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그리고 벚나무

by 엽서시

간밤의 비에 벚꽃이 다 졌으니 봄도 다 갔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진심으로 재미 적다는 표정으로 그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한 사내가 떠올랐다

그 사내는 사무실에서 눈에 띠지 않았다 풀 사이에 숨은 풀과 같은 사내였다

가끔 팀장이 목소리를 높일 때 그는 가만 고개를 숙이고 속눈썹이 긴 눈을 내리 깐 채,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사내와 술자리에서, 대학교 시절, 그 사내가 서핑보드 서클의 회장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사진 속에서 사내는 건강한 구릿빛이었다, 누구보다 화려한,

내가 호들갑스럽게 놀라자 사내는 가만 웃었다, 속눈썹이 긴 눈으로,


그 사내를 떠올리니 아침 출근길에 보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서서, 또는 앉은 채, 흔들리고, 흔들리며, 전철 속의 벚나무들,


간밤의 비에 벚꽃이 다 졌다

벚나무는 여느 나무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벚나무 아래의 그늘에 가 서보았다

잎들이 움을 틔우고, 또 움을 틔운 잎들이 햇빛을 받는 중이었다

아직 봄은 끝나지 않았다 벚꽃이 다 져도 봄은 개의치 않는다

벚나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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