아니, 고생은요, 뭘. 나는 멋쩍었다. 사실, 멋쩍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장면인데요?

저, 사실,

피디가 눈짓을 했다. 갑자기 세 대의 카메라가 또렷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일순 몸이 굳었지만 그 와중에도,

‘태연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것이 ‘리얼’이므로.

나는 작가가 피디에게 건네는 누런 미농지 봉투를 바라보았다.

이게, 이게 뭔데요?

아내분께서 방송국으로 보내신 편지입니다.

아내라고.

아내, 라는 단어가 핑글, 돌았다.

네. 아내분께서.

저희 쪽으로 직접 연락을 해주셨어요.

저번에 인터뷰 하신 거 보셨나봐요. 아내분께서. 이건 저희 쪽으로 직접 보내주신 편지.

피디가 내게 봉투를 건넸다. 그 봉투에는 아내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나는 그 아내의 이름을. 그러니까.

합의이혼의사확인신청서.

아내가 서류를 건넬 때, 열한 글자를 읽으면서 나는 떨지 않고자 노력했다. 아내의 차가운 눈앞에서 나는 더욱 차가워보이고 싶었다. 그것만큼은 제대로 연기해내고 싶었다. 내가 이미 당사자, 주민등록번호, 주소, 핸드폰이 깔끔하게 적혀있는 서류를 찬찬히 읽으며, 무언가, 한 글자의 오자(誤字)라도 찾고 있을 때.

등록기준지는 당신이 적어.

아내는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대사를 읊었다.

인터뷰, 인터뷰.

내가 뭐라고 했더라.

아내랑, 가족이 제일 그립죠. 여기 혼자 있으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요. 내가 잘못한 것들만 떠오르고……. 가장 그리운 건 가족들인데,

나는 태연하게 그 편지를 받았다. 나는 차가워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손 끝은 떨리고 있었다. 피디는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피디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가 눈짓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VJ들은 제 일을 알고 있었다. 침묵은 뻐근하리만큼 길었다.

그 침묵 속에서도 피디의 입모양이 뻐금거리는 것을 난 놓치지 않았다.

이건, 리얼이야.

아, 나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눈시울이 뜨거운 것을 난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누런 미농지가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락거렸다. 나는 그 봉투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날 둘러싼 눈들은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피디의 얼굴은 볼 것도 없다. 편지를 주는 시점에 대해 피디와 끝까지 고민했을 막내 작가의 입가에는 미소가 돌고 있을 것이다. 카메라가 줌인으로 내 얼굴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모자를 쓴 VJ는 침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안경잡이 녀석도 마찬가지리라. 설날 특집으로 누구를 다시 찍어야 하냐는 고민에 머리를 싸맸을, 이름 모를 방송사 직원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도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침을 삼키고, 내 표정, 아마 어느 배우도 흉내 낼 수 없을 내 표정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는 것 까지 알 수 있었다.

무언가가 가슴팍을 짓밟았다. 한 근, 아니, 두 근 이상 실팍한 무게. 손가락이 떨렸다.

이 안에 아내의 편지가 있다.

아내는 무어라고 썼을까. 나는 아내의 대사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용서한다는 말일까. 돌아오라는 말일까. 오겠다는 말일까. 같이 이 벼랑에 매달려 살자는 것일까. 나를 탓하는 말일까. 비웃는 말일까. 당신은 왜, 아직도, 왜, 이 모양이야.

희미한 얼굴의 아내가 부옇게 바랜 목소리로 귓가에서 왕왕 외쳤다. 우습게도 그 흐린 모습은 결혼한 이후의 아내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내게 소리를 지르고 가재를 집어던지던 아내의 얼굴은 윤곽조차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리 와, 이리 와.

천천히 그 목소리는 낯선 고함으로 변했다. 이리 오라고. 어디로 오라는 말일까. 나는 그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 곳은 아래였다.

아아, 이것은 헛것이구나. 또.

바스락, 또 다시 손가락 사이의 편지가 울었다. 현실은 내 손가락 사이에서, 종이를 비비며 부비적거리는 중이었다. 그러면 나는 과연,

이 현실을,

‘리얼’을 알고 싶은가.

아니, 알 수 있다. 보고자 하면 볼 수 있듯이.

나를 바라보는 세 대의 카메라와, 세 대의 카메라 뒤에 숨은 VJ들.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방송작가와 피디의 얼굴이, 그 다섯 명의 얼굴이 똑바로 보였다. 아니, 그 뒤에 숨어 나를 지켜볼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도 똑바로 보이는 듯 했다. 당연하게도, 그 중에는 내가 알아봄직한 얼굴들이 있었다.

아직 낯익은 아내의 얼굴과 이제 낯설어진 아이의 얼굴.

전무. 상무. 머리가 더 까진 부장과, 배가 더 나온, 이제 차장이 된 김과장. 이제 결혼을 했을 법한 박대리. 그 외에도.

나를 무대에 올려놓고 지켜보던 그 수많은 눈초리들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편지를 연다. 내게 돌아오라는 아내의 목소리.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아내와, 아들의 이름을 외친다. 스튜디오에서 곱게 옷을 차려입은 진행자들이 눈시울을 훔친다. 후원금이 건네진다. 나는 면도를 하고 양복을 입고 어색하게 아내와 재회를 준비한다. 아내와 아들이 울면서 뛰어들어온다. 나는 그들을 끌어안고.

박수소리. 다시는 헤어지지 마세요. 진행자의 목소리에,

네, 절대, 앞으로 다시는.

그리고 이 장면을 바라보는 시청자들과, 시청자 게시판과, 그리고.

리얼.

나만이 줄 수 있는 이 리얼한 감동이 똑똑히 보였다.

그렇구나.

바람이 불었다.

상쾌하다. 벼랑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뿐만이 아니다. 무대에서 내가 앞으로 할 행동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왜.

물었다. ‘리얼’ 이후에 대해. 지금 무대를 내려가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낯익은 아내와 낯설은 아이. 그 아이의 머리를 낯설게 쓰다듬는 나. 매일 아침, 면도와, 넥타이와, 통장과, 카드와, 어색한 구두와, 계단과, 누군가의 앞자리와.

당신은 왜, 아직도, 왜, 이 모양이야.

낯익은 대사.

손가락의 떨림이 멎었다.

문득 살밑에서 무언가 꿈틀거린다. 근육? 아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이다. 절벽을 오르며 잠자리를 만들 때도, 온 몸이 근육통으로 쑤실 때도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생소했다. 그래서 나는 이게 혹시 용기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이제 내려갈 때가 되었다.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 눈. 눈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을. 이제야, 하는 게 문제일 뿐. 팔에 힘줄이 돋았다. 오래도록 눌려 있던 용수철이 퉁겨나오듯, 몸이 솟았다. 피디의 입이 어, 벌어졌다. 왜, 이게 더 ‘리얼’한데. 모자를 쓴 VJ가 카메라를 손에서 놓치는 것을, 나는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미안하오. 작가는 손에 쥔 A4용지 뭉치를 떨어뜨리면서, 손으로 눈을 가렸다. 아직도 몸은 솟구치고 있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세상에, 이런 일이, 한 번 쯤은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 그렇다면 저들의 외침은 비명이 아닐 것이다.
환호. 탄성.
날지 못하는, 날 수 없는 저들의 날것의 부러움.

그래, 그래. 난 처음으로 ‘리얼’ 중에 있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날아버리자.

차라리,

날아버리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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