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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서시 Sep 27. 2022

피휘설(避諱說)

 임금의 이름을 휘(諱)라 한다.

 무릇 초야에 묻힌 뭇 백성의 이름도 입에 함부로 올리는 것은 꺼리는 법이니, 감히 임금의 이름에서야! 하여 임금의 이름을 입에 올리거나 종이에 적지 않는 것을 피휘(避諱)라 하며, 이를 명령으로 남긴 것은 국휘(國諱)라 한다. 그 이름자를 다른 글자로 바꾸어 적는 것을 피휘대자(避諱代字)라 하며, 그 한자를 부득이하게 적게 될 때 감히 입에 올리지 말라는 뜻으로 획을 생략하는 것은 피휘궐획(避諱闕劃)이라 한다.

 황제의 이름에 이르러서 피휘는 더욱 지엄한 법이어서, 당 태종(이세민:李世民)의 이름은 관세음보살을 관음보살로 바꾸었으니, 부처도 국휘를 피할 수 없었다. 청나라 강희제 때 대명세(戴名世)라는 이는 문집에 명나라 황족의 휘를 올린 죄로 일족이 몰살되었으며, 건륭제에 이르러 강서의 팽가병(彭家屛)은 가문의 족보를 만들던 중, 건륭제의 휘를 올 죄로 팽가병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집안의 일족은 모두 참수되었으니, 족보가 도리어 가문을 끊은 결과가 되었다.

 피휘는 본디 주(周)나라에서 시작하여, 시황제에 의해 성립되었으며, 당(唐)과 송(宋)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우리에게 이르러서 고려 시절, 태조의 이름과 태조의 아버지의 이름을 결획(抉劃)하여 피휘하였으며, 신라와 고구려도 피휘를 한 기록이 있다.

 임인년에 우리나라에서 대국(大國)으로 사신을 보내었다. 황제가 조칙을 내리고 파하여 돌아오는 길에 사신 일행의 우두머리(정사: 正使)가 긴장을 놓고 독백을 하였는데, 주위 사람들이 듣고 이르기를 황제의 이름을 입에 올렸으니 엄벌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며 정사를 욕하였다. 그러나 정사와 친한 이들은 정사를 두둔하여, 정사가 마음을 풀어 흩뜨리는 바람에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입에 올린 것은 사실이나, 감히 피휘하지 않았으니 피휘의 죄를 입에 올리는 이들은 정사를 음해하려는 자들이라 욕하였다.

 정축년(1877년) 도마(Thomas Edison)란 자가 축음기(蓄音機)를 만든 이래, 그 목소리를 담아 얼마든지 재생하는 일이 가능하였는데, 온 강산의 사람들이 둘로 나뉘어 정사의 목소리를 재생하고 다시 들으며 피휘 여부를 밝히는데 여념이 없었다.  

 본디 사람의 머리 양쪽에 귀가 있으며, 귓구멍은 머리통으로 똑바로 뚫린 것이니, 듣는 것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사람의 목소리를 잘못 들을 일은 많지 않다. 심지어 한둘이 아닌 여러 명이 똑같이 잘못 듣는 일이 있겠는가. 또 만일 잘못 듣는다면 모두가 함께 잘못 듣게 되는 것이지, 절반만 잘못 듣고 절반은 옳게 듣는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온 강산이 이처럼 나뉘어 한쪽은 피휘한 죄를 떠들고 다른 한쪽은 모함의 죄를 떠들어대니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진(秦)의 환관 조고(趙高)가 권력을 쥔 뒤, 황제 호해에게 지극히 귀한 천리마를 얻었으니 함께 감상할 것을 여쭈었다. 호해가 나와 보니, 조고가 천리마라고 끌고 온 것은 사슴에 지나지 않았다. 호해가 웃으며, 사슴을 두고 말이라 하니 환관의 눈이 어두운 것인가 물었다. 그러자 환관은 사슴을 말이라 칭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누구의 말이 옳냐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조고의 권력을 두려워하여 사슴을 두고 말이라 하였다(指鹿爲馬: 지록위마).

 조고가 말이라 한 것은 사관(史官: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이 사슴으로 바로 적었으나, 이번 일에는 바로 적는 사관이 없다. 누구는 사슴이라 하고, 누구는 말이라 하는데, 앞으로도 무엇인지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대국에서 이르기를, 황제는 피휘 여부를 괘념치 않는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은 피휘의 죄는 관심없이 그저 둘로 나누어 다투기를 자신의 귀가 맞으며 상대의 귀는 잘못되었다 욕하고 떠들며 입씨름하기 바빴다.

 때로 사람들이 내게 묻기에, 나는 한미한 촌부(村夫)로, 우둔함이 돌과 같으니 사슴과 말의 여부를 알 길이 없다 답하였다. 대저 고금에 드문 일이니 글로 적어 기록에 남긴다.

 임인년 적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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