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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서시 Jul 28. 2022

개미귀신에 대해 논하다

 개미는 의로운 벌레로 의충(蟻蟲)이라 한다. 땅에 구멍을 파고 살기 때문에 누(螻)라고도 불리며, 풀밭에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발발거리며 다니기 때문에 현구(玄駒)라고도 부르고, 양떼와 같이 서로 뭉쳐 사는 모습을 두고 의양(蟻蛘)이라고도 부른다.

개미의 천적으로 거미(蝥)가 있는데, 그중 개미거미(蟻蝥)라 하는 것은 비록 거미이나 그 몸의 외양을 개미와 같이 따라한다. 하여 개미 무리를 만나면 그 꽁무니를 따라가다 짐짓 무리에서 뒤처지는 체하여 저를 도우러 오는 다른 개미의 목을 물어 그 목숨을 취한다. 또 파리(蠅) 중에 개미의 목에 알을 낳는 파리가 있는데, 구더기들이 개미의 몸을 집으로 여기고 파고 들어 끝내 먹어치우니 그 꼴이 참혹하다.

 그러나 개미의 천적 중 가장 매서운 것으로 개미귀신(螞蟻鬼說)을 들 수 있다. 개미귀신은 그 색이 모래의 빛으로 누르칙칙하고 두 이빨이 뻗은 것이 마치 깃털을 꽂은 조우관(鳥羽冠) 같다. 몸피는 살이 쪘으나 다리가 가늘고 짧아 그 형태가 아귀처럼 추하다. 이들은 거미가 그물을 치고 나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모래 가운데 조그만 구덩이를 파고 개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데 개미가 떨어져 그 구덩이 안쪽에 이르면 이빨로 개미의 목을 물어뜯는다.

개미귀신이 구덩이를 파고 개미를 잡는 꼴이 이와 같다.

어느날 마당에 개미귀신이 판 구덩이가 있는 것을 보고 구경을 하고 있는데 불개미(火蟻) 한 마리가 개미귀신의 구덩이에 떨어졌다. 불개미가 황망히 놀라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깨어나니 이윽고 시간이 흘러 불개미의 눈이 어둠에 익은지라, 구덩이 안에 이미 여러 개미들이 벌벌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불개미가 마음이 의아하여,

 “이곳은 개미귀신의 굴이요, 도망하지 않으면 죽는 것이 자명한지라. 그런데 어찌하여 다들 도망하지 않고 숨어 떨고만 계시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다른 개미들이 말하기를,

 “개미귀신은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오. 먼저 움직이는 이를 이빨로 물어뜯으니 이 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오.”  

 하고 답하였다. 이에 불개미가 놀라 다시 묻기를,

 “그렇다 한들, 누구도 달아나려 들지 않으면 누구도 살 길이 없는 것인데, 어찌 그렇게들 움직이지 않고 있으시오? 또 내가 굴러떨어져 정신을 잃었을 때 누구도 나를 깨우고 구명하려 들지 않았으니, 이는 개미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오?”

 하였으나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불개미가 구덩이 바깥으로 나가려 시도하자, 개미들이 겁을 먹고 놀라 불개미를 말리며 말하기를,

 “그대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불개미가 웃으며 말하기를,

 “당신들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데, 죽는 것을 무서워하다니 가히 우스울 뿐이오.”

 하고 몸을 일으켜 경사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구덩이 안의 개미들은 놀라 벌써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서로 눈을 가리며 야단을 떨었으나 불개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 구덩이의 개미귀신이 이미 풀벌레로 우화하여 구덩이를 버리고 나간 탓이었다. 이어 불개미가 나뭇가지 하나를 물고 와 개미들에게 던져주니, 개미들이 서로 앞다투어 나뭇가지를 밟고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     


 생각건대 죽음의 위기(虎口)에 처해 있어도 발버둥하여 스스로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스스로 죽어버린 자는 누구도 구할 수 없다. 진실로 두려워할 것은 내가 아직 이르지 않은 두려움으로 나 자신을 죽이고 내 자리에 머물러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도모하는 일이 비록 어려운 일이나, 도모하지 아니하면 영영 그 길이 없는 것이니, 길이 영영 끊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스스로 그 길을 끊어버리는 것을 더욱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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