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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서시

어느날 명태국을 먹다가

by 엽서시
IMG_20150922_220719.jpg 숟갈을 들고 한참을, 말도 안되는 것을 생각하다 그만 웃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명태에게는 명태의 살결이 있다.

살결은 명태가 오가는 파도를 닮았다.

그것은 명태가 걸은 길이나 다름없기에

끓는 물에 국물이 우러나오도록 삶긴 채

젓가락에 잡혀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날 나는 찬 물에 몸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살에게 물었다.

내 살에도 살결이 있을까.

그렇다면 내 살결에도

전철역과

역 앞 주차장과 고깃집과 네 집까지 가는 버스 정거장과

대학생들이 흥청흥청하던 작은 맥주집과 네가 다음에 또 오자 했던 국수집과,

또 다른 전철역,

그리고 그 곳에서 네가 일하는 병원까지 걷는 길,

거미줄처럼 낡은 빌라와

봄에는 능청스러이 꽃이 늘어지던 개나리와

성냥갑 같이 선 병원과

교차로와

환자들이 나와 줄담배를 태우던

내가 널 기다렸던 주황색 벤치가

실핏줄처럼

이제 쓸모없는 지도가 되어

내 길을 결마다 담고 있을까.

우리가 같이 걸었던

잠실 석촌호수 길과

방배동 몽마르뜨 공원과

가평 어딘가 그 풀이 우거진 둑방길이

흔적처럼 남아있을까.

우리가 가지 못했던

창경궁 숲 길과

몽촌토성 공원이

막히다 터져 흐른 핏방울처럼 아로박혀있을까.

너와 함께 다진 이 살결은

얼마의 시간이

더 삶아야

마침내 산산이

완전하게 흩부서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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