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을 위한 이야기(12)

모닥불 옆에서 마르코 폴로에게(1) 하늘을 나는 물고기의 이야기

by 엽서시

한 호수가 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호수의 양 옆으로는 버드나무들이 처녀의 머리칼같이 부드러운 가지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바람이 짙은 관목줄기의 냄새를 뿜을 때에 어김없이 물새들의 노랫소리가 잇달아 알라를 찬미하곤 합니다. 호숫가에는 부드러운 갈대줄기들이 연한 갈색의 낭창낭창한 몸을 뽐내고 있습니다. 갈대의 그늘 아래에는 사내아이의 주먹만한 개구리들이 모여 연잎처럼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호수는 그야말로 알라가 보여주시는 기적이었습니다.

당신 이교도들은 입으로는 신의 기적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결코 신의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먹을 수 있는 빵이 불어나고 포도주가 채워지는 기적이 눈 앞에서 일어나기 전까지는 결코 신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당신들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 무슬림은 그렇지 않습니다.

호수의 물이 유리처럼 맑은 것이 알라의 기적입니다.

버드나무의 잎에 먼지가 쌓이지 않고 언제나 빛나는 것이 알라의 기적입니다.

이 호수야 말로 그러한 아름다움이 켜켜이 쌓여 한데 섞여있는 곳이었습니다.

마르코 폴로여, 길 위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우리 여행자들은 가슴 안에 누구나 호수 하나를 품고 있는 법입니다. 언젠가 모든 여행을 끝내고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등나무를 짜 만든 벤치에 기대 저녁이 올 때까지 그 아름다운 호숫가의 미풍을 즐기는 상상을 하며 우리는 찌는 듯한 뙤약볕 아래 한 발자국을 다시 옮깁니다.

이 호수는 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호수입니다. 언젠가 나의 여인과 함께 그 호수의 차가운 물결에 발을 담그며 땀을 식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 이슬람의 법도에 따르면 무슬림은 언제나 알라께 매일같이 다섯 번의 기도를 드리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게 기도의 보답으로 호수에서 쉬고 있는 나 자신과 그 여인의 얼굴을 보여주곤 합니다.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연잎이 호수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알라께서는 오직 당신께서 허락한 사람들에게만 이 호수를 보여주신 터라 인적이 드문 이 호수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큰 잉어들이 호수에 많이 살고 있었지요.

잉어들은 알라께서 만들어주신 자신들만을 위한 이 궁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친 물수리 한 마리가 이 곳까지 날아들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이 호수 역시 다른 호수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연잎 아래로 비치는 큰 잉어들의 그림자들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강에서 힘들게 사냥을 하며 평생을 살아온 물수리는 이 곳이야말로 알라께서 자신에게 선사하신 궁전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르코 폴로여, 당신은 물수리가 사냥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까? 내 친구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물수리는 새 중에서도 좋은 눈을 가진 새 입니다.

사냥을 할 때면 물수리는 창공이 자신에게 허락하는 한 까지 높이 날아 물가를 굽어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면에서 물고기의 비늘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그대로 수면으로 내리꽂힙니다. 순간 갈고리처럼 굽은 물수리의 발톱에는 어김없이 물고기의 흰 살이 꿰여있기 마련이지요.

그렇지만 이처럼 연잎이 잔뜩 호수를 덮고 있는 곳에서는 물수리의 좋은 눈도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물수리는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물수리는 먼저 좋은 목소리로 물고기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께서는 내게 높은 창공에 몸을 실을 수 있는 바람과 날개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 분의 뜻에 따라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공간에서 구름과 태양과 함께 노닐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곳의 강한 바람과 눈부신 햇살은 금방 날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눈이 먼 개구리처럼 지쳐 떠돌던 나는 마침내 알라의 뜻에 따라 이 아름다운 호숫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충실한 나의 벗들이여. 그러나 나의 피와 나의 살은 그분께서 날 창조하신 뜻 그대로 다시 나의 몸이 하늘 위를 비상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나의 깃털이 바람을 보고 울부짖습니다. 나의 힘줄이 하늘을 보고 힘껏 꿈틀거립니다.

그러나 나는 이 호숫가에서 이렇게 달콤한 휴식을 취하게 해준 여러분들의 은혜를 잊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벗들이여. 나는 이번 비행에서 구름 위까지, 알라의 흰 궁전까지 날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에(물론 이 호수도 아름답지만 그분의 호수에 비할 바는 못 되지요.) 여러분들을 실어 나를까 합니다. 물론 저 역시 그곳까지 한번도 이른 적이 없지만,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니 여느 때와 달리 힘이 솟는 기분입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나의 벗들이여. 누가 나와 함께 가장 먼저 그분의 호수에 이르겠습니까?”

