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엽서시

오늘 먹은 돼지는 누린내가 없었다

by 엽서시
사건(1).jpg


오늘 먹은 돼지는 누린내가 없었다

반찬도 한 번 더 달라고 부탁했다

뚝배기를 비웠다


사무실에는 디퓨저 향기가 코를 찔렀다


구린내란 찾아볼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블라인드 친 창문 안에서

커피를 들고 앉아 작은 불평과 불만을 주고 받았다


야산에는 한 노동자의 시신이 묻혔다

영구차 대신 트랙터가 시신을 옮겼다

그는 10년 동안 돼지 똥을 치웠다

돼지우리 옆에서 살았다 돼지우리 옆의 우리에서 사람이 살았다


경찰은 그의 죽음에 대하여

타살 정황은 현재까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늘 먹은 돼지고기에는 누린내가 없었다

우리는 먹성 좋게 그릇을 비웠다

빈 뚝배기 안이 얼굴이 비치도록 반질반질하였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어서

감지할 수 없는 구린내가 있다

사무실 밑에 백반집 식당 밑에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세상 밑에

도사리고 있는 구린내가 있다 우리가 맡지 못하는 구린내 어느새 구린내에 물들어 버린 사람들은 울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듣지도 않는다 분노하지도 않을 것이다


타살 정황은 현재까지 나오지 않았다,

는 그 문장을, 누군가의 목소리로 나왔을 그 문장을 나는 혼자 가만 읽었다

안심을 한다, 우리의 후각은 다시 둔해진다, 어떠한 구린내도 이제 맡지 못할 만큼,

사무실에는 디퓨저 향기가 지독스럽고, 나는 눈을 돌렸다

그래, 타살 정황은 현재까지 나오지 않았구나


사건(2).jpg 숨진 노동자가 지내던 숙소

(돼지우리에 마련된 숙소…10년간 돼지똥 치우다 숨지니 버려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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