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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서시

거리에 무성한 은행 냄새를 밟다

by 엽서시

철없는 뻔뻔함이 나는 좋다.

가을도 아니다. 섣부르게. 여름이 늦을 무렵부터.

은행나무는 잔뜩 신이 난다.

길가에 떨어진 은행들도 신이 나서 냄새를 풍긴다.

자기들끼리 지독하다고 키득거리면서도 냄새를 풍긴다.

신발에 밟혀도 지지 않는다. 개똥보다 지독하다고 냄새 때문에 골이 다 쑤신다고 눈썹 새를 찌푸려도 은행들은 그 웃음을 멎지 않는다. 지독한 살이 다 씻기고 동그란 씨앗만 남아 씩 웃으면서 흙에 잠긴다.

어느새 노란 물이 들게다. 살펴보면. 참 잎 같지도 않은 잎들이. 잎 같지도 않은 색을 내고. 숲 같지도 않은 숲에 모여있다. 이 도시에, 공원에, 놀이터에 가로등 불빛, 밤 같지도 않은 밤에도 쿨쿨 잘만 잔다. 겨울에는 테연스레 남들같은 나무껍질을 하고 길게도 잔다.

봄이 오면 금새 연둣빛이 가지에 뾰종뾰종 돋을테지.

가을을 생각하면 벌써 벙글어진다는 듯, 잔뜩 참은 웃음이 오도도 돋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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