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소설

야동

지금도 어디선가

by 엽서시

이 순간 아무 단어나 떠올려보라.

밝은 단어인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단어인가? 사랑이 깃든 단어인가? 낙천적인 단어인가? 귀여운 단어인가? 뭉글뭉글한 단어인가? 보송보송한 단어인가? 말랑말랑한 단어인가? 따뜻한 단어인가? 부드러운 단어인가? 향긋한 단어인가? 색깔 있는 단어인가? 달콤한 단어인가?

그도 아니면,

어두운 단어인가? 음침하고 습한 단어인가? 증오가 꿈틀거리는 단어인가? 우울한 밑바닥에서 긁어모은 단어인가? 징그러운 단어인가? 꺼칠꺼칠한 단어인가? 텁텁한 단어인가? 날카로운 단어인가? 소름이 돋을 만큼 어지럽게 차가운 단어인가? 지독한 단어인가? 색깔이 없는 단어인가? 생각만 해도 혀가 저려오는 씁쓸한 단어인가?

그도 아니면,

당신만의 단어인가? 아니면 당신과,

또 다른 누군가와의 단어인가? 그녀와의 단어인가? 아니면 그와의 단어인가? 어머니와의 단어인가? 아버지와의 단어인가? 어떤 순간에 관한 단어인가? 어떤 사물에 관한 단어인가? 어떤 기억에 고개를 걸치고 있는 단어인가?

사실 그 단어가 어떤 단어이건 상관이 없다.

이 곳에서는 당신이 어떤 단어를 말해도 좋다. 결과는,

결과가 있거나 결과가 없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많은 수확을 거두려면 국가나 인종을 검색하는 것이 좋다. 기니비사우라거나, 스리랑카, 와 같은 나라는 적당하지 않다. 일본, 러시아 정도는 괜찮다. 특정한 국가가 더욱 큰 수확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이다.

나찌즘, 파시즘, 극우주의, 인종주의 등 그 어떤 사상도 이 곳에서는 가능하다.

서양우월주의도 없다. 이 곳에서 백인들은 유색인종 앞에 놓인 먹이에 불과하다. 혹은 인간이하로 취급되기도 한다. ‘백마’나 ‘젖소’ 처럼 가축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이 곳에서 페미니즘은 역시 찾아 볼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저변에 존재할 수도 있다. 이 곳은, 누구도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곳이니까.

절대적인 것은, 이 곳에 배타주의라거나, 쇄국정책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보호무역 역시 거추장스런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WTO, FTA, 보이지 않는 손, 과 같은 정신은 비로소 이 곳에서 그 오롯한 날개를 편다.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공유.

또한 이 곳에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인권이 있다. 인본주의는 이 곳에서 싹을 틔우지 못한다. 성경에 나오는 비유마냥, 이 곳은 가시밭길이며, 뜨겁게 달구어진 자갈밭이며, 물 한 방울 젖지 않은 황무지다. 이 곳에 떨어진 씨앗은 모조리, 모조리 새들이 쪼아 먹기 일쑤다.

그렇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만으로 모택동은 중국의 참새를 멸종시켰지만, 이 곳의 새들만은 잡지도, 가리키지도 못할 것이다. 이 새들은 모택동이 살찐 손가락을 들기도 전에, 벌써 달아나고 없을 테니.

이 곳은 그런 곳이다.

이 곳은 관음의 성지이다.

이 곳은 타락한 것들이 쾌락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엎드린 곳이다.

이 곳은 썩은 물을 뽑아내는 곳이다.

아아, 이 곳은, 이 곳은.


*** ***

오늘도 검색 창에 단어를 늘어놓는다. 적당히, 수확이 있을만한 단어를 선별한다. 너무 결과가 많아도 좋지 않다. 오래 앉아 채를 치고 있을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그리고.

