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가 왔다

by 엽서시

처서(處暑)가 왔다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던가,

내 방의 그놈도 입이 비뚤어지고 말았다


약을 치기도,

그렇다고 서랍장, 옷장 그늘마다 뒤져가며

놈을 잡는 일도 고된 일,

차일피일 내버려 두었더니


처서가 왔다

내 피가 담긴 배를 부풀리고

놈은 비뚤어진 입으로 숨을 고른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온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제도 내일도 없이,

그저 오늘 부푼 배를 붙들고

비뚤어진 입으로 무엇을 말하려는지,

처서가 가도 입은 돌아오지 않을 것인데……

이슬이 얼고, 서리가 치고, 입동(立冬)이 성큼성큼 올 것인데……

놈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모를 리 없다,

놈이 모를 리 없다는 것을 나는 또 어찌 아는가……

그 이유는……


그렇다,

내 방에는

몸 안에 똑같은 피를 담고

똑같이 입이 비뚤어진 놈이 둘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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