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소설

구분구역

by 엽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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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무렵, CC카메라의 화면에 한 남자가 보입니다. 곧이어 그 남자는 능숙한 솜씨로 자물쇠를 땁니다. 문이 열리고 그 남자의 선동 아래 ‘좀비’들이 구분구역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남자는 곧 달아납니다. 뒤이어 사이렌이 울리며 경찰이 나타납니다. 현제 경찰 측에서는 서울에서만 약 7000여 ‘좀비’들이 도심으로 쏟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남자는 같은 방법으로 일주일에 걸쳐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 약 34곳의 구분구역의 자물쇠를 딴 것으로 보입니다. 현 시각까지 서울에서 경찰이나 119구조대에 의해 진압당한 좀비사건의 수는 약 130여건. 신고건수는 700여건을 넘었고 전국적으로는 약 560여건, 신고건수는 무려 3천 여 건에 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액을 약 30여 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고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이 남자를 ‘좀비왕’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경찰 측은 이 ‘좀비왕’의 몽타주를 배포하여 공개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띡. TV가 꺼지는 소리.

5월 2일, 좀비들은 좀비 왕에 의해 세상에 풀려났다.

세상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와 파푸아뉴기니와 조선을 동시에 발견한 것처럼 혼란과 싸움과 구타와 논쟁 속으로 빠져들었다.


1

내가 그것을 처음 본 것은, 이라는 문장으로 대부분의 좀비소설들이 시작한다. 그 문장의 뜻이 그것들이 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첫 인간 목격자가 나란 뜻, 아니면 내 이전의 목격자가 다 죽었단 뜻, 아니면 내 삶에서 그것들이 나타난 것이 처음이라는 뜻, 이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뜻이 소설이니까 가능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해도,(굳이 나만 선택받는 상황은 소설 속에서나 일어난다. 또 그런 선택 또한 전쟁이나, 화산, 그도 아니면 좀비 같은 선택이다. 절대 소설 주인공은 로또에 당첨되는 행복한 선택은 받지 못한다.) 세 번째 뜻 역시 이상하긴 마찬가지이다. 내가 무언가를 처음 본 것은-이라는 문장은 주로 대게 그 무언가가 독특하고 한정적이고 규명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그것이 내 삶에 큰 의미를 가져왔을 때나 쓴다. 예를 들면 주로, 내가 담배를 피고 있는 그녀를 처음 봤을 때나 내가 직장에 잘린 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에나 쓴다는 말이다. 좀비라는 것도 그만큼 삶에 대단한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도 그들이 될 수 있었고, 그리고 그들이 우리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것들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박 터지게 싸워야 했고, 다시 한 번 어쨌거나, 나는 ‘내가 그것들을 처음 본 것은’ 이라는 문장을 쓸 자격이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들은 내 삶에 어쨌거나, 큰 의미를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들을 처음 본 것은’, 으스스한 안개가 깔린 아침도, 퇴근길에 집 앞도, 부엌도 아닌 대낮의 도로 한복판이었다. 지금도 그 때가 기억난다.

5월이었다. 졸업한지 삼 개월이 지나도록 난 이 냉철한 취업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세상은 으스스하게 따뜻해지고 있었다. 사실 컴퓨터학과를 나온 대학동기들과 조그마한 인터넷 창업을 하긴 했다. 전문적인 건 아니었고, 대학 발표과제용 PPT를 대신 만들어주는 사이트였는데 처음에는 어느 정도 희망이 보였지만, 곧 소스가 다 공유되는 바람에 수입이 줄어들었다. 나름 프리랜서들끼리 모여 만든 거라 큰 피해는 없었고 그냥 홈페이지를 닫았다. 나중에 어딘가 이력서를 쓸 때 한 줄 정도의 이력에 지나지 않았고, 왜 그만 둔 겁니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분명히 헛기침을 두 번쯤은 해야 적당히 궁색한 변명이 나올 만한 이력이었다. 하지만 그게 내 유일한 이력이었다. 어쨌거나 다시 그것들로 돌아가 일주일동안 TV에서는 ‘그 뉴스’로 인해 시끌벅적했지만 그것을 내 두 눈으로 본건 처음이었다. 그것은 정말 영화처럼, 비척거리는 걸음걸이로 갑자기 차도에 뛰어들었다. 경적소리와, 브레이크소리가 차를 끌었지만 차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것을 들이받았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여느 때의 사고와는 달리, 비명소리는 곧 잦아들었다. 충격에서 빠져나온 운전자는 보험차를 먼저 불러야 할지, 경찰을 먼저 불러야 할지를 놓고 주위의 사람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였고, 119를 불러야 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도 수많은 어깨로 둘러싸인 그 원의 중심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의 팔다리는 접혀있었고, 목은 꺾여있었다. 무언가 지저분한 액체들이 몸에서 흐르고 있었고 역한 냄새가 옷깃 속에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찬가지였는지 사람들도 곧 그곳을 떠났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보험차가 다가왔다.

