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엽서시

그의 해바라기

반 고호의, 경비원의, 조용필의

by 엽서시

상계동 주공아파트 모 단지 모 동 앞에는-정확하게 밝힐 수 없는 점을 이해해주십시오-이 맘 때만 온갖 화분이 늘어섰습니다, 흡사 프랑스 장군의 정원에라도 온 것처럼 이국스러운 꽃들에 눈이 다 호사스러웠습지요. 경비원들이 한바탕 정리되고 난 지금은 맨 화분 투성이지만-아이고, 바쁜 퇴근길에 들어와봤더니 시는 아니 시작하고 무슨 사설이냐굽쇼, 예, 그럼-

나는 그런 해바라기는 처음 보았기에

그 앞에 섰다


늙은 경비원이 주름 가득히 웃음을 끼고

내 옆에 와 섰다


내가 무슨 말이라도 묻기를 한참 기다리던 그는

-이게 무슨 해바라기 꽃인지 알아요

하고 내게 물었다


무슨 품종일까,

나는 잠잠이 생각하였다


이어서 그 경비원은,

-이게 반 고호가 그린 해바라기에요,

하더니 합죽이 웃었다


그러더니,

-왜 조용필이 노래에,

하고는 해바라기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내 오른편에 선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는데 왼편 귀가 보이지 않고 눈이 움푹 팬 것이 꼭 어느 화가 같기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배를 쥐고 먼 아프리카의 야산을 헤매는 것과 같다던 가수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러고나서 다시 해바라기를 올려다보니 그가 흙에서 퍼올린 그림으로 한 붓 한 붓 그려낸 것 같기도 하였고 돌멩이 사이에서 샛노란 음색만 골라내 모아둔 것 같기도 하더라


오늘 텅 빈 화분들만 계단 옆에 쌓여 있는 것을 보는데

마치 빈 화폭 같기도 하고 빈 오선지 같기도 하였다


해바라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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