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 차] 내 삶을 바꾸고 싶다.
내 삶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있나?
2013년 유난히 밝던 봄. 둘째가 태어났다. 조금 이상했다. 첫째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젖을 잘 빨지도 못하고, 잘 뒤집지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했다. 지금 6살이지만 아직 말을 못 한다. 와이프가 많이 힘들다. 나도 많이 힘들어서 작년엔 육아휴직도 했다. 회사에서 남자가 육아를 목적으로 낸 휴직의 첫 번째 케이스.
힘들게 힘들게 육아휴직을 냈다. 돈은 벌 수 없었지만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육아휴직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과의 시간, 아내의 휴식 행복했다. 회사에 있을 때는 몰랐던 자유를 느꼈다. 물론 육아휴직의 목적은 둘째로 인한 가정불화(?)의 해소였다. 뭐... 다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육아휴직이 가장 나에게 의미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삶을 바꾸고 싶다!
어렸을 때 잠깐 '내 삶을 바꾸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아마 사춘기 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때는 아침에 일어나면 슬프고, 학교에 가는 그 순간이 슬펐다. 조증과 울증을 번갈아 가던 바로 그 시절, 삶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던 것 같고 철이 들자 자연스럽게 삶은 그냥 바뀌었다.
그리고는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내 삶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좋은 부모 만나서 너무 곱디곱게 너무 편하게 너무 별일 없이 살았나 싶다. 남들이 하는 평균은 어떻게든 따라갔고, 그래서 별일 없이 인생이 그렇게 흘러갔다. 대학을 나오고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평탄한 삶이었다. 참 다행이다.
내 삶을 정말 미치도록 바꾸고 싶다.
처음엔 그런지 몰랐다. 그냥 회사를 다니며 월급날이 돌아오길 빌며, 둘째가 나아지길 빌며, 둘째로 인한 첫째의 상처가 나아지길 빌며, 와이프가 조금 편안해 지기를 빌며, 나 또한 조금만 내 시간을 가지길 빌며, 빌며, 빌며, 빌며... 그렇게 살아나갔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며 시간이라는 게 조금씩 생겼고, 둘째도 어린이 집에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가면서 공부를 위한 생각, 업무를 위한 고민이 아닌 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둘째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지적장애 및 자폐를 가지고 있는 둘째의 표현은 밀거나 때리기다. 몇 년 전에 비하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지만 가끔 자신의 표현을 이렇게 할 때가 있다. 아직 말을 못 하는 우리 둘째로서는 최상, 최고의 표현이다. 효과가 직빵이니까.
내 앞을 막지 마.
나랑 같이 놀래?
나를 쫒아와.
나한테 이러지 마.
난 네가 좋아.
다른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이런 말들을 우리 둘째는 가끔 때리거나 미는 행동으로 표현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효과는 직빵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자기보다 약한 존재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나도 어렸을 때 친구들은 못 때렸지만 내 여동생은 많이 때렸다. 지금은 한없이 미안하고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쨌든, 아이들은 그렇다. 4살, 5살의 조그만 아이들은 우리 둘째 앞에서 알짱거리며 툭툭 치기 시작한다. 우리 둘째는 웃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계속 알짱거리고 툭툭 치다 보면 한 대 맞는다. 그리곤 운다. 엄마가 등장한다.
애를 잘 보셔야죠. 뭐 하시는 거예요.
자리로 돌아가 수군수군.
아까부터 애가 조금 이상하더라고
물론 대부분의 엄마들이 괜찮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은 겨우 겨우 살만 한가보다. 하지만 5명 중 1명은 이런 반응이다. 단번에 우리 둘째는 최악의 가해자, 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격리 대상이 되어 버린다. 내 피해의식 때문일까.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들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지? 이민을 가야 하나? 내가 아는 집은 그래서 이민을 떠났다. 이민 가서 모하지? 난 할 게 없는데. 자기 계발을 해야 하나? 뭐 할 건데? 영어 학원을 다닐까? 돈이 많아야 하는데... 주식을 해야 하나? 부동산을 사야 하나? 아빠한테 상속을 좀 일찍 해달라고 할까? 아빠가 상속할 재산이 있었나? 자격증을 따야 하나? 대학을 다시 가볼까? 대학원을 가야 하나? 그럼 집에 늦게 올 텐데, 집에서도 공부할 텐데... 그럼 우리 와이프의 수명은 줄어들고, 줄어든 만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카톡을 보낼 거다.
고민을 하고
고민을 위한 고민을 하고
고민하지 않기 위한 고민을 하다가
휴직이 끝나버렸다.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5천만 원이라는 마이너스 통장과 함께 난 회사로 돌아갔고 다시 월급을 받았다. 짜증 나게도 휴직을 했었기 때문에 추석 상여도 주지 않는단다. 어쨌든 다시 회사로 돌아갔고 난 다시 고민할 여유도 없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고, 평판을 관리하고 일찍 출근하고 야근하며 나 성실하다고 외쳐대도 결국 회사원이라는 것. 40이 되어서도, 50이 되어서도 회사원이고 60이 되었을 때 퇴직금과 연금 하나 들고 퇴직할 것이라는 것. 내 삶은 하나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 장애인 아들과 힘든 와이프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첫째가 있다는 것.
퇴사! 일단 이것부터 해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하지만 난 새 가슴이다. 그래서 운동을 잘 못했다. 그래서인지 배포도 작다. 일을 저질러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더니 잘했다고 칭찬받았다. 지금 바로 퇴사하기는 너무 무섭다. 그래서 나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주었다. 1년 동안 뭐라도 해서 꼭 퇴사를 하자. 그래서 나에게 자유를 주자. 그 자유를 나를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와이프를 위해서 쓰자.
휴직은 나에게 2가지 선물을 주었다.
마이너스 통장 5천만 원
자유의 향기
이 두 가지 선물을 안고 퇴사를 향해 간다.
2019년 10월 31일이 바로 내가 결정한 퇴사일이자 자유를 얻을 날이다.
나는 평범한 10년 차
금융권 회사원이다.
오늘부터 1년간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한다. 과연 그 변화로 인해 난 퇴사에 성공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 내 삶은 정말 바뀔 것인지 지켜봐 달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퇴사로 가는 과정이 너무 나도 무서운, 새 가슴을 가진 나에게 정말 큰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