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기] 기간제

by 엽서시

사실은 기간제였다,

계약서를 쓴 기억만 없는 것이지―


언젠가는 책상 한구석에 놓인 편지지 뭉텅이를 보고, 혼자 웃었다

그에게 써야지, 하면서 나는 저 많은 편지지들을 산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하는,

그 모든 일들도 사실 기간제였다


마주치는 모두가 기간제다

어느 날 새벽 공기가 죽은 까치를 발로 차고 있는 것을 보고 알았다

지금 날아가는 저 새들도 기간이 있단다,

발밑의 낙엽이 말했다


나를 마주하는 모든 것들과

내가 겪는 모는 것들,

살갗처럼 가깝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사실은, 기간제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더 이상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설움도

이제는 괴로웁지 않다,

이 설움도 기간일 것이다,

그의 사랑도 그러하였듯이,

나를 꿰뚫고 지나간 그 모든 일결국 그러하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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