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소설

모기

영감에 대하여

by 엽서시
방충망.jpg

어느 날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神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神은 재빨리 몸을 던져 자신이 잔뜩 쌓아두었던 창조와 종말에 관한 열다섯 가지 계획안, 방주가 가져올 수 있는 유전적 획일화가 가져올 문제에 대한 논문, 환생에 관한 짧고 간결한 매뉴얼,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윤회 프로그램, 예언자 메신저 사이에서 백지 한 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神은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백지에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神이 백지를 채워나가는 속도는 신의 몸에 팔이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점차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적어 내려가는 것을 멈추었을 때, 神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온몸에 무수히 붙은 팔들을 털어냈다.

백지에 자신이 적어 내려간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신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의 일이었다. 신은 그렇게 다시 한번,

자신의 ‘소설’을 정독했다.

그리고 그 소설이 엄청난 것임을 깨달았다. 아니, 그건

‘완벽한 소설’이었다. 소재의 참신함, 복선, 플롯, 알레고리, 아이러니, 개연성 등이 씨줄과 날줄을 타고 자연스럽게 소설 안으로 얽혀 들어가 있었다. 물론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이건 작가가 神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다. 결말은 또 어떠한가. 정말 누구라도, 심지어 신일지라도 눈물을 흘릴 만큼 아름답고 소름끼치는(이 둘을 같다고 볼 수 있다면) 결말이 맺어져 있었다.

神은 만족했다.

그리고 곧 이 소설을 인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神은 인간들을 잠시 굽어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神은 생각했다.

‘만일 유능한 작가가 이 이야기를 쓴다면 얼마나 걸릴까? 불현듯 계시처럼 소재를 얻고 자료를 모두 모으고 콘티를 완성시키는 데 2년 반 정도, 단어와 단어를 유의미하게 연결짓고 문장과 문장을 한데 얽어 글을 만들기 시작하려면 3년 정도, 아마 7년에서 8년 정도면 이 소설을 완성 지을 수 있겠지. 아마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걸작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온 세계의 유능한 작가들을 굽어보던 神은 자신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유능한 작가 대부분이 이미 자신의 소설을 자신의 걸작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설령 신이 준 영감에 의해 완벽한 소설을 쓴다면 그 걸작을 넘기 위해 그 작가들은 얼마나 남은 여생을 쓸모없이 고군분투해야 할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퍼부을 기도와 저주에 대해 神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듯 했다. 그래서 神은 다른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겠지.’

그럼 작가지망생은 어떨까.

‘작가지망생이라면? 그럼 일단 글로 쓰려고 시도는 할 거야. 아마 제대로 된 얼개도 없이 다짜고짜 글을 시작하겠지. 아마 쓸만한 얼개가 잡히고 자료조사를 시작하기까지만 5년이 넘게 걸릴지 몰라. 그렇지만 언젠가는 글을 쓰기 시작하겠고, 글이 완성되려면 한 12년쯤 걸리겠지. 그리고 퇴고를 거쳐 마침내 이 글이 빛을 발하려면 적어도 18년은 걸릴 거야.’

그럼에도 神은 이 글을 전도유망한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 별 볼일 없는 허섭쓰레기같은 놈을 찾아 그 놈에게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놈에게 이 소설을 주는 것은 神의 소설을 구현하는 것 뿐 아니라 놈의 인생을 구원해주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게다가 놈이 인성이 똑바로 박힌 녀석이라면 자신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를 잡은 것임을 깨닫고 여생을 즐기며 살아갈 것이다.

수많은 가망 없는 작가지망생들을 훑어보던 神은 마침내 적당한 놈을 찾아냈다.

그러나 神은 또 하나의 문제에 봉착했다.

과연 어떻게 이 소설을 이 놈에게 불어넣어준단 말인가. 물론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신이 직접 계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神은 안 그래도 복잡한 인간 세에 또 하나의 사기꾼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다. 인간의 특성상 神이 직접 계시한다면, 그건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컸다. 아마 지금도 수두룩하니 많은 신전들 사이로 또 다른 모습의 신전들이 궁둥이를 비집고 들어설 것이다. 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통해 전해줄 수밖에 없을 텐데······. 의심이 가지 않도록 주변에 흔한, 게다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때마침 神은 모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때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의미심장하게 웃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神은 500개의 눈을 묘하게 빛낼 수는 있었다.

계시를 받은 모기는 표정을 지을 수만 있다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싶었다. 사실 원한다면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날개를 진동할 수도 있었지만 모기는 그러지 않았다. 모기는 알에서 깨어 난지 2주 만에 성충이 되었다.