그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퇴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무도 없는 식탁에서 저녁을 대충 먹고,

컴퓨터에 앉는다. 어두컴컴한 오피스텔에 오로지 밝은 곳은 냉장고 앞과

컴퓨터 앞 뿐이다. 생각해보면 둘 다 욕망으로 가득 찬 곳이기도 하다. 빈 공간보다는 꽉 들어찬 공간이 더 의미 있는 곳이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바삐 울린다. 귀뚜라미가 우는 것처럼 개구리가 우는 것처럼 단조로운 소리가 짙은 공기 사이를 이리저리 오간다. 변하는 모니터 화면을 보며 히죽이죽 웃기도 하고 심각한 표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곧,

이 곳에 들른다.

화랑 김유신이 매일매일 들렀다는 기방처럼, 그리하여 술에 취한 김유신을 메고 말이 달려갔던 그 곳처럼, 그리하여 김유신이 울며 아끼던 말의 목을 칼로 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렇지만, 김유신은 자기 말의 목은 벨 수 있어도 아마 자기 손을 칼로 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벌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손과 자신의 목을, 도대체 어떻게 벌할 수 있겠는가.

검색 결과가 늘어선다. 마치 뷔페와 같다. 화려하게 장식되어있지만, 정작 입에 넣어보면 보잘것없는 것들도 있다. 이미 먹어본 것들도 있다. 그렇지만 먹어보지 못한 산해진미도 이중에 분명 있다. 그렇다. 이 수많은 음식들 중 산해진미를 찾아 마우스 커서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를 선택한다.

잠시 다운로드 바가 찰 때까지 기다린다. 마침내, 다운로드가 끝나면 더블클릭을, 한다. 동영상 플레이어가 영상이 켜질 때까지 잠깐의 기다림을 송구하다는 듯, 알린다. 이정도는 양해해주마.

마침내 화면이 나온다. 어느 좁은 모텔 방처럼 보이는 집구석이다. 아니면 누군가의 자취방이나 오피스텔 쯤? 남자의 벗은 배와 다리가 화면 아래에 비친다. 그리고 여느 동영상이 그렇듯 저음의, 걸쭉한 남자의 목소리가 여자를 희롱한다.

화면의 오른쪽에 작게 보이는 화장실에서 여자의 답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물소리가 그치고, 여자가 문을 열고 나온다. 그리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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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하나의 우상이었다.

3월의 잿빛 캠퍼스에서 풀이 돋아난 건 오로지 그녀 덕분이었다. 그 돌덩어리의 인문동 건물 사이에서 새가 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녀 덕분이었다. 잔디밭에서 햇볕을 쬘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녀 덕분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푸성귀에 물기가 담겨있듯이 웃음이 적셔져 있었다. 그녀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무슨 얘기라도 할 때면, 그건 차라리 애무에 가까웠다. 그녀가 말하는 그 어떤 단어라도, 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숙이, 그리고 머리 안 쪽 어딘가를 건드리고 지나갔다. 그녀와 이야기를 할 때면 내 전부가, 오로지 ‘나’라는 자신이 그녀의 울림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와 함께 숨을 들고 내쉬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어떤 말이건 그녀의 말을 막는 일은 없었다. 차라리 나를 놀리게 두었다. 몇 번이고 그녀가 웃는 웃음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백조의 울음소리와 같았고 피어나는 제비꽃과 같았다.

차라리 그녀의 목소리가 되길 원했다. 그녀에게 내 몸 속의 산소를 내어주고, 그녀의 안을 맴돌다가 그녀의 아름다운 목을 통해, 햇살 같은 그녀의 이빨 사이를 지나 꽃잎과도 같은 입술을 통해 뿜어져 나오고 싶었다.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고 해도.

그녀의 애교는 해변에 뒤섞인 조개껍질과도 같았다. 손으로 헤치면 헤칠 때마다 나오는 작은 보석처럼, 또는 그 잘게 흩어진 조개껍질로 이루어진 해변과도 같았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반짝거리는 보물이었고 보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보물이었다. 구분할 수도 분리할 수도 없는 그 것은 작은 해변의 파도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또 그것을 바라보는 남자들에게 삼킬 수 없는 꿈을 주었다.