‘어쨌거나’, 그것은 여자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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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회는 그야말로 ‘시쳇말’로 큰 충격에 빠졌다. 정부는 3주일이 넘도록 입장을 밝히지 않다가 마침내 그것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존재임을 밝혔다. 물론 그전부터 사람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그것들에 대해 떠들었다. 대부분 그것들을 ‘좀비’라고 불렀다.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이상한 짓들을 하는 종교인들도 있었지만 3주일이 지나자 대부분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비난했다. 가장 먼저 보건당국에서는 혹여 그것들이 ‘영화’와 같이 시민들을 공격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것들에게 물릴 시에는 전염이 되는지, 공기로 전염이 되는지에 대해서 입장을 밝혔다. 보건당국은 처음에는 별다른 공격성은 없어 보이나 시민들의 접근은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발견 즉시 경찰이나 119에 신고하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곧 입장이 바뀌었고 경찰이나 119에서는 그것들에 대한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이건 이후에 더 자세히 쓰기로 하고, 국방부에서는 군인들을 동원해서 그것들을 소각하려는 작전을 펼쳤으나 시민들에게 큰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경찰청도 비슷한 짓을 하려했으나 조금 더 눈치가 빨랐는지 먼저 포기했다. 몇몇 필력을 주체 할 수 없었던 신문에서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북한에서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으니 정부 당국은 어서 북한을 다그쳐서 이유를 알아내고, 대북지원을 중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북한은 딱히 아는 게 없어보였고 그냥 딱하기만 했다. 그리고 종교인들, 마지막 날의 징조라고 주장하던 그들은 곧 그것들이 죽었다 살아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것들이 영혼이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어쩐지 옹색한 주장이었으나 마지막 날이 온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도 수긍이 갔다.

내가 처음으로 그것이 ‘죽은 것’을 본지 3일 후 일요일, 아파트 단지 내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좀 냄새가 심했다. 그것은 대충 형태로 보아서 나이가 있음직한 여자였던 모양인데, 왼쪽다리를 끌며 단지 내를 걸어가고 있었다. 곧 경비아저씨의 신고가 있었고, 그때까지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던 경찰이 등장했다.

잠깐의 소동이 끝났고, 모여 있던 아주머니들은 일제히 네 달 전에 죽은 103동 할머니가 아니냐며 입을 모았다. 아주머니들은 대체로 그 할머니가 돌아온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할머니의 며느리와 아들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도 않았고 그 자리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그 할머니가 103동 할머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건, 아파트단지 내에서 가장 최근에 난 초상이기도 했지만, 그 할머니가 103동으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고도 103동 경비아저씨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으로 책임질 수 없는 무언가가 다가오자 다급한 마음에 한 것이리라.

뉴스에서는 왕따로 인해 자살한 학생이 다시 학교에 등장해서 운동장에 나타났고, 때마침 체육 중이던 학생들 중 일부가 마대자루 따위를 이용해서 그 학생을 제압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비난 여론이 쏟아졌고, 학교당국은 수업 중이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수위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분명 그 수위는 학교당국에 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을 것이고 아마 잘렸을 것이다. 이 뉴스는 전국의 많은 영감 수위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학교 근처에서의 신고건수도 급증했다. 매년 학생 140명이 자살하는 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기업들은 너나할 것 없이 그것들을 퇴치하기 위한, 기다란 전기 봉이나, 도움을 알리는 호루라기 등을 내놓았다. 질병이 돈다는 소문에 다시 휴대용 소독약이 성황리에 판매되었다. 한 통신 업체에서는 버튼 하나로 간단히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핸드폰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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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경찰은 그것들 때문에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에서는 민간용역을 이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신고 번호는 007, 공공의 치안을 돕겠다는 다소 애매한 이름의 용역단체였다. 사실 정부는 아직 그것들을 ‘좀비’라던가 다른 어떠한 이름으로도 부르지 않았다. 사실 그것들은 뭐라 부르기도 애매했고 어떻게 치우기도 애매했다. 공연히 그것들을 불태우고 했다가 유가족, 아니 유유가족들에게 무슨 항변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것들과 관련되어 움직이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터였다.

