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삼국유사

도미설화 13

13. 한수의 맹인, 도미

by 엽서시

13. 한수의 맹인, 도미

허공에 검은 점이 떠 있었다.

누가 손가락으로 일러주지 않아도 까마귀임이 틀림없었다. 하늘에 원을 그리던 점이 바투 떨어졌다. 까마귀가 내려앉은 자리에는 반쯤 뜯어 먹힌 시체 한 구에 수 마리의 까마귀들이 붙어 그악거리고 있었다. 새로 입이 불어난 것이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새로 들어온 까마귀가 결국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날개를 퍼덕였다. 그런데 이미 시체에 붙어있던 까마귀들도 곧장 날개를 폈다. 너무 배가 부른지 미처 날개를 펴지 못한 까마귀들은 종종걸음으로 바삐 달아났다.

다리를 절룩이는 웬 개가 시체로 곧장 쓰러질 듯 달려든다. 자세히 보면 아예 앞발이 한 도막이 넘도록 없다. 개는 짖지도 않은 채 시체에 주둥이를 박았다.

도미는 다 쓰러져 가는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손을 들어 땀에 젖은 이마를 연신 닦으며 도미는 불쾌한 시체 냄새에 코를 찡그렸다.

아차성에서 고구려와의 첫 싸움이 있던지 벌써 석 달 열흘이 넘었다. 패색이 짙었다. 눈 먼 도미에게도 분명하게 느껴졌다. 벌써 서쪽 성곽과 남쪽 성곽이 무너졌다. 언제 고구려 병사들이 위례성 안으로 들이닥쳐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그대로 병사들을 옮겨 북쪽 성곽과 동쪽 성곽을 치기 시작했다. 고구려인들은 위례의 지리를 이미 꿰뚫고 있었다. 고구려의 장수는 다름 아닌 그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이라는 말이 파다하다. 재증걸루라면 직접 이 성을 쌓은 이가 아니던가! 고이만년이라면 위례의 쌀을 나르던 이가 아니던가!

백제인들이 비탄에 젖어 수군거리기를, 아마 성곽을 다 부수고 나서 고구려인들이 위례로 들어오고 나면 살아남을 백제인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왕이 시종장과 마지막 남은 기병을 그러모아 태자 문주를 신라로 도망 보냈다는 풍문이 정설처럼 들려왔다. 하긴 소문은 많았다. 개루에 관한 소문만큼이나 이제는 백제의 적이 되어버린 재증걸루에 관한 소문들도 몸집을 부풀리며 수도 위례성을 뒤흔들고 있었다. 개루가 고구려에게 손바닥만한 금거북이를 받고 지조를 팔았다는 말도 있었다. 고개를 저으며 그 말을 반박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다. 일전에 도미는 장터에서 금붙이를 다루는 노인이 재증걸루란 놈은 금이 뭔지도 모르는 백치 같은 놈이라며 제가 그놈에게 금으로 거북이 대가리 도장을 만들어주었다며 침을 튀겨대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바람이 없다. 까마귀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낮이 분명한데, 공기가 꿉꿉한 것이 날이 흐린 모양이다. 도미는 앞으로도 바람이 불 일이 없겠다며 투덜거렸다. 식은땀으로 축축한 등걸에 누추한 걸레짝 같은 옷이 자꾸만 들러붙어 살을 간질였다.

도미는 방금 꾼 꿈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꿈에서는 노상, 도미는 어딘가의 허공에서 장님인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는 형국이었다. 장님 노릇을 하는지라 볼 수 없어야 할 그 색색의 세상이 눈꺼풀 아래에 어찌나 꽁꽁 숨어 있던지. 다만 잠만 들면 눈꺼풀 안에서 자유롭게 번지는 모양이었다.

도미는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전쟁이 일어나기 몇 해 전의 일이다. 한 다섯 해는 되려나.

새벽녘. 재증걸루가 무어라 입을 껌벅이고 있었다. 도미가 방금 재증걸루가 손짓한 풀숲에 손을 대고 낙엽을 헤쳤다. 뒤에서 다시 짜증스러운 듯 재증걸루가 입을 벙긋였다. 도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구덩이를 팠다.

마치 알을 낳기 위해 구덩이를 파려는 두꺼비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재증걸루 옆에 있던 누군가가 살며시 재증걸루에게 칼을 건넸다. 그러나 정작 그 재증걸루에게 칼을 건네는 ‘누군가’의 얼굴은 통 보이지 않았다. 재증걸루가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지만 지켜보고 있는 도미조차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칼날이 엎드려있는 도미의 목뼈를 꿰뚫는다. 도미는 몸을 뒤흔든다.