그녀는 내게 거의 시선을 두지 않았다. 아니, 나를 비롯한 다른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바다나 파도, 처럼 느껴졌고 우리는 차라리 마음 놓고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는 얘기를 하고 웃으며 입을 손으로 가리는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점심시간이나, 사내들끼리 모인 우울한 술자리에서 우리는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우리끼리 느낄 수 있는 음울한 공감대를 서로 즐기곤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들킬까봐 두려워했다. 그녀를 보는 시선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그녀와 말하고 웃는 선을 넘어, 그녀를 어루만지고 끌어안고 입 맞추고자 하는 욕망이 들끓고 있었다. 동시에 우리는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속에서 그녀를 다시 바라보고 했던 것이다.

그녀의 흰 목에는 검은 점이 있었다. 곧은 상앗빛 목 그 어디에도 흠이 없었지만, 딱 쇄골로 떨어지는 계곡이 있는 그 언저리에 점 하나가 있었다.

아, 그 점은 나를 휘잡아 그 계곡과 보이지 않는 계곡의 심연으로 떨어뜨렸다. 쇄골과 목이 이어지는 그 음영의 언저리에서 나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도무지 나오지를 못하는 송아지처럼 배를 뒤집은 채 허우적거렸다. 빠져나오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그 곳에 갇히기를 원했다. 그 곳을 갖기를 원했다.

어떤 화가도 그녀의 가슴팍 언저리를 훑고 다시 목을 타고 올라가 그녀의 얼굴을 묘사하지 못할 것이다.

감히 어떤 붓이 그녀의 얼굴을 핥을 수 있으랴. 그녀를 곁에 두고 그림을 그린다면 제아무리 목석과 같은 화가라 할지라도 제 붓을 던져 버릴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증오와 질투심에 싸여 그 붓을 다시 줍지도 않을 것이다.

소설가나 시인들은 항상 슬픔에 휩싸인 여인을 묘사하기를 즐겨한다. 그렇지만 내게 있어 그녀는 어딘가 들뜬 종달새 같았고, 봄을 달게 맞는 나비와 같았다. 그녀에게는 어딘가 까불까불하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맞춤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운 눈이 있었다.

다빈치는 붓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미소를 얻었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그녀의 눈에 감도는 웃음은 쉴 새 없이 변했다. 설령 다빈치가 살아나 잰 손놀림으로 그녀를 화촉에 담으려 한들, 그 변하는 눈망울만은 스케치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갓 뽑아 올린 떡잎처럼 순수한 즐거움이 담뿍 담겨 있었다. 슬픔이라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살짝 처져있는 그녀의 눈매에 맺혀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살짝 눈웃음을 거두는 것만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을 시멘트 바닥에 내칠 수 있었고, 반대로 다시 미소함으로써 우리를 천상으로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진정으로 슬퍼하거나 어두운 일이 없었다. 아무 꾸밈이 없는 그녀의 쾌활함은 그 존재만으로, 병아리나 어린 새끼 짐승이 그러하듯이 사람들에게 티 없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다.

웨이브를 진 그녀의 긴 머리는 언제나 어깨쯤에서 알맞게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들의 머리란 항상 알 수 없는 향기를 풍기곤 한다. 남자가 결코 탄생시킬 수 없는 향기와 빛깔을 아낌없이 흘리곤 한다.

170Cm가 훌쩍 넘는 그녀의 키(아, 난 큰 키가 오만함인 여자는 수도 없이 봐왔지만 키가 축복인 여자는 그녀가 유일했다.), 맞춤하게 잘록한 허리, 그리고 숨막히게 아름다운 그녀의 다리를 묘사할 수 있다면.

