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사랑한 소년과 소년을 사랑한 넝쿨의 이야기
공주가 말하였다.
“너의 이야기대로라면 너는 나를 위해서라면 너 자신을 바치고 또 나를 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맹세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하등의 이득이 되지 않는다. 너를 만나기 전의 나와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고통을 받는 것은 오로지 너 뿐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
“공주님께서는 그것이 어리석다고 말하십니까.”
공주가 말하였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에 자신의 하루를 뺏기는 일이다.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에 매여 보내는 일이다. 그런데 너는 감히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나를 보지 않겠다고 말하는구나.”
“공주님께서는 과연 공주님의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현명하시고 지혜로우십니다. 히말라야의 은둔자들도 공주님보다 명백하게 사랑에 대해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주님께서는 수많은 사랑의 결과에 대해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공주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공주에게 허락을 받고 사랑이 가져올 수 있는 수많은 결과 중 하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무를 사랑한 소년과 소년을 사랑한 넝쿨의 이야기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다른 소년들과 그 소년을 구분하는 특징은 다름 아닌 그 소년이 가진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소년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은 날아가던 새조차 하염없이 그 소년의 머리카락을 바라보게 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능금처럼 붉은 뺨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에 얽힌 이야기를 늘어놓겠습니다. 소년은 종종 화원에서 낮잠을 청하곤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원에는 언제나 소년을 보기 위해 살랑거리는 미풍이 불어와 시원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소년의 아름다움에 찾아오는 불청객도 때때로 있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어느 날 소년의 뺨에 붙어있는 말벌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벌들은 소년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년의 아름다운 뺨을 능금으로 착각해서 앉아 쉬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어머니가 거칠게 손을 휘두르자 놀란 말벌들은 일제히 날아들어 소년의 어머니를 공격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소년의 어머니는 벌에 쏘여 죽었던 것입니다.
소년의 슬픔은 컸습니다. 그래서 소년의 아름다움에는 우수가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아.
말하고자 하니, 우수가 깃든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그 자체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꽃잎에 맺힌 이슬이며 소녀의 머리에 걸린 화환입니다. 설명하자면 더할 수 없는 것에 얹어 그 것을 빛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소년은 매일같이 길을 걸어 어머니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어머니의 무덤으로 찾아가는 길은 아주 덥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소년은 언제나 그 우수를 더한 아름다움을 흔들며 그 길을 걸어가곤 했습니다.
길을 걷던 소년은 해가 더워지면 길가에 나있는 한 나무에 기대어 쉬곤 했습니다. 그 나무는 더운 길가에 홀로 그늘을 드리우며 서있는 나무였습니다. 쭉 뻗은 아름다운 줄기와 짧은 가지들이 무성하게 얽혀 태양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나무의 그늘에서 지친 무릎을 달래던 소년은 마침내 그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어머니를 사랑하게 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지친 소년을 달래주는 것도 그 나무였으며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그 나무였습니다. 사슴을 닮은 소년은 그래서 영양이 물가의 나무에 몸을 기대는 것처럼, 항상 그 나무에 기대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였습니다. 그 해의 가뭄은 온 땅을 북아프리카의 끝없는 사막으로 만들기라도 할 것처럼 맹렬하고 극렬하게 타올랐습니다. 나무들은 벌써 아궁이에 들어간 것처럼 줄기가 바삭바삭 마르고 누렇게 변한 잎을 떨어뜨리곤 했습니다. 그 것은 소년이 사랑한 나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독하게 타오르는 태양을 피해 집에 있는 동안 소년의 걱정은 오직 그 나무 한 그루를 위해 피어올랐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자연물과 더불어, 소년의 아름다움에 반한 소녀들이 집 밖에서 그토록 소년을 갈구하는 데도 이미 소년의 정신은 나무의 줄기를 어루만지고 그 잎을 쓰다듬으며 더불어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소년 자신이 수나무이고, 길가의 나무가 암나무라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소년의 늘씬한 육체에 들어있던 육욕은 햇빛에 바래고 그 대신 나무의 혼이 들어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소년을 사랑한 넝쿨이 있었습니다. 나무와 달리 넝쿨은 적은 물로도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었습니다. 나무의 그늘에서 햇빛을 피하며 조금씩 잎을 피워내던 그 넝쿨은 역시 매일같이 찾아오던 그 소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넝쿨의 어리석음은 결국 이 넝쿨에게 비극을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넝쿨은 매일같이 나무를 사랑하는 이 소년에게 정신없이 빠져들었습니다. 결국 이 넝쿨은 이 소년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이 소년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소년의 찬사와 기도를 들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만큼 소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아, 소년이 창가에서 길가의 나무를 위해 기도하는 동안, 넝쿨은 줄기를 뻗고 덩굴손을 내밀어 나무를 타고 기어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무의 마지막 한 줄기까지 뒤덮고 오히려 그 위에서 자신이 울창한 잎과 꽃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소년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던 넝쿨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넝쿨은 자신이 그 나무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무의 겉을 뒤덮고 스스로 그 나무가 되고자 했습니다. 멀리서 보자면, 넝쿨은 이미 나무와 한 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행자가 가까이에서 손을 대고 눈을 대어 보노라면, 나무는 이미 말라죽어 넝쿨의 지지대가 되어있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가뭄이 끝나 비가 내린 다음날, 소년은 나무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소년은 알라의 위대함을 찬미하며, 나무를 지켜주신 모든 것들을 위해 노래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년의 나이에서 섣부른 판단은 아직 죄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소년은 멀리에서 보이는 나무와 넝쿨의 그림자를 보고, 그것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무인 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무의 그늘에 이르고 말자, 소년은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년의 일그러진 표정과 찌푸려진 이마를 상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순간 이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진 넝쿨의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소년은 말라죽은 나무의 줄기를 만져보았습니다. 하얗게 바랜 나무의 줄기와 이제 부석부석한 종이처럼 떨어져 내리는 나무의 껍질을 손으로 직접 떼 내었습니다. 예전에 마치 소년의 머리카락처럼 윤기가 있던 이파리들이 소년의 손이 닿는 순간 바삭바삭하게 부서져 가루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침내 분노한 소년이 넝쿨에게 저주를 내뱉으려는 순간, 넝쿨은 죽은 나무와 함께 재처럼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소년과 넝쿨과 나무는 서로 깔린 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공주님, 공주님의 정원에서 하얀 꽃잎에 입술처럼 붉은 꽃술을 물고 있는 넝쿨을 보시거든, 아름다운 소년과 그 소년이 사랑한 나무와 소년을 사랑한 그 넝쿨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과 선의가 가져올 수 있는 정반대의 결과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