깨어났을 때는 땀이 온통 몸을 적시고 있었다.

있을 리가 없는 꿈의 일이었다.

고개를 흔들며, 도미는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제멋대로 말도 듣지 않는 다리가 미칠 듯이 쑤셔왔다.

재증걸루와 그들이 달아난 후 개루는 예상대로 미칠 듯한 분노를 터뜨렸다. 도미는 잡혀오자마자 고문을 당했다. 묻지도 않았다. 병사들은 말없이 주리를 조였고 도미는 꿱꿱 비명을 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똥오줌을 지리고, 한쪽 다리를 질질 끌고 밖에 나와서야 알 수 있었던 것은 왈짜가 중신들을 겁박하지 않았다면 도미가 다시 위례의 길을 걷는 일은 없었으리라는 점이다.

고문이 있고 도미는 두문불출 바깥으로 나오는 일이 적었다. 이제 귀족들도 도미의 집에 발을 옮기기를 꺼려했다. 다만 여전히 한수로 들어오는 소금 따위는 도미 패거리의 일이었기에 그나마 도미 패거리가 유지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재증걸루가 도미 집의 담을 넘은 어느 날 밤 이후로,

도미는 변했다. 불교에 귀의한 것이다. 거의 석 달 만에 바깥에 나선 도미의 모습은 예전과는 많이 달리 초췌한 모습이었다. 왈패들은 지금 자기들 앞에서 허옇게 부르튼 입술을 달싹이는 이 걸인이 도미가 맞는지 의문이었으나 부스스한 머리 아래 끔찍하게 얽혀있는 눈꺼풀을 본 순간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한수의 나루에 내린 한 고승 앞에 왈짜의 안내를 받으며 도미가 나타났다. 중국에서 온 고승이라고 했다. 배꼽까지 내려온 고승의 흰 수염이 바람에 펄럭였다. 도미는 귓가에 속닥이는 왈짜의 설명을 들으며 보이지 않는 그 고승의 도력을 한번 가늠해보고자 애썼다.

고승은 도미를 보지 못한 듯이 한 발을 뗐다. 왈짜가 무어라 말하려 하는 것을 도미가 팔을 뻗어 막았다. 그리고 엎드렸다.

왈짜가 그 일을 두고 항상 말하길 그 순간 눈동자가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고 하는 것이다.

고승의 이름은 도림이라고 했다. 도미가 중국에서 온 고승을 집에 모시고 있다는 말이 퍼지자 다시 귀족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고승 자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고 바로 그 도미가 모시는 승려라 하니 또 호기심이 일었다.

도림은 백제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이야기는 필담을 통해 이루어졌다. 왈짜가 거의 우격다짐으로 잡아오다시피 한 오나라 말을 조금 할 줄 안다는 상인이 떠듬거리는 오나라 말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꼭 귀족들이 도미의 집을 찾아드는 이유가 도림 때문은 아니라는 말도 있었다. 여전히 도미 집의 뒷구멍으로는 비단옷을 걸친 여자들이 줄을 지어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도림의 이야기가 귀에 들려오자 호기심을 보인 것은 귀족들뿐만이 아니었다. 개루 역시 그 중 한사람이었다. 자신이 고문한 도미의 집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마음에 걸릴 법도 하건만, 예의 그 ‘보라색 비단옷을 입은 귀공자’가 도미의 집을 찾아드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귀공자가 여자를 찾는 일은 없었다.

도림은 바둑에 능했다. 개루가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도림이 바둑 따위의 잡기에 능하다하여 마음을 빼앗길 개루가 아니었다. 개루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바둑 와중에 도림이 갑자기 말없이 건네는 몇 글자 내외의 조언이었다. 도림은 그 말이 자신의 뜻이라고 밝히지 않았다. 부처의 뜻이니 하늘의 뜻이니 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림에게는 신통력이 있었다. 개루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도미가 집 밖을 나서는 일이 없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오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이들과의 접촉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항상 도림이 건네주는 그 종이는 신통하게 개루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또 하나, 도림이 절이나 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왈패들의 소굴에 머무른다는 점도 개루는 좋았다. 그동안 궁에 들어오기 위해 화려한 법복을 입고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지 떠들어대는 술사들의 노릇을 개루는 골이 지끈하도록 많이 본 탓이다.

그게 개루의 뜻인지 아니면 도미의 진언 탓인지 위례성 공사는 계속 되었다. 또한 백제의 도성 위례성의 규모가 전과 달리 넓어지면서 궁을 옮기는 공사도 이루어졌다. 왈짜가 도미에게 전하는 말에 따르면 만만잖은 규모였다.