어차피 완벽하게 담아낼 수 없다면, 쓸데없는 비유는 이제 그만두고 싶다. 이 모든 글들은 어린아이의 낙서에 불과하다. 어린아이의 낙서를 두고, 외국인에게 불국사 다보탑을 그릴 수 있도록 가르치려는 것과 같다. 말은 아무 사실도 담아낼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름답다는 느낌만은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녀가 그만큼 아름다웠기에,

우리의 추락은 길고도 높고 아프고 씁쓸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의대생, 이라고 했다. 차라리 우리는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르지 못할 나무였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나무를 오를 수 있었다. 우리는 차라리 그 사람이 우리 중 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만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우리는 추락했다. 그것은 추접스럽고, 그리고 은밀한 소문이었다. 그 의대생과 같은 동아리인 사람을 아는 사람의, 주로 소문의 진원지는 그런 것이었다. 지진과 다르게, 진원지는 멀고 희미할 수록 그 진도는 컸다. 우리는 우리의 지각이 송두리째 출렁이는 것을 느꼈다.

소문은 구체적이면서도 습습했다. 의대생 그 개자식은, 원래 남자들 사이에서는, 여자들과 자고, 그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는데. 중앙 동아리에서도 그런 것으로 유명한 녀석이라고 했는데.

마침내 그녀와 관련한 이야기가 우리의 귀에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처음이 어땠고,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또 신음소리는 어떻다 따위의.

소문이었다.

소문, 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파문과도 다름없었다. 우리의 천사는 더 이상 성스럽지 못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 이상 날지 못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더이상 빛나지 않았다. 이제 그녀의 뒤에는 음습한 그림자와, 킥킥 대는, 비웃음이 따라다녔다. 그녀의 향기에는 어딘가, 남자의 진한 스킨로션 향기가 풍기는 듯 했다. 그녀의 입술도 그녀의 볼도 그 자식의 지저분한 숨결이 역겨운 침이 닿았던 곳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의 꿈도 허망한 발기처럼 끝나버렸다.

그러나 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우리의 우상이 아니었음에도, 소문은 오히려 점점 짙고,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우뚝 솟기 시작했다. 무언가 지독한 악의를 가진 것처럼 소문은 점점 부풀어 갔고.

어쩌면 그 소문에 섞인 악의에는 우리의 허무하게 끝난 욕망이, 한 몫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눈빛은 더 이상 같은 신을 믿는 신도의 눈빛이 아닌, 공범의 눈빛처럼 변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정수기 근처에서, 자판기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 곳 근처에서, 주말 공을 차기 위한 모임에서, 그 소문들은 여전히 우뚝히 솟아 있었다.

가을이 올 때쯤, 그녀는 그 의대생과 헤어졌다는 소문이 흐릿하게 퍼졌다. 그렇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복도에서 마주친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달랐다.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여전히 내게 예의 그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나는 그 웃음 속에 꺼림칙한 체액이 묻어 있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어느샌가 무성하던 소문도 낙엽과 함께 떨어지고, 잊혀졌다. 마침내 강의실에서 그녀의 뒷모습과 다른 동기 여자애들의 뒷모습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즈음. 난 아직 남아있는 서넛의 동기들과 지독하게 술을 마시고 군대에 갔다. 후에 그녀를 본 적이 있었던가.

가끔 새벽녘의 희미한 의식 속에서 얼핏 그녀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던 것도 같다. 미소. 그 봄날 캠퍼스의 여신 같던 모습과 새벽녘의 창부 같은 모습이 공존하는 그녀의 미소. 그런 꿈을 꾸고 난 다음날이면 난 축축해진 팬티를 벗어던지며 지독한 허무함을 느꼈다.

정말 허망한 발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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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문을 열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비비며 알몸의 그녀가 나온다. 모텔 방에 걸맞게 엉성한 화장대 앞에서 커다란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다. 침대에 누워 얼굴은 나오지 않는 남자,

아니, 더 이상 남자라고 부를 수 없는,

역겹고 더럽고 징그럽고 추접하고 추하고 더럽고 환멸스럽고 경멸스럽고 모멸스러운,

짐승의 목소리가 너저분한 농담을 던진다. 그런데,

그녀가 웃는다.