물수리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지어낸 셈이지만, 크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못하였습니다. 물수리의 속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알라의 이름을 두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순진한 잉어가 제 몸을 발톱에 맡긴다면 먼저 높이 올라가 창공을 보여줄 셈이었습니다. 그 후 잉어를 맛나게 먹을 참으로, 잉어가 정말 신실하고 선한 고기였다면 자신이 애써 데려다 줄 필요 없이 알라의 궁전에 다다를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물수리가 생각한 것처럼 잉어들이 순진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순진하다기 보다는 잉어들은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알라의 궁전이라 해서 지금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다만 입 밖으로 그런 불손하고 경솔한 말을 내뱉기는 싫었기 때문에 잉어들은 저마다 핑계를 대며 지느러미를 내저었습니다.

모두가 수염을 흐리며 말을 잇지 않는 때에 한 늙은 잉어가 나섰습니다. 이 곳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그 잉어는 이제 이 곳의 삶도 충분히 즐긴 터라, 다른 곳에서의 삶도 바라고 있던 차였습니다. 게다가 그 잉어는 늙어가면서 세월이 비늘에 지혜의 나이테를 겹겹이 새기듯이 돈독한 신앙심을 쌓아가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또 잉어는 혹 그분의 궁전에 이르기 전에 죽는다하더라도 이미 자신이 충분히 오래 살았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쉬울 것이 없었던 잉어는, 말만 앞서고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다른 잉어들을 꾸짖으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물수리의 발톱에 자신의 몸을 맡겼습니다.

“이 곳 연못에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려. 하늘 높은 위에서 많은 지혜를 얻은 그대가 우리를 친구라 불러주고 우리에게 직접 선의를 베푼다고 하는 데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터입니다. 게다가 그분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호수에 사는 우리에게는 보통 기회가 아닙니다. 친구여. 나는 늙고 비대합니다. 그렇지만 나의 몸이 허락하는 한 언제든 그대와 함께 떠나겠습니다.”

물수리는 흔쾌히 찬성했습니다. 이 거대한 늙은 잉어를 보며 군침을 삼킨 후에 말입니다. 물수리의 굵은 발톱이 늙은 잉어를 단단히 움켜쥐었습니다. 잉어의 살과 비늘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물수리는 낫과 같은 자신의 발톱에 온 신경을 다 해야 했습니다.

이 지경이 되고나자 다른 잉어들은 먼저 나서지 않은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몇몇 잉어들은 만일 정말 늙은 잉어가 그분의 호수에 이르게 된다면, 그래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자신이 물수리에게 먼저 부탁을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물수리는 호수의 모든 잉어들이 보는 앞에서 늙은 잉어를 쥔 채 힘차게 날갯짓을 했습니다. 물수리는 잉어들이 볼 수 있도록 최대한 똑바로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호수는 순식간에 장터에서 여인네들이 얼굴을 비추는 거울크기 만큼 작아졌다가 이내 베네치아 동전크기만큼 작아졌습니다.

늙은 잉어는 숨이 가빠왔지만 호수에 멀어지는 것과 비례해서 황홀감을 느꼈습니다. 비늘과 지느러미를 스치는 바람의 느낌도 너무나도 신비롭고 황홀했습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황금빛 태양을 마주하면서 잉어는 이 곳이야 말로 알라의 궁전이라고 느꼈습니다.

마침내 물수리는 늙은 잉어를 들고 구름 위까지 날아올랐습니다. 흠이라곤 하나 없는 완벽하게 하얀 빛으로 빛나는 구름을 보고 늙은 잉어는 그만 숨이 턱 막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황홀감에 몸을 뒤틀었습니다. 늙은 잉어를 다치게 하지 않게 하려고 발톱에 힘을 빼고 있던 물수리는 그만 아차,

잉어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늙은 잉어는 그대로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호수에 풍덩, 큰 소리를 내며 떨어졌습니다. 늙은 잉어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다른 잉어들이 몰려와 늙은 잉어의 주검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늙은 잉어의 주검에서 알라를 직접 만나본 황홀감을 보았습니다. 잉어들은 자신들이 겁쟁이였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물수리가 날아와 자신들에게 다시 말을 걸기 전에 잉어들은 연잎 사이로 모두 숨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었습니다. 늙은 잉어가 알라를 뵙고 온 황홀감을 자신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그 정원을 뛰쳐나온 게 틀림없다고. 그리고 호수의 잉어들은 마침내 그 늙은 잉어, 하늘을 날고 알라를 뵌 물고기를 선지자 마호메트처럼 숭상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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