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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서시

모리국수

by 엽서시
IMG_20150926_215335.jpg 할머니도 모린다는 모리국수

할매요 여기 뭐가 들었능교

내도 모린다

모리국수 안에 뭐가 들었는지 할매도 모른다.

젓가락에는 아구도 걸리고 삼식이도 걸리고 쪽새우도 걸리고 황태 부스러기도 걸린다. 성한 것, 실한 것은 없다. 젓가락을 쪽 빤다. 퍼지게 삶은 국수에서 무럭무럭, 김이 난다. 붉은 국물을 한 국자 뜬다. 할매가 가득 떠온 냄비는 바다처럼 깊고 짜다. 가득하다. 성하지도 않고 실하지도 않은 모지란 것들이 여기 모여 흘리는 땀이 가게에 가득하다. 모지라노, 내 더 줄게, 할매는 군인에게 대답도 듣지 않고 국수를 더 끓여준다. 푸지게도 준다.

할매, 배부른데요, 괜찮은데요 하는 소리를 국수가락과 함께 삼키며 마지막 건더기를 건진다.

이름이 거창한 구룡포에는 시금털털한 막걸리만 있는 게 아니다. 모리국수가 있다.

골목을 꺾어 들어가면 볕도 들지 않는 벽에 기대 기다리는 포항 사람들이 줄을 섰다. 사람이 많으면 모리는 사람과도 한 상에 앉는다. 할매가 들고 오는 깊다란 냄비에는 붉은 모리국수가 펄펄 끓는다.

이제 시큼한 막걸리는 한 모금에 넘기고 젓가락을 들자, 국자를 들자.

양만은 모지라지 않은 국수다. 모리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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