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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서시

꿈의 구조조정

by 엽서시

이맘때 만나는 이들은 해년마다 팔자가 피어 있다, 꽃이 벙글어지듯이……


나는 공연히 멋쩍은 마음이 들어,

술집 벽에 걸린 모란 그림을 바라본다


누구는 과장을 달았다 하고, 누구는 청약이 되었다 하고

누구는 새로 외제차를 계약했다 하고(이번이 두 번째란다)

또 누구는 벌써 둘째 아이 이름을 지어야 한단다……


너는 참 변함이 없다는 말이 칭찬처럼 들리지가 않는 자리,

그러다 문득 한 선배가 빈 잔에 말을 채운다,


꿈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누구는 선배의 다음 말을 듣고,

또 누구는 다른 선배가 말하는 주식 이야기를 듣는데,


나는 혼자 그 말만 붙들고 휘청인다

저 녀석 먼저 보내야 할 것 같은데, 하는 말을 귓등에 얹고는,

내일도 나는 출근을 하여야 하는데……


전철에서도 나는 유독 흔들린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유독 흔들린다


그러다 혼자 묻지,

구조조정된 꿈은 어디로 가는가……


끝내 그 답을 하지 못하여,

나는 가슴을 비우지 못한다, 오늘도 꿈은 낡은 양복을 입고 와 제 자리에 앉아 있다, 해진 시집과 끝이 바랜 원고지…… 따위가 쌓인 책상, 오래된 모니터, 먼지가 쌓인 키보드 놓인 꿈의 자리, 무슨 얼빠진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고 오늘도 부장에게 한 소리를 들었었다, 그러나 나는, 돈을 벌지도, 무얼 이루어내지도 못하는, 가끔 복도에서 마주칠 때 잘 지내시는가 물어보면 어색한 웃음만 씽긋 짓는, 내 꿈의 자리를 치우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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