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목
17. 목
개루의 머리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따닥, 따닥, 횃불이 무너진 집으로 옮겨 붙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불똥이 튀었다.
아직 칼을 높이 움켜쥐고 있는 개루의 몸이 한 발짝을 내딛었다. 비스듬히 개루의 오른팔이 땅으로 떨어졌다. 목과 잘려나간 팔은 피를 뱉고 있었다.
그러더니 개루가 넘어갔다.
툭.
어느새 빗방울이 투둑투둑 땅에 젖은 색의 원을 그려대고 있었다.
도미는 귀찮다는 듯, 칼을 집어던졌다.
오른손에 쥔 칼을 그대로 올려붙였다. 개루의 몸을 벤 것은 고구려병사의 몸을 벨 때와 똑같았다. 도미가 문득 무릎을 꿇었다. 개루의 목이 놓인 그 자리였다. 개루가 여전히 그 멍한 눈으로 도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미가 오른손으로 개루의 머리를 집었다. 그리고 자신을 더 똑바로 볼 수 있도록 개루의 머리를 자리를 고쳐주었다.
도미의 몸이 흔들렸다.
도미가 울기 시작했다. 목을 놓았다. 개루의 목을 놓는 동시에 도미도 목을 놓았다.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하늘을 찢어발기는 소리. 어디선가 우르릉, 하늘도 울음을 토했다. 헐떡이던 도미가 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뜨뜻하고 미지근하고 질긴 무언가가 도미의 입 안에서 흘러나왔다. 마치 그것은 도미의 혼 같았다. 동지를 베고 살아남아 여태까지 장님 행세를 해대던 도미 그 자신의 질척거리는 혼 같았다.
울었다. 멈추지 않았다. 눈앞에 놓인 개루의 목도 놀라 달려들 만큼. 고구려 땅에 묻힌 시체들이 벌떡 일어날 만큼.
울었다. 눈동자가 미친 듯이 뛰어놀았다.
울음을 놓던 도미가 갑자기 미친 듯, 주변 흙을 뒤지더니 개루의 목을 베어낸 바로 그 칼을 쥐었다. 거꾸로 쥐인 칼날이 바르르 떨며 도미의 목을 곧바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칼이 움직이기 전, 누군가 그 칼을 쥐었다.
도미가 그 누군가의 손을 바라보았다. 칼날에 피가 배어나오고 있는 흰 손.
그 손을 바라보던 도미의 눈에 물이 괴기 시작했다. 붉게 바랜 눈자위에서 하염없이 솟아나오는 물이 볼을 적셨다. 적시고 적신 물이 떨어져 도미의 옷을 적셨다.
도미의 등도 젖기 시작했다. 여자의 눈물인지, 또는 빗물인지.
비가 세차게 위례성을 때리기 시작했다. 비중에 도미는 소리 없이 울며 여자를 안았다.
더운 빗물이 위례성을 적셨다.
한수의 물이 불어나 출렁이는 물결 위로 작은 나룻배 하나가 둥실둥실 북으로 떠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