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에게는 명태의 살결이 있다.
살결은 명태가 오가는 파도를 닮았다.
그것은 명태가 걸은 길이나 다름없기에
끓는 물에 국물이 우러나오도록 삶긴 채
젓가락에 잡혀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날 나는 찬 물에 몸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살에게 물었다.
내 살에도 살결이 있을까.
그렇다면 내 살결에도
전철역과
역 앞 주차장과 고깃집과 네 집까지 가는 버스 정거장과
대학생들이 흥청흥청하던 작은 맥주집과 네가 다음에 또 오자 했던 국수집과,
또 다른 전철역,
그리고 그 곳에서 네가 일하는 병원까지 걷는 길,
거미줄처럼 낡은 빌라와
봄에는 능청스러이 꽃이 늘어지던 개나리와
성냥갑 같이 선 병원과
교차로와
환자들이 나와 줄담배를 태우던
내가 널 기다렸던 주황색 벤치가
실핏줄처럼
이제 쓸모없는 지도가 되어
내 길을 결마다 담고 있을까.
우리가 같이 걸었던
잠실 석촌호수 길과
방배동 몽마르뜨 공원과
가평 어딘가 그 풀이 우거진 둑방길이
흔적처럼 남아있을까.
우리가 가지 못했던
창경궁 숲 길과
몽촌토성 공원이
막히다 터져 흐른 핏방울처럼 아로박혀있을까.
너와 함께 다진 이 살결은
얼마의 시간이
더 삶아야
마침내 산산이
완전하게 흩부서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