깔, 깔, 깔,

국어교과서를 읽는 영희의 목소리처럼 그렇게 웃고 난 그녀는 훌쩍 몸을 일으켜 누운 남자의 몸으로 자신의 몸을 포갠다. 그녀의 입술이,

개의 주둥이만도 못한 짐승의 살점 위에,

닿는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다. 화면 밖에서 혀가 뒤섞이고 침이 흐르는 지저분한 입맞춤이 이어졌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찬양하던 그녀의 숨결과 썩은 허파에서 풍겨져 나오는 짐승의 숨결이 섞이고 있다.

화면이 바뀐다.

그녀가 꿇고 화면을 올려다보고 있다. 역시 무어라고 짐승이 끈적한 농담을 던진다. 그녀의 알몸을 보고 있는 짐승의 더러운 몸도 알몸이다. 그녀가 눈웃음을 짓는다. 슬금슬금, 무릎걸음으로 그놈의 밑에 다가온다.

아, 안돼.

그리고 그녀가 그놈의 그것을,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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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움이었을까.

컴퓨터를 발로 차듯이 끄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길고 끈적거리고 미끈거리는 액체가 두 어 줄기 입에서 흘러나왔다. 불을 켜지도 않은 채 변기 앞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한참을 웩웩 거렸다.

두려움인가, 그럼.

사실 목구멍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양 볼의 침샘에서 왈칵왈칵 끊임없이 무언가가 쏟아져 나왔다. 침샘을 뽑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난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위가 뒤집혀져서 목구멍으로 고개를 비집고 나오는 것 같았다. 갈비뼈가 뒤집혀지는 것처럼 아팠다.

눈과 눈 사이에 열이 핑하고 몰렸다. 잠깐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겨울 아침의 콘크리트 바닥처럼 차가운 화장실 타일에서 냉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렁그렁한 눈물을 열고 눈앞에 놓인 변기통을 바라왔다.

다시 헛구역질이 식도를 열고 올라왔다.

그럼 뭐지.

입 안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시큼하고, 목젖 부근을 칼칼하게 만드는 악취였다. 화장실을 짚고 있던 손바닥으로 얼굴을 훔쳤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땀인지 침인지 위액인지 모를 미끄덩하고 뜨끈뜨끈한 것들이 얼굴을 벌겋게 적시고 있었다.

화장실 불을 켜고 마저 거울을 바라봤다. 추하게 일그러진 내가 화면 같은 거울 안에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세면대에 묽은 침을 뱉었다. 물을 틀었다.

괄괄괄괄,

하고 물이 쏟아져 나왔다. 얼굴을 몇 번 훔쳤다.

그날은 잠을 자지 못했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 500ml 캔을 두 개 모두 비웠다. 그러고도 잠이 오지 않아 편의점에 나갈까 하다가 그만 뒀다. 남은 담배를 모두 피우고 입안에 감도는 씁쓸한 기운을 재떨이에 뱉어 버렸다. 길게 재떨이까지 늘어져 끊어지지 않는 뭉근한 액체를 사납게 끊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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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회사에서 집중이, 될 턱이 없었다.

화면을 올려다보던 그녀의 얼굴이 멍하니 허공을 떠돌았다. 모텔방의 붉은 조명과, 정육점의 붉은 조명과, 화장실의 붉은 조명이 합쳐 사야의 어딘가를 빙빙 돌고 있었다.

사타구니가 간질간질해졌다. 자꾸만 바지로 누를 수 없는 것이 불뚝불뚝 거렸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 것처럼,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 배알 어딘가를 멤 돌았다. 내 자신이 나에게 갇혀 좁은 물봉지에 담긴 생선처럼 펄떡거리고 있었다. 아······.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하기 전의 일이었다. 군대 동기 녀석들과 그렇고 그런 곳에 간 적이 있었다. 확실히, 하고 싶으면 늦게 들어가는 게 좋다는, 썩은 누룩 같은 녀석의 말이 생각난다.

