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엽서시

낡은 삼익 하모니카 상자

by 엽서시


잘 지낸다,

라고 말한다.

서랍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낡은 삼익 하모니카 상자처럼

찾은 말을 입 바깥으로 끄집어낸다.

잘 지낸다.

한 글자씩

위에 쌓여 있던 먼지는 손바닥으로 훑어 내고

꼳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전과 비슷하게는 들린다.

잘 지낸다.

꺼낼 때마다

무언가 부딪히는 것은

추억 아닌 다른 무언가 때문

아니면 그 추억이 거추장스럽기 때문일까.


잘 지내니.

라는 말은 두었다.

갈비뼈 안쪽 또는 허파꽈리 어느 옆

그림자에 가려 찾지 못한 것처럼 그냥 두었다.


입을 닫는다.

바람이 분다.

입꼬리를 당긴다.

비스듬히 새어 나오는 말,

잘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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