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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서시

선풍기의 세상

by 엽서시


식당 벽에 걸린 선풍기를 보았어,

숨이 턱, 하고 막히더군,

코드가 뽑힌 전깃줄을 목에 둘둘 두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말야,

누가 꼭 생각나서만은 아냐,

누구나 그렇지 않던가,

밥줄은 목을 조이고,

고개는 푹 숙이고……


다들 그렇게들 살지 않던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허겁지겁, 국밥과 소주를 몸에 넣고 있는

저 시커먼 외투의 사내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을 만큼

곤하게 잠이 든

퇴근길 전철의 회사원들…


우리는 다 같은 제품이다,

다들 선풍기다,

이렇게나 선풍기들이 천지인데,

대체 바람 한 줄기 시원하게 불지 않는 것은,

아마 다들 코드가 뽑힌 모양이군…

다들 같은 처지인 모양이군…


퇴근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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