역시 싸구려, 붉은 네온사인이 거리를 핥고 있었다. 거리 주변의 그늘에는 사람들이 토해놓은 것들이 어김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거리에 누운 여자도 있었고, 쪼그리고 앉은 채 꺼떡꺼떡 머리를 조는 여자들도 있었다.

쓰레기와 찌라시가 한 곂 낙엽처럼 길거리를 덮고 있었다.

오빠, 나 떨려 키스방, 오늘 촉촉이 젖은 그녀와 함께, 성인 룸 나이트 부킹120% 물 좋은 그녀 힘 좋은 그놈, 같은 찌라시들도 제 몸에 쓰인 글자들이 부끄럽다는 듯이 잔뜩 구겨지고 찢겨진 채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날, 했다.

‘보스’라는 놈한테 돈을 찔러주고 여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이미 여자들은 잔뜩 취해있었다. 한 여자 옆자리에는 누구 것인지 모를 팬티가 놓여 있었다. 녀석은 엄지를 내밀며,

여자는 먹일수록 좋고 넌 덜 먹을수록 좋다며 내게 속삭였다. 안주가 두 번 더 나왔고 술은, 몇 번을 더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잔에 있는 술은 적당히 빼돌렸다. 물 컵에 뱉는다던가. 바닥에 뿌린다던가.

이윽고 여자들이 하나둘 퍼졌다. 녀석은 아마도 노팬티였을 여자를 데리고 가장 먼저 나섰다. 다른 놈들도 하나씩 여자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갔고, 오빠 나 다리아파, 나 역시 한 여자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내게 가장 먼저 번호를 주었던 여자였다. 눈웃음을 자주 치던 여자였다.

계산은?

일행 분들이 하셨습니다.

여자가 아니라, 골뱅이야, 골뱅이.

소주를 탄 맥주처럼, 지울 수 없는 소주 냄새가 나던 녀석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나를 향해 치켜세우던 녀석의 엄지가 아른거렸다.

슬슬 취기가 가셨다. 여자는 잠깐만 쉬겠다고 하더니 완전히 퍼져버렸다. 껍질을 벗어난 골뱅이처럼 흐느적거리는 여자를 어깨에 떠멨다. 여자의 입가에는 소면이 몇 가닥 붙어있었다. 골뱅이 안주와 술을 잔뜩 먹은 여자는,

조금 무거웠다.

모텔에 들어갔고 계산을 했다. 2층이랑 3층 중 어느 방으로,

2층으로 주세요.

내가 먼저 씻는 동안 여자는 쓰레기와 찌라시와 그리고 펑퍼짐하게 퍼져 있던 그 길거리 주변의 토처럼 잔뜩 구겨진 채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침대에 다가갔다.

여자는 색색 코를 골고 있었다.

잠깐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예쁘다, 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치켜세운 듯한 눈썹과 눈매를 살짝 핥고 관자놀이 쪽으로 향하는 아이라인이 약간 세 보이는 인상이었다. 붉게 염색한 머리는 쇄골까지 닿을 듯이 늘어뜨려져 있었다. 여자의 하얀 목과 볼을 훑으며,

얼핏 나는 여자가······.

그녀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터무니, 없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닮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여자와, 그녀가 뒤섞인 그 얼굴을 보다보니, 갑자기 입을 맞추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자의 얼굴 가까이로 얼굴을 가져갔다. 그녀가 날숨을 뱉자,

목구멍 안쪽에 갇혀 있던, 술에 담가진 채 반쯤 소화된 안주 냄새가 풍겼다. 그 냄새에 가만히 입을 맞추고 싶던 생각은 고개를 수그리고 팬티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대신 어깨를 흔들었다.

