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엽서시

표범이 달아난 우리

문득, 가끔씩, 바람 같이 불어오는 허전함

by 엽서시

짧게 다닌 직장을 나와

밤과, 그리고 오전이 길어졌던 날에

어느 꿈을 꾼 적이 있다

내 안에

있는 동물원의 우리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꿈이었다


숨이 멎었다

몇몇 우리가 열려 있었다

우리 안에는

도무지 찾을 길이 없을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무엇이 달아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총명일까

도전? 아니면 정의감이라거나…….

꿈을 깨고 일어났을 때

나는 짧은 글을 휘갈겨 적었다

적어도 아직 내 안에

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서,


가장 안에 있는 낡은 우리에

시는 우울한 눈빛으로 쭈그리고 앉아

말라붙은 물그릇을 보며 있을 것이다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하고

밤은 짧아지고 아침이 사라졌다

나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나는 내게서 달아난 것들,

어쩌면 세 마리의 표범인지도 모르지 -

이 있다는 것을 숨기고 산다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은 것처럼 산다


그러나 가끔은 생각한다

그것들은 다른 어떤 누군가의 가슴으로 달아나 살고 있을까

파란 잔디가 깔리고 물이 졸졸 흐르는 곳에서

팔다리를 죽 뻗으며 살고 있을까


낡고 텅 빈 우리같은 가슴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누릿한 냄새만이 남아 있다


표범 3말 탈출.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