짧은 삶(게다가 가뜩이나 불안전한 삶이다), 안 그래도 화끈하게 즐기다 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모기는 신의 말똥말똥한 눈망울을 보아 꾹 참기로 했다.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빗물펌프장 근처에서 태어난 모기는 신의 인도에 따라 인간들의 주거단지로 향했다. 놀랍게도 ‘완벽한 바람’이 불어 모기는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 놈의 집 근처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모기는 옆의 동료들 중 다수가 잠자리나 기타 천적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보고 눈을 질끈 감을 뻔 했지만,

500개나 되는 모기의 겹눈에는 눈꺼풀이 한 장도 없었기에 눈을 감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도 언제든지 천적들에게 잡아먹힐 수 있으며, 신이 그것까지는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어쨌거나 놈의 집에 다다른 모기는 이제 놈을 물기만 하면 신의 완벽한 소설은 말라리아 바이러스처럼 놈의 혈관을 타고 놈에게 침투하고 그러고 나면 끝이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그리고 배 양 옆으로 난 기문으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창을 통해 놈의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모기는 놈의 창을 덮고 있는 강력한 모기장을 보았다.

약 40분간의 끊이지 않는 탐구와 답사 끝에 모기는 모기장에 난 틈으로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 틈을 비집고 가는 도중 날개가 걸려 찢길 뻔 했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마침내 놈의 방에서 숨을 들이키던 모기는,

하마터면 너무나도 짙은 놈의 체취와 이산화탄소에 질식할 뻔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모기는 방안의 지세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직 놈은 방안에 없었다. 모기는 책장의 뒤편에 숨을 공간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

놈이 방에 들어와 모기약을 뿌리기 전 까지는.

모기는 욕을 퍼부으며 재빨리 날아올랐다. 모기약의 입자가 공기 중으로 퍼지기 전에 최대한 몸을 숨겨야 했다. 그럼에도 벌써 모기약 입자에 닿았는지 피부가 따갑고 근지러웠다. 숨도 점점 막혀오고 있었다.

방 어딘가에서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초고주파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마 모기약에 정신을 못 차리는 한 동포를 놈이 손바닥으로 내려친 것이 분명했다. 그 처절한 비명소리에 모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신의 계시를 전해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기 자신의 생존문제였다. 인간이었다면 이러한 비참한 상황에서 모기도 동포의 죽음에 똑같이 분개하고 주먹을 말아 쥐고 눈물을 흘렸을 테지만,

모기는 모기였던 고로, 그저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모기약의 입자가 모두 땅바닥에 가라앉아 휘발되기 까지는 약 10여분이 걸렸다. 그때 모기는 방 맨 구석 옷장 위의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놈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놈은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컴퓨터를 앞에 놓은 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모기는 고민했다. 지금 놈이 일에 열중하고 있다면 충분히 물고 달아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놈이 일에 별로 열중하고 있지 않다면?

모기의 날갯짓소리는 괜히 놈의 집중을 흔들 것이다. 게다가 이미 모기는 놈이 충분히 모기를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이 모기에 물리는 모든 탓을 모기에게 돌리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모기들이 놈의 방으로 몰려드는 것은 오로지 놈의 짙은 체취 때문인데도.

어쨌거나 모기장, 모기약이 지배하는 방안의 분위기는 이미 모기에게 숨 막힐 것만 같은 짙은 공포였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를 뚫고 쉬이 날갯짓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동포가 참을 수 없었는지 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기는 동포를 말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동포는 유명한 팔자곡선을 그리면서 놈의 목덜미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제가 중요하다. 이제부터 앉을 곳이 노출된 살갗인지, 아니면 옷 위인지 잘 관찰해야 했다. 게다가 지나치게 근육이 많은 부분도 물기 어려운 부분이다. 물론 놈에게 별다르게 발달한 근육은 없어보였지만 그럼에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또한 모기가 내려앉는 부위는 촉각이 둔감한 부분이어야 한다. 이 모든 점을 모기는 참고서 한 장 없이 오로지 ‘본능’만을 참고해야 했다.

모기는 동포의 용감한 시도를 침을 삼키며 바라보았다. 동포는 오른쪽 목덜미를 목표로 삼은 듯 했다. 그러나 이미 그 시점에서 동포의 시도는 발각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목덜미는 손이 닿기 좋은 위치일 뿐 아니라, 인간의 귀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 물론 사시사철 노출된 살갗이라는 점에서 모기들을 유혹하는 부위이기는 하지만. 게다가 촉각이 매우 예민한 부위가 아닌가. 모기는 눈꺼풀이 있었다면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심정이었다.