007은 하나의 업체가 아니라 여러 용역업체와 하청기업들이 지부를 맡고 있는 형식이었다. 007에 전화하고 지역을 말하면 그 지역의 지부로 연결해주고, 이어 자세한 위치 설명을 하면 출동한 007이 그것들을 포획해서 제압한 후 특정한 쓰레기장-더 이상 쓰레기장이 아닌 구분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에 그것들을 가두어 놓았다. 나도 그 일을 약 4개월 정도 한 적이 있었지만, 일의 매력에 비해서 시급이 센 편도 아니었고, 안정된 일자리도 아니었기 때문에 곧 그만두었다. 다들 나와 비슷한 입장인 것 같았고, 사실 내가 그 일을 할 때도 대부분이 외국인들, 더 구체적으로는 가난하고 짙은 외국인들이었다.

일은 대충 이러했는데, 신고가 들어오면 우리는 검은 트럭을 타고 25분 내로 신고 장소에 출동한다. 5명이 한 조가 되어서 그것을 포위하고, 전기가 흐르는 봉으로 그것을 제압한다. ㅡ그것들은 전기가 몸에 흐르면 쓰러져서 버둥댔다ㅡ움직임이 거센 것들은 봉으로 머리부분을 가격해서 얌전하게 만든 후 짐칸에 실어 구분구역으로 보냈다. 일을 할 때에는 방호복 비슷한 것을 입었었는데, 내가 일할 때는 한창 더울 때여서 그 옷을 입기에도 짜증이 물씬 흘렀지만, 가난하고 짙은 외국인들은 더위에 강해서 그런지 꼭꼭 챙겨 입는 편이었다.

점심으로 나오는 급식이 맛없기도 했고 가장 중요한 시급도 별로 센 편이 아니긴 했지만 일을 하는 내내 가장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그것들 그 자체였다.

그것들은 냄새나고, 멍청하고, 대부분 색깔이 시퍼렇거나 우중충하거나 아니면 검은 편이었다. 더럽고 게으르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질병의 원산이었다. 게다가 그것들은 배고프면 이상한 것들을 먹는 모양이었는데 주로 음식쓰레기장 옆에서 발견되는 것들이 많아 우리는 그것들이 음식쓰레기를 먹고 사는 모양이라고 나름 생각했다. 못생겼고, 징그러웠다. 게다가 사람과 달리 이성이 없고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끔찍했다.

하지만 난 별로 이러한 태도에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직업상 그것들과 육체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긴 했지만 그것들은 결코 우리와 같을 수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 그림에서만 보던 외국인을 아파트 단지에서 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라틴계 사람이었던 모양이었는데, 머리는 ‘징그러울 정도로’ 작았고 ‘까만’ 얼굴엔 ‘무시무시하게 큰 입’이 미소를 띠고 있었다. ‘털’도 많았다. 얼이 빠진 나를 지나쳐 갈 때에는 그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냄새났다.’

이러한 태도가 내가 결코 어리고 작고, 무지해서 그랬던 것이 결코 아니라는 건 백인 하멜의 표류기에도 나온다.

“우리는 64면 중 36명만 살아남은 것을 슬퍼하고 있었다. 어두워지자 약 100여명의 무장한 사람들이 텐트를 부쉈다. 다음날 우리가 더 큰 텐트를 치고 있을 때 1000~2000명 사이의 보병들과 기마병들이 나타나 텐트를 포위하고 우리의 목에 쇠사슬을 감았다.······우리는 몇몇 고관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몹시 신기해했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모습이 괴물과 같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을 마실 때는 코를 귀 뒤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 돌았고, 우리의 머리를 바다표범에 비유하곤 했다”

고 하멜선생은 백인이었음에도, 괴물의 입장에서 말해주셨다.

