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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Dec 17. 2019

양봉남을 찾아서, 로맨스를 찾아서?

박현주, <서칭 포 허니맨>, 위즈덤하우스, 2019.11.1

저는 이전에는 원하는 게 있어도 누군가 가져다주기를 기다리기만 했어요. 가만히. 먼저 연락이 오기만.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떠나야만 가질 수 있다는 걸.
그런데 떠나면 원하는 걸 찾지 못해도, 뭔가 다른 걸 찾아낼 수 있었어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무엇. 더 좋은 무엇. 그런 걸 얻을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떠나야 한다. 그러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시작하라. 이 소설은 자기 계발서 같은 진부한 이야기로 끝맺는 듯하다. 그러나 진부한 결론을 향해 가는 일정은 진부하지 않았다. 지루하지 않았다.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양봉남을 찾아서'라는 흔하지 않은 주제와 제목이 흥미로웠다. '서칭 포 허니맨'이라는 영어 제목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개인적으로 '양봉남을 찾아서'라는 한글 제목이 훨씬 더 주목을 끈다고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더 와 닿기도 하다.


하담, 로미, 차경. 이 30대 중반? 후반?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나이대 여자 셋이 양봉남을 찾아가는 걸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로미가 제주도에서 잠깐 만난 양봉업을 하는 남자를 무작정 찾아가기로 한다. 로미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나 로맨스를 하는 꿈을 꾸고, 하담은 멋진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을 한다. 차경은 꿀을 이용한 회사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소설이라 그런지 일이 술술 풀린


그곳에서 벌과 관련된 어떠한 사건에 휘말리고, 적절한 로맨스에도 휘말리게 된다. 흥미는 고조되고, 재미는 배가 된다. 중간중간 약간씩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이야기의 재미가 그러한 부분은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예를 들고 싶지만 스포가 될 듯하여 들지 않으려 한다. 예를 들면 필현이 왜 로미를, 수미는 왜 로미를


세 여자는 각자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각자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무엇을 얻는다. 더 좋은 무엇을 얻는다. 그리고 틀을 깨고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그동안 안 될 것만 같았던 못 할 것만 같았던 생각들에 균열이 생긴다. 바로 이 여행에서 그녀들은 더 자유로운 관점의 변화를 맞이한다. 원하던 양봉남을 찾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모든 여행이 로맨스라는 결말로 끝나야 하는 건 아닐걸. 하담은 생각했다. 또, 모든 이야기의 끝에서 커플이 키스하고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많은 사람이 그런 결말을 만든다고 해서, 나도 그러란 법은 없어. 어떤 이에게는 로맨스인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어딘가 떠날 때는 우리 모두 기대를 가진 척해야만 한다. 그래야 여행이 즐겁다. 그렇지만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는 여행이었다. 인생을 바꾸리라는 기대, 그 기대의 좌절, 하지만 여행의 좋은 점은 무너진 기대의 잔해도 밟고 떠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 로맨스가 있었나? 그렇지. 있었다. 하얗고 순수한 그런 로맨스가 있었다. 맞나? 그런가? 로맨스였던 건가? 로맨스여야만 했던 건 아닐까? 그래야 내 삶이 풍족해 지기에 뇌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양봉남을 찾아가는 여정은 로맨스를 찾는 여정이었다. 다 자기만의 로맨스를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그러나 그 로맨스가 무어냐고 물어본다면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을 거다. 막연히 가슴 뛰던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아... 그게 바로 내 로맨스였지...' 하며 생각하는 것이 다일 것이다. 사실 그게 로맨스의 본질 일지도 모른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감정의 변화.


박현주는 양봉남을 찾아가며 세 여자의 로맨스를 하나 씩 꺼내어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어떤 로맨스는 끝나고 어떤 로맨스는 시작한다. 어떤 로맨스는 착각에 시작했고, 어떤 로맨스는 사회적인 규범의 틀 안에서 지지부진해진다. 어떤 로맨스는 우연을 가장해 나타나고, 어떤 로맨스는 필연을 가장해 나타난다. 누군가에게는 로맨스인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다큐멘터리가 되기도 하고, 추적 60분이 되기도 한다.


작가가 정성스레 전해주는 로맨스 선물에 내 로맨스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내 인생에 더 이상 로맨스는 없어' 까지는 아니더라도 로맨스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먹고 살 걱정, 아이 걱정에 빡빡하게 살아오던 대부분의 30대에게 이 책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이 책은 성장판 독서모임 서평단 2기의 활동으로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위의 서평은 전적으로 제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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