놈이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단백질로 이루어진 거대한 살 더미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연약한 곤충의 몸을 으깨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동포는 침착하게 잘 피하고 있었다. 모기는 앞다리를 불끈 쥐며 동포를 응원했다. 그때,

인간이 양 손으로 여기저기에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공기의 떨림이,

동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손뼉 한 번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이미 동포의 오른쪽 뒷다리 끝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어서 방향을 바꾸어야했다. 어서 놈의 시야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번엔 비명도 없이 동포가 으깨지는 소리가,

모기의 털과 짧은 더듬이를 통해 느껴졌다. 비명을 지르는 건 모기였다.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모기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놈이 들을 수 없는 비명.

놈이 만족한 듯이 손바닥에 묻은 모기를 닦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놈은,

몸에 모기퇴치제를 바르기 시작했다.

모기는 원망하고 저주했다. 딱히 세상의 어떤 누군가가 아닌 세상 모든 것을 원망하고 저주했다. 어째서 인간들은 저따위 지독한 것들을 마구 만들어낸단 말인가. 모기는 이제 천천히 고도를 낮추며 놈의 몸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시간은 새벽 3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알싸한 모기퇴치제의 냄새가 모기의 신경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역겨웠다. 그렇지만 모기의 뱃속에는 토할 무언가도 있지 않았다. 뱃속에 있는 알들이 징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모기는 우화한 이후 짧은 삶을 회고해보았다. 비참한 시간들이었지만,

아니, 그 전의 삶은 더더욱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장구벌레의 느린 몸으로 온갖 천적들을 피하던 시간, 수면에 둥둥 뜬 무력한 번데기가 되어 물고기들이 자신을 먹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던 시간, 우화 한 후 날개를 말리기 전까지, 흔들리는 물살 위에서 번데기 껍질 위에 올라 앉아있던 시간. 만일 그때 한 방울이라도 물이 몸에 닿았더라면.

그리고 풀숲에서 그를 만나던 시간. 그와 사랑하고 그와 함께 있던 그 찰나는 풀숲에 맺힌 모든 이슬이 반딧불마냥 빛나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결실이 지금 모기의 뱃속 안에 가득 있었다.

모기에게는 오로지 영양이 필요했다.

모기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달콤한 이산화탄소가 놈의 머리 부근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곳으로 가까이 가는 것은 위험했다. 아직 놈이 수면에 빠진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언제 날갯짓 소리를 듣고 깰지 모른다. 그래서 모기는 그 유혹을 깡그리 물리친 채 놈의 팔뚝을 향해 날아갔다.

놈은 뒤척이지 않았다.

흙바닥마냥 거친 인간의 살 위를 조심스레 걸어 다니며 모기는 최대한 놈의 털을 건드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설령 인간은 자고 있더라도 ‘본능’적으로 팔을 휘두르기도 한다. 자는 와중에도 모기를 공격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모기는 그것만큼은 신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모기는 神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보는 순간,

모기는 자신이 적당한 곳에 와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천천히 모기는 주둥이를 움직였다. 그리고 뒷다리를 비벼 혹시나 묻어있는 이물질을 털어냈다. 이제 모기는 모든 신경을 이 인간의 진동에 집중해야 했다.

모기의 주둥이 양 끝에 달린 톱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둥이가 서서히 인간의 살을 뚫고 나갔다. 주둥이를 통해 펄떡펄떡 뛰는 인간의 핏줄이 느껴졌다. 이토록 많은 피를 자신에게 주길 그토록 아까워한다는 사실에 모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마치 단 한방울의 피를 가진 동물처럼 자신들을 증오하지 않던가.

그리고 모기가 피를 음미하는 순간.

놈의 자율신경계가 왼쪽 팔을 움직였다. 그리고 왼쪽 팔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무시무시한 속도로 오른쪽 팔을 내리쳤다. 둔탁한 파열음이 방안의 공기를 흔들었고, 왼팔의 충격량이 오른쪽 팔에 전해지면서 따끔한 고통이 오른쪽 팔을 흔들었다. 그렇지만 놈은 깨지 않았다.

다만 초고주파의 비명소리가 방안을 메아리치다,

메아리치다,

잦아들었다.

神은 우울했다.

모기가 죽었다. 게다가 神은 죽은 모기에게 과연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모기가 흡혈한 것도, 인간이 모기를 내리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신은 그 모든 것에 간섭할 수 없었고, 그래서 神은 매우,

우울했다.

神의 슬픔이 어딘가의 공기와 습기를 뒤섞었고, 어딘가의 맨틀을 뒤흔들었다. 그것들이 일으키는 행위에 대해 참견할 수도 있었지만 神은 그러지 않았다. 神에게 순간 또는 영겁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神은 놈이 소설 같은 것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

그리고 神은 놈이 써 내려가는 소설의 조잡한 문장을 보고,

잊혀진 모기와

잊혀진 자신의 소설과

잊혀질 놈과

잊혀질 놈의 소설이

가엾어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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