백인들은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이 벌레를 먹고 산다고 생각했고, 그들이 이해한 다윈에 따라 아직 진화가 덜된 인간과 짐승의 사이 단계의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어느 책에 따르면, 맨 처음 그들이 오랑우탄을 봤을 때 그들은 그 오랑우탄에게도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고 한다. 그러지 그 ‘원주민’은 병사가 내민 팔을 나뭇가지를 꺾듯이 꺾어버린 후에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며 나무위로 올라갔다. 잠깐의 소동 끝에 백인들은 그 원주민을 체포했고, 그 원주민이 여자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 여자는 우리 안에서 곧 죽었다고 한다.

흑인들은 백인들이 세상이 탄생할 때 신이 쫓아낸 자칼의 자식이라고 믿었다. 몇 몇 용감한 흑인들, 또는 백인들의 멍청한 실수로 인해서 그들이 붉은 피를 흘리는 것을 볼 때 까지 흑인들은 백인들이 인간이라는 것을 결코 믿지 않았다고 한다.

이누이트들은 백인들을 무시했다. 왜냐면 그들은 자신들 말고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그래서 백인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주로 이런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건 백인들인데, 이건 그 애들이 온 세계를 쏘다니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백인들은 오랑우탄에게 까지 악수를 권할 정도로 익히 알려진, 인간에 관대한 박애의 정신이 있었고, 그들의 것은 자신들과 나누고 자신들의 일을 그들과 나누고자 했다. 덕분에 세상 사람들은 제 집에서 ‘바다표범을 닮은 짐승’들이 자기 집을 불태우고 부녀자를 윤간하고 자신들을 노예로 끌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류 공통의 일이었다.

백인들은 대게 자신들이 만난 인간들에게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백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호주에서, 미국에서, 멕시코에서, 칠레에서, 파푸아뉴기니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조선에서, 일본에서, 인도에서, 알래스카에서 만난 인간들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것들은 냄새나고, 멍청하고, 대부분 색깔이 샛노랗거나 우중충한 누런색이거나 갈색이거나 아니면 검은 편이었다. 더럽고 게으르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질병의 원산이었다. 게다가 이것들은 배고프면 이상한 것들을 먹는 모양이었는데 뭘 먹는지는 일단 정상적으로 빵과 고기는 먹지 않고 그 지방에서 나는 가장 끔찍한 것들을 주로 먹었다. 못생겼고, 징그러웠다. 게다가 사람과 달리 이성이 없고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한 가지 추가해서 그들은 분명히 영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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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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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일이었다. 그것들이 이 세상에 등장한지 최초로 등장한 시리아에서부터 따지면 무려 8개월이 지났다. 교황청에서는 불현듯 생각난 듯이, 이것들이 영혼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들이 나사로의 부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호기심이 든 나는 나사로에 대해서 찾아보았고, 진지한 비판의 욕구가 들어 어머니가 항상 붙들고 있던 성경도 읽어보려 시도한 결과 그냥 맘대로 생각해버리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에서는 빈민가 옆에 구분구역을 붙여 놓은 결과 빈민들의 폭동이 있었다. 역시나 검고 우중충한 흑인들과 히스패닉이었다. 백인들은 참고 참으려 했지만 더 이상 이것들의 소란을 참을 수 없자 정의의 경찰들이 출동했다. 멕시코에는 군대가 출동했다. 이스라엘에서는 벽 안쪽의 이것들에게 그것들과 같이 살라고 했는데 이것들이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탱크까지 납셨다. 뉴스에 따르면 세계 각지의 이것들은 흠씬 두들겨 맞거나, 죽었다.

자랑스러운 나의 한국에서도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구분구역과 인접한 구역에서 거센 님비운동이 일었고, 데모 도중 몇몇 시위자가 장렬하게 구급차에 실려 갔다.

이 무렵 나는 줄곧 TV를 끼고 영화를 보고 있었다. 케이블 방송에서는 줄곧 스파이더맨과 베트맨, 슈퍼맨 등의 히어로물과 새벽의 저주, 나는 전설이다, 레지던트 이블 따위의 좀비 영화를 특집으로 방영해주고 있었다.