다만 원수놈의 고구려가 쳐들어오기 까지는.

고구려의 강병에 백제 병사들은 채 손도 쓰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또는 공사에 연일 지친 병사들이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뒤엣 말은 위례성 사람들이 숙덕거리는 말이다. 결국 전쟁에 진 까닭은, 말에 옮길 수는 없지만.

도미가 집에 다다랐을 때 집안에 기척이 들렸다. 도미는 허연 왼쪽 눈을 까뒤집어 보였다. 심기가 불편할 때 도미가 새로 얻은 버릇이다. 왈짜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요즈음은 이전과 달리 낄낄거리고 웃거나 아니면 가끔씩 무도하게 잔인해지지도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도미를 보고 달려오는 것은 갑주를 걸친 왜소한 중신이다. 이 한더위에 갑주 아래에서 중신의 비지땀이 썩어 만들어낸 퀘퀘한 냄새에 도미는 문득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시더라?”

도미가 지팡이를 더듬으며 인사말을 건넸지만 중신은 헐떡거리느라 입을 열지 못했다. 도미가 비칠거리며 마당에 있는 우물로 향했다. 도미가 오른손으로 건넨 바가지에 담긴 물을 반이 넘게 들이키고서야 중신은 대뜸 말을 꺼냈다.

“도미, 어디 가 있었소?”

“장님이 어디가 어딘지 압니까요?”

남은 물을 마시다가 마당에 휙 던지며 도미가 비실 웃으며 대꾸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요?”

중신은 더운 숨을 뱉으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첩자에 따르면 고구려놈들이 내일 북쪽으로 맹공을 퍼부을 거란 이야기네.”

“그럼 우리 애들은 남쪽으로 보내면 되겠구먼요.”

전쟁이 있고 포위가 길어지고 나자 도미의 왈패들이 위례성의 치안을 맡게 되었다. 그렇다고 전쟁에 뛰어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무너진 성곽으로 도망하려는 이를 잡거나 개루의 호위를 서거나 했다. 왈패들도 이전처럼 조잡한 날붙이가 아니라 제대로 된 무기와 갑주를 받자 감격한 눈치였다. 왈짜도 도미의 눈치를 살피며 갑옷을 집어 들었다. 도미는 묵묵히 예의 그 예전같은 비웃음을 짓다 돌아섰을 뿐이었다.

“그 이야기가 아닐세.”

“그러면?”

도미도 귀를 기울였다. 중신이 도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확 땀 냄새가 도미를 덮치는 것은 물론이요, 늙은이의 입에서 풍기는 냄새가 다가왔다. 중신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개루가 피난 할 예정이네.”

도미는 침묵했다.

“오늘 말이요?”

중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침묵을 도미는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제기럴······.”

신음 같은 욕설을 내흘린 것은 도미가 아니라 중신이었다.

“온조태조께서 위례에 도읍을 잡은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네······. 왕이 한수 이남으로 도망하는 일은······.”

“왕이 행차한다는 데 준비해얍죠. 어서 일어나쇼.”

도미는 그깟 온조태조가 도읍을 세우던 제 물건을 세우던 관심 없다는 듯이 대꾸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중신은 아직도 숨이 찬지 도미가 일어서거나 말거나 여전히 마루에 앉아있었다.

“참, 도림대사는 어찌하실지 왕께서 물어보시라는 분부더만.”

도미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보일 리 없건만.

도미의 귓바퀴 안쪽으로 까악 거리는 소리가 맺혀 들어왔다.

도미의 눈꺼풀 안의 허공에는 또 까마귀 몇 마리가 떠있다.

공기는 지랄 맞게 덥고, 바람은 불 생각을 안했다.

눈꺼풀 안의 하늘은 잿빛으로 뭉쳐져 있고.

도미가 성한 오른팔을 들어 허공에 어림집어 손을 쓰다듬어 보였다. 그러더니 씩 웃음 지었다.

“고향으로 돌려보냈소.”

중신은 별 관심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음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기야 도림이 없으면 왕의 관심을 되찾는 것은 중신들이 될 터이니 잘된 일이다. 도림의 일은 접어두고 다시 중신이 입을 열었다.

“오늘, 잘 준비해두게나.”

도미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중신이 걸음을 끌고 사라지는 소리가 문 밖으로 멀어졌다. 고구려가 위례를 포위하기 전이었다면 그 누런 비단옷을 끌고 깝작이며 하인 여럿과 함께 도미의 집을 찾던 자였다.

또 다시 피식 웃음을 흘리던 도미는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하늘에서 또 다시 까마귀가 울음을 토해냈다.

도미는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지팡이를 집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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