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을 위한 이야기(9)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관한 첫번째 이야기
공주가 말하였다.
“너의 이야기에 따르면 모든 사랑의 결과가 이롭지만은 않다. 모든 선의도 구부러질 수 있으며 결국 그 사람을 찌르는 언월도가 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공주님.”
공주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너는 아무 것도 없지 않는 떠돌이다. 여태까지 내게 구혼하며 아버지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던 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상아를 짊어진 코끼리와 있었으며, 온갖 비단을 지느라 척추가 구부러진 노새들을 끌고 왔다. 낙타들은 저마다 빛나는 보석들을 이고 있었으며 노예들마저 향유를 발라 궁전에 온통 그들의 향기가 진동을 했다. 전사들은 내게 승리를 바쳤다. 상인들은 내게 재물을 바쳤다. 왕자들은 내게 왕국을 바쳤다. 그렇지만 너는 아무 것도 없는 떠돌이다. 너의 사랑이 내게 가져올 수 있는 것 역시 이와 같지 않겠느냐.”
“저는 아무 것도 없는 떠돌이입니다. 제가 바칠 수 있는 것은 이미 공주님께 모두 바쳤으니 이제 저는 공주님께 바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공주님께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고자 합니다.”
그는 공주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공주에게 허락을 받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아무것도 없는’ 노래는 끝났습니다." 어느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술탄과 칸들의 궁전을 오가며 알라를 찬양하고 사랑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시인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그는 아름다운 자신의 아내와 함께 노래를 짓고 부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러기처럼 떠돌아다니는 인생이었지만 그에게는 아름다운 노래가 있었고 그보다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시인은 카이로의 궁전 앞뜰에서 생전 처음 듣는 아름다운 곡과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 노래는 허무함과 슬픔에 관한 노래였습니다. 알라가 창조하신 이 세상의 즐거움에 반하는 이 노래는 그렇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만드는 애절함과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그 노래를 들은 시인의 마음은 이미 텅 비고 그 노래만이 그 안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당장 그 궁전으로 들어서려 했습니다. 그러나 궁전의 수비병들에게 제지를 받은 그는, 결국 저녁이 다되고서야 대신의 추천서를 들고 궁전에 다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는 어느 내시에게 금화 세 닢을 집어주고 오전에 노래를 부른 가수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궁전에서 그 가수에 대해 쉬쉬하는 까닭은 바로 그 가수가 마신에게 혼을 팔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또한 시인은 놀랍게도 그 가수가 항상 들고 다니는 새장 안의 앵무새가 바로 그 마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슐레이만 대제를 피해 앵무새로 몸을 바꾼 마신은 저녁마다 그 가수에게 곡과 노래를 알려준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일러준 후 내시는 궁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시인은 그날 밤을 꼴딱 새었습니다.
그리고 당장 시장으로 달려간 그는 마신에게 영혼을 판 가수를 수소문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그 가수는 사막으로 떠난 이후였습니다. 시인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쓴 노래와 곡,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의 위로도 그를 건져낼 수 없었습니다. 시인의 주위에는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위해 살았던 그의 인생은 실패작이었음을 말해주는 분명한 증거들밖에 남지 않은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 흘렀지만 시인의 절망은 시인을 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시인이 갖고 있던 노래와 아내는 그를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에 대한 아무런 미련도 없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남은 모든 것을 팔아 카이로로 떠났습니다. 카이로의 장터에서 팔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시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카이로의 그 어두운 시장에는 이 세상 온갖 더러운 것들과 빛에 감추어진 온갖 것들이 끝내 흘러들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어느 음습한 골목에서 시인은 원숭이의 꼴을 하고 있는 마신을 만났습니다. 마신은 이미 예전의 그 가수를 먹어치운지 오래였습니다. 마신은 시인을 보자마자 시인이 원하는 것을 알고 낄낄 웃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갈증으로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시인은 자신이 들었던 그 가수의 노래보다도 더 아름다운 노래만을 바랐습니다. 마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꼬리를 내리쳤습니다. 시인은 마신이 자신에게 더한 대가를 바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마신이 시인에게 바란 대가는 가수에게 바란 대가와 달랐습니다. 마신은 시인에게 시인 자신 대신 시인이 여태까지 만들었던 노래와, 시인의 어여쁜 아내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는 마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그것들은 자신을 떠나간 것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인에게 더 이상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시인은 마신이 시키는 대로 계약서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핏방울을 떨어뜨렸습니다. 핏방울이 계약서에 스며드는 순간 시인은 자신의 노래와 아름답던 아내를 모조리 잊어버렸습니다. 엄청난 돌풍이 몰아쳐 시인을 뒤덮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는 순간 그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길거리에 넘어져 있었습니다. 시인은 일어났습니다. 시인의 오른손에는 천에 둘둘 감긴 새장이 들려있었습니다. 시인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이 새장에 자신의 모든 것이 담겨 있음은 알고 있었습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시인은 아무도 없는 골목을 찾아 내달렸습니다.
마침내 시인은 천을 들췄습니다. 그리고 새장을 본 시인은 좌절과 절망의 비명을 질렀습니다. 새장에는 빈 횃대만이 있었습니다. 텅 빈 새장에는 마신의 낄낄거리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시인은 비로소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시인은 비명을 지르며 골목을 뛰쳐나가다가 넘어졌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발목에 걸린 리라를 집어 들었습니다. 리라를 그 곳에 둔 것은 마신이 분명했습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그 리라를 때려 부수려고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시인은 ‘아무것도 없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는’ 노래였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리라를 치는 시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굴러 나와 리라의 선에 맺혔습니다. 시인의 노랫소리는 떨렸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인이 노래하던 그 도시는 잊혀져 버렸습니다. 시인의 노랫소리에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잃어버리고 그 노래만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도시에서 나가는 길이 없어지고 거대한 모래폭풍이 몰아쳐 그 도시와 시인의 노랫소리마저 덮어버리고 나서야 그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아무것도 없는’ 노래는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