인간이 거미나 박쥐나 슈퍼와 결합하면 영웅이 되지만, 바이러스와 결합하면 괴물이 된다. 어느 영화에서도, 게임에서도 그것들은 비슷한 존재였다. 문득 생각이 들어 아버지가 사다 놓은 DVD를 꺼내들었다. 한참 주인공이 역마차를 타는 도중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인디언들이 나왔다. 인간이 미국과 결합하면 영웅이 되고 인도나 뭐 아무튼 기타 등지와 결합하면 악당이 된다. 람보는 베트콩들을 쓸었다. 베트콩이나 인디언들도 뭐 거의 좀비들과 비슷한 역할을 갖고 있었다. 아마 이 영화들에 모두 출연한 엑스트라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젊어서는 인디언, 좀 나이가 지긋해서는 베트콩이 되서 한두 마디쯤 악당스러운 대사를 쳤을 거고, 늙어서는 주인공과 친한 조연의 종아리를 무는 좀 비중 있는 좀비 역할을 했을 게 틀림없다.

시급은 분명 6천원을 넘지 않았을 거고, 점심은 제공되었을 거다.

뭐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나 뉴스를 보나 상황은 사실 비슷했다. 아니 사실 이젠 가끔 교황이나, 미국 대통령이 말을 꺼내지 않으면 그것들에 대한 뉴스는 거의 없었다. 간혹 미담으로 결혼도 못한 효자가 그것이 된 어머니와 함께 집에 사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이들 모자의 정이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뉴스는 휠체어를 탄 재벌이야기였다. 뉴스를 보지 않고 채널을 돌리기는 했지만 분명 휠체어를 탄 재벌은 법원 같은 곳에서 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기사도가 넘치는 법원은 여자와 약자, 병든 자를 도우라는 도리에 따라 용서해주었을 것이다. 재벌은 눈을 훤히 뜨고 법원을 나오고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감은 채로 저울을 들고 있었을 것이다. 하기사 그렇게나 오래 한 팔로 저울을 들고 있으면 분명 저울을 똑바로 재기엔 손이 떨릴 것이다. 문득 정의의 여신도 용역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었고, 그것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도 이제 좀 덜했다. 간혹 청소년들이나, 건달들이 그것들을 폭행해서 분해해놓거나 그것들에 불을 지르는 등의 사고가 신문 사회면에 작게 실리기도 했다.

몇몇 중소기업이 그것들이 더 이상 썩지 않도록 하는 약과 가스탄을 만들었다. 이 약으로 인해 그것들이 더 이상 냄새를 풍기거나 이상한 것들을 길거리에 떨어뜨려 아이들이나 산모나 노약자에게 못 볼 것을 보여주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가스탄은 사람에게 무슨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구분 구역 내에서만 실험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이 약은 곧 상용화될 예정이고 미국에도 수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내가 만일 책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제법 쓸모 있는 글을 조리 있게 쓸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면 아마 그것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 해의 겨울 신문을 꺼내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신문의 기사들과 이번 뉴스의 기사들을 차례차례 보여줄 것이다. 뭐 난 작년 신문은 기억에도 없고(사실 신문도 구독하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신문도 없지만 분명 작년 이맘때에도 비슷한 분위기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겨울에도 교황은 기적을 줄이고 백인들은 열심히 악과 싸웠다. 미담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 다음에 곧바로 눈시울을 식히는 기사가 나왔다. 효자가 어머니를 홀로 봉양하는 동안 법원은 기업을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홀로 꿋꿋이 봉양해오고 있었다. 중소기업은 무언가를 자꾸 개발해냈고, 그걸 수출할 거라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이 뭘 개발하던 그게 시장에 나오려면 4년은 더 남았고 분명 지하철에서 3천원에 팔렸다가 2천원에 팔리다가 결국에는 천원에 팔릴 것이다. 청소년과 건달들은 그때도 문제였다.

어쩌면 백인들이 열심히 악과 싸운 덕분인지도 모르고, 그들이 악과 열심히 싸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여전하고 똑같았다. 난 그래서 뉴스를 보지 않고 안심하고 영화를 볼 수 있었다.