여자는 눈을 뜨더니, 잔뜩 코맹맹이 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뱉었다. 오빠, 가 어지럽게 뒤섞인 말이었다. 대충,

씻었어?

라고 묻는 것 같았고,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자는 눈웃음을 흘리며 훌렁훌렁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가슴이 진정되면서,

동시에 심장이 뛰었다.

물 봉지 안에 담긴 생선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우럭과 도미와 상어와 고래가, 마트 50원짜리 봉지 안에서 요란을 피우고 있었다. 견딜 수 없이,

외로웠다. TV 볼륨을 높였다. 화질이 좋지 않은 TV에서는 몇 달 전에 방영했던 예능 프로그램을, 마치 생방송인 것 마냥 떠들썩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물소리가 멎었다. 문소리가 났다. 여자는 몇 번 발을 헛디뎠지만 술이 조금 깬 듯한 인상이었다. 오빠, TV소리 너무 크다아, 하고.

여자가 말했다. 어딘가 나사 빠진 듯한 목소리도 아까보다는 나았다. 여자는 타올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한 손으로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비비며,

뭐 보고 있었어어?

하고, 여전히 끝이 늘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하고 TV를 껐다. 여자는 화장대에 앉더니 괴상하리만큼 큰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늘어지게 지루한 그 시간이 싫어서 몇 마디, 농담을 던졌다. 여자가 짧게 웃었다. 그리고 눈웃음을 지으며 침대로 다가와, 입술을

내게 포갰다.

매콤할 정도로 진한 치약 냄새의 한 꺼풀 뒤에는 여전히 반쯤 소화된 안주 냄새가 있었고,

아.

나는 다시 그녀를 확인해야 했다. 그 동영상 속의 그녀를 확인해야 했다.

주말 내내 그 동영상을 다시 찾았다. 수없이 많은 가시덤불을 헤치고, 뜨겁게 달구어진 자갈밭과 황무지에서 애타게 헤맸다. 목이 마르면 옆에 놓인 맥주 캔을 들이켰다. 백마와 젖소와 알 수 없는 일본 여자들의 이름 속을 헤집고 헤집었다.

구역질을 느끼고 컴퓨터를 발로 차듯 끄기 전에, 어떻게 잽싸게 그 동영상을 지울 수 있었던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다. 뭐가 날아오면 눈을 감듯이, 뜨거운 것에 손이 닿으면 얼른 손을 때듯이, 왜, 라는 물음도 없이 조건반사처럼 그것을 지웠다.

잊어버린 것이다.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광경을.

손에 매달린 독사를 던져버리듯이, 입에 든 독초를 뱉어버리듯이,

그리고 미친 듯이 다시 독사를 찾아,

독초를 찾아 계곡을 헤맨다.

두 번 째 500ml의 맥주 캔을 비웠다.

방은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내 눈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다운로드 바가 천천히 차고 있었다.

--

동영상을 튼다. 남자가 누워있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번호부에서 오래된 번호, 하나를 찾았다. 이름과 번호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녀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한 이름이었다. 마치 단 한 번도 이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본 적 없는 것처럼. 오래된 화석을 만지는 기분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 어딘가로 수화음이 또로록 또로록 이어지고 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그녀가 나온다. 내가 우스갯소리를 하고, 그녀가 웃고, 그리고 그녀가 남자의 위에 포개진다.

그래서

다시 동영상을 튼다. 내가 누워있다. 곧 있으면, 저 화장실 문을 열고, 그녀가 나온다, 내가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녀가 깔, 깔, 깔 웃는다, 머리를 마저 말리고, 내가 재촉하자,

그녀가 내게 포개진다,

아,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남자의 어딘가에 닿는 순간이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에서 잠이 깬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지 구분도 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동영상 속에서 그녀가 입을 뻐끔거렸다.

다시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손동작을 멈췄다. 뜨뜻한 액체가 손등을 타고 흘렀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땀인지 침인지 모를, 따뜻하고 뭉근한 체액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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