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제나라에 큰 강이 하나 있었는데, 그 강을 사이에 두 선비가 살았다. 사람들은 강의 남쪽에 사는 선비는 남생(南生)이라 불렀고, 강의 북쪽에 사는 선비는 북생(北生)이라 불렀다.
남생의 집안은 유복하여, 기름진 흑토(黑土)의 논밭이 일천 마지기에 달했다. 남생이 대문을 나서면 거리의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도련님, 복 받으십시오.”하고 인사했다. 남생은 아침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짓기에 몰두하였는데, 여름에 찌는 듯이 날이 더워지면, 산사(山寺)에 들어가 책을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겨울이 되어도 글 짓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비로소 나라에 큰 과거가 열렸는데, 남생은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을 널리 알렸다. 후에 남생이 높은 벼슬에 올라 넓은 소맷자락을 휘두르며 말하기를,
“내 지금의 영달(榮達)*은 책 읽고 글 짓는 일을 파하지 않음에서 비롯했다.”
라고 하였다.
북생의 집안은 한미(寒微)*하여 집안의 창고에 쌓아둔 곡식이 없고 겨울에 입을 의복이 없었다. 북생은 일찍이 쟁기를 이고 아침에 나가 남의 밭을 갈고, 낮에는 남의 논에 김을 매고, 남의 소를 배불리 먹인 뒤에야 제 끼니를 먹을 수 있었다. 봄과 여름에는 다리에서 흙이 마르는 일이 없었으며, 가을에는 손에서 낫과 쇠스랑을 떼는 일이 없었다. 겨울이 오면 산에 나가 솔가지와 낙엽을 그러모아 거리에서 팔아 푼돈을 벌었는데, 정작 집에는 땔감이 없어 이불을 덮고도 추워 이빨을 떠는 소리가 마치 박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북생은 스스로를 두고 소학(小學)도 채 떼지 못한 선바라 부르며 웃었다.
사람들이 남생과 북생의 처지를 두고 이야기하기를, 남생은 재능을 갖추고 갈고 닦기를 멈추지 않았으니 크게 성한 것이요, 북생이 끝내 미천함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게으르고 둔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때 한 스승이 말하기를,
“장강(長江)의 남쪽에는 황새라는 새가 사는데, 그 키는 한 길이 넘고, 두 날개를 펴면 1장(丈)*에 달한다. 황하(黃河)의 북쪽에는 뱁새라는 새가 사는데, 그 키는 세 촌(寸)*을 겨우 넘어 두 날개를 펴도 사람 손바닥에 채 이르지 못한다.
어느 날, 두 새가 경주를 했다. 두 새가 경주한 것을 두고 어느 새가 멀리 날아갔는지는 쉽게 떠들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어느 새가 더 날기에 공을 들이고 힘을 썼는지는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새가 태어날 때 스스로 날개의 길이를 정하여 태어나지 않는다. 선비도 그와 같으나 세상은 그저 누가 크게 되었고 누가 한미한지 떠들어대는 것은 쉬운 일이나 누가 학문에 진실된 뜻을 두었으며 누가 진심으로 성현의 말씀을 대하였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성현께서 말씀하시기를, 학문은 옳은 뜻을 구하고 갈고 닦는 일이며 선비는 이를 평생 구하는 자라 하셨다. 성현께서는 영달의 결과를 두고 선비를 평한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