4

007에서 나온 이후로 그것과 처음 마주쳤다. 2월이었다. 그 전날 눈이 미친 듯이 많이 와서 난 그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난 쓰레기봉지를 버리려했고 그것은 쓰레기더미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난 청바지에 패딩점퍼와 비니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방호복도 없었고 전기봉도 없었다. 그것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더러운 검은 바지에 위에는 구멍이 뚫린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어렴풋이 남자라고 짐작했는데 나이가 들어 보이는 건 내가 유일하게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난 거의 처음으로 그것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영화와 다르게 흰 눈자위를 번득이거나 하지 않았다. 눈이 말라버렸기 때문에 눈은 눈구멍에 말라붙은 주름이 되어 있었고 코 역시 주저앉았다. 뻐드러진 입술 밑으로 노란 색의 이빨 몇 개가 듬성하게 나있었다. 주춤주춤 그것이 다가오는 동안 나는 왼손에 쓰레기봉지를 들고 멍하니 있었다. 어쩌면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왼손을 뻗쳐 내 오른손을 쥐었다. 잠시 내 오른손을 쥔 후에 그것은 쓰레기봉지 사이로 다시 쪼그리고 앉았다. 내 왼손에는 천원이, 꼬깃꼬깃한 천원이 쥐어져 있었다. 난 그것들이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누군가의 부모였을 게 틀림없다는 게 내가 두 번째로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때 나는 차가 있었다. 아니 훨씬 그 전부터 차가 있기는 했지만. 10월부터 나는 다마스 봉고차에 신문이나 우유 같은 것을 싣고 운전하고 있었는데, 컴퓨터학과랑 관계된 것도 아니고 수입이 짭짤한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좀 많이 남는다는 것과 돈을 준다는 것이 일의 좋은 점이었다. 게다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고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끝나고 다시 겨울이 오도록 취업난은 여전히 냉철했기 때문에 난 나름대로 먹고 살 구상을 해야 했다. 물론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007에 들어가는 일도 어렵진 않았을 테지만 썩 당기지 않았다. 대신에 이 경력으로 나는 배달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요즘 그것들이 차도에서 일으키는 사고 때문에 그것들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좀 유리한 면이 있었다.

원래 생각에는 주말에 치킨이나 시키고, 맥주나 좀 따려 했지만 퀴퀴한 냄새가 나는 천원 때문에 생각이 바뀌고 말았다. 천원을 주머니에 넣고, 차를 탔다. 시동이 좀 늦게 걸렸다. 차는 순환도로를 타고 서울 근교의 구분구역으로 향했다. 서울에는 9개의 구분구역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구분구역은 30분 거리였지만, 역시나 56분이 걸려서 도착했다. 용역업체에 있을 때에도 그 정도 걸리곤 했다. 히터를 안 틀어서 손이 빨갛게 곱았지만 집으로 돌아 갈 때에는 기름을 넣지 않고서는 힘들 것 같았다. 용역업체가 접근하기 쉽도록, 또는 용역업체의 하청업체나 용역업체의 하청업체의 하청업체나 그 하청업체의 일일 근로자들, 그리고 혹 그것들을 되찾아가는 시민들이 있을 까봐 구분 구역의 보안상태는 크게 까다롭지 않았다. 사실 그것들이 무슨 대수라고 보안상태를 까다롭게 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도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가기는 좀 꺼려졌다. 나 역시 이들에 비하면 백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스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겨울이 되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을 할 때 나던 악취는 거의 없었다. 양철 벽 너머로 포획한 장소에 따라 구역이 나뉘어져 있고, 잡은 지 오래지난 그것들일수록 안쪽에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장소가 비좁아지는 게 우려됐지만 그것들은 큰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고 서로 공격하는 일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냥 들어갈 수 있는 만큼 우겨넣었기, 지금도 우겨 넣고 있을 게 분명하다, 때문에 그것들은 더욱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구분구역은 조용하고 추웠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인디언 보호구역이나, 뭐 그런 것들처럼 비감하고 잔인한 분위기 법의 냄새와 함께 흐르고 있었다. 500M만 가면 나오는 주거단지와는 다른 냄새가 났다. 그렇지만 이제 이 곳의 냄새는, 내 아파트 앞 음식물쓰레기통의 냄새와 똑같았다. 이 곳 역시 세상에 적응한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주유소에서 2만원어치 기름을 넣었다. 기름 냄새가 나는 대학 입학도 안한 듯한 젊은 애가 손님 손님하면서 기름을 넣어 주었다. 속으로는 분명 저 녀석도 다마스를 깔보고 있겠지. 나도 한때는 그랬다. 하지만 나도 세상에 적응했다.

조금 망설이다 그 천원도 같이 내 버렸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종이는 무시할 수 있지만 천원은 무시할 수 없다. 감사합니다, 손님.

난 저 기름 냄새나는 머리 노란 젊은애 보다 백인일까. 아니면 돈을 주는 내 손이 백인인 걸까. 세상은 차고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데는 놀랍게도 34분이 걸렸다. 그렇지만 집에서 50M떨어져 있는 치킨 집에서 치킨이 오는 데에도 37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맥주를 땄다.

맥주 캔 안은 조용하고 차가웠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 세상과 닮은 액체가 목구멍을 태우면서 넘어갔다.


5

5월 달에 차를 타고 구분구역을 돌면서 자물쇠를 열었다. 절단기로 자물쇠를 자르고 문을 열어도 그것들이 비척거리는 걸음새로 나오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세콤이 무작위로 울렸고 경찰이나 용역업체나 하청업체나 하나같이 좀 늦게 출발했다. 전국을 돌면서 18곳이나 자물쇠를 땄다. 열 곳을 넘고 나서는 잡힐 때까지 열어보자하는 좀 자포자기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머지 16곳은 내가 따지 않았다. 뭐 믿지 않아도 좋다.

나는 거미와도, 박쥐와도, 슈퍼와도 결합하지 않았다. 나는 좀비하고 결합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나를 좀비맨이라고 부르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게 부르지 못했다. 그건 마치 좀비좀비, 또는 사람사람, 또는 맨맨처럼 들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들리지 않더라도, 그렇게 들린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신에 그들은 나를 좀비왕이라고 불렀다. 딱히 왕이 되려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딱하게도 신문들이 좀비대통령이나 좀비수상, 좀비해방자 또는 좀비해방주의자, 좀비자유운동가, 좀비권리주의자 등으로 부르기에는 너무 필력이 넘쳤던 것 같았다. 일부 신문은 내가 북한의 접선으로 남한의 혼란을 꾀해 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좀비를 해방했다고 주장한 후, 북한을 다그쳐 그 이유를 알아낼 것과 동시에 대북지원을 중단하라고 주장했을 게 틀림없다.

내가 한 짓을 수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것들이 눈에서 보이지 않는 동안은 할 수 없던 생각들을.

그것들이 나타나기 전에도, 그것들은 항상 존재했다. 눈을 감고 역사책을 펴도 어느 페이지에서나 우리는 그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한 때는 백인들이 그것들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백인이 아닌 모든 것들이 그것들이었다. 유태인들이 아닌 것들이 그것들일 때도 있었지만, 유태인들이 그것들일 때도 있었다. 일본인들이 그것들인 때도 있었고, 반대로 한국인, 조선인이 그것들인 때도 있었다.

우리는 항상 냄새나고, 멍청하고, 대부분 색깔이 샛노랗거나 우중충한 누런색이거나 갈색이거나 아니면 검은 편이었다. 더럽고 게으르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질병의 원산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배고프면 이상한 것들을 먹곤 했다. 못생겼고, 징그러웠고 본능을 따르기를 즐겨 했다.

다만 우리 보다 더욱 냄새나고, 멍청하고, 대부분 색깔이 샛노랗거나 우중충한 누런색이거나 갈색이거나 아니면 검은 편이고. 더럽고 게으르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질병의 원산지인 동시에 이상한 것들을 먹는 못생겼고, 징그러운 데다 본능을 따르기를 즐겨 하는 것들이 항상 있었을 뿐이다.

그것들은 사실 그랬다. 그것들 중 일부는 우리를 물거나 해치려고 했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혼란을 꾀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것들 중 일부는 우리들 중 일부를 물들이기까지, 전염시키기까지 했다.

그래서 우리는 20세기에 그것들을 가두거나 실험실에 처넣거나 죽이거나 했다.

21세기의 역사는 그것들에 대한 사과의 역사였다.

나는 22세기에 이런 짓을 반복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가둘 권리가 없다. 그것들을 죽일 권리는 더더욱 없다.

그건 우리가 그것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들이 우리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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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왕’이 되어 버린 지 15일 만에 잡혔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구분구역에 대한 사람들끼리의 수많은 회의가 있었다. 그보다 더 많은 시위가 열렸다. 한번은 가난하고 짙은 빛깔의 외국인들이 시위를 벌인 모양이었는데, 그들 역시 구호가 ‘구분구역 철폐하라’는 내용의 구호였다고 한다. 사실 그들은 공장에서도, 용역업체에서도, 다마스 차 안에서도 그들만의 1인용 구분구역에 들어있던 셈이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것들 역시 사람이라는 주장과, 거주이전과 행복에 관한 그것들의 권리에 대한 시위가 열렸다. 그것들 역시 사람이라는 말은, 사람의 기준은 냄새나, 지능이나, 색깔이나, 게으름이나, 유용성이나, 위험성이나 식성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그것들에 대한 반대시위도 열렸다. 그들은 사람의 정의가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그것에 대한 분명한 선이 있다고 믿었다. 그 선이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그 선 바깥에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들은 그것들을 받아들이라고 외치는 그들을 선 안 쪽에 넣어야 할지 바깥쪽에 두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들 모두가 소란스럽게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서로 물기도 했고, 치고 박기도 했다. 무언가를 때려 부수기도 했고 집어던지기도 했다. 결국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소란스러움을 이기지 못한 ‘백인들’이 정의의 봉을 들고 출동해야 했다.

몇몇 사람들은 다른 시위를 열었다. 환경단체에서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대한 반대 시위를 열었다. 그들은 도롱뇽이나 물고기나 짐승들에게도 거주이전과 행복에 관한 그것들의 권리를 요구했다. 세계적으로는 가죽이 얇은 인간을 위해 두꺼운 가죽이 벗겨져야 하는 동물들과, 바다에 사는 거인들을 위한 시위가 벌어졌다. 그들에게도 자신의 모피와 기름을 지킬 권리가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갔다. 민주노총에서도 대규모 단합대회를 열었던 것 같다. 그들이 구분구역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아무 얘기도 안했을지 모른다. 총파업과 궐기대회는 신문에 따르면 ‘온갖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한 채’끝났다. 신문은 거기에서 입을 다물었지만 난 이미 북한에 대해서도 읽은 기분이 들었다. 세계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에서 하청기업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였고, 유럽 일부에서는 아프리카·아시아계 이민자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정작 그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수많은 커피·담배·차 등 기호 식품 생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도 삶을 기호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시위를 벌였다. 수많은 시위들이 일어났다. 이제 세상은 팝콘의 ‘그 온도’에 다다른 것 같았다. 모두가 일제히 폭발해서 서로 부딪치며 뛰어다녔다. 그렇지만 사실 모든 시위는 구분구역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들은 말이다. 자본주의에서 원칙을 정할 때 가장 큰 원칙은 어떤 이익에 대한 수혜자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정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경제원리다. 즉 자신이 어떤 구역에 있을지 모를 때, 구분구역이 없는 세상이 가장 효율적인 세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기말 고사 때 나는 끝내 그 경제학자 이름을 쓰지 못했다. 시험이 끝나고 나는 다시 그 책을 보지 않아서 지금도 그 경제학자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어떤 구역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저 구역은 내 구역이 아니다, 라고 말할 뿐이다.

지금 이 세상은 역사 이래로 가장 크고 울창한 규모의 온갖 구분구역들이 즐비하다.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다. 폭력에 의해 어떤 것은 없어지기도 하고 그 폭력에 의해 다시 생기기도 한다.

사실 이 구분구역이 모두 없어지리라는 생각은, 사실 힘들다.

들쑤셔 놓은 벌집 같은 이 세상은 벌집처럼 구분구역을 만들면서 돌아가고 있다.

몇몇 기자들이 나를 인터뷰하러 이곳까지 찾아오기도 했지만 다 거부했다. 멋쩍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더 이상 멋있는 말을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내가 할 말은 역사서에서 다 나온다. 눈을 감고 역사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구분구역을 없애기 위한 백인들, 유태인들, 중국인들, 일본인들, 조선인들, 인디언들, 원주민들과 기자들의 인터뷰가 나온다. 정말이지 나는 그들보다 더 멋있는 말을 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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