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공부를 하려고 하면 뉴스가 재밌다. 신문이 재밌다. 책상 정리가 그렇게 하고 싶다. 그것도 아주 디테일하게 정리하고 싶어 진다. 라벨지를 붙이고 목록표를 만들어 걸어 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3년 전 편지를 꼭 발견한다. 그렇게 흥미로울 수 없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던 박스 테이프와 프린터 설치 CD를 드디어 찾는다. 시험기간에 누릴 수 있는 뜻하지 않은 발견이다.
딴짓을 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시험공부에 집중하기 힘들다. 항상 거창하고 디테일한 계획을 세우지만 첫날부터 계획은 어그러진다. 벼락치기로 전 날 밤을 새워 공부한다. 시험 결과를 받아 들고 난 이렇게 말한다. "공부 안 한 것 치고는 잘했어."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나를 보며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난 대기만성형일 거야!
난 항상 나에게 관대하다. '관대함'은 항상 '핑계'를 불러온다. 핑계가 관대함을 불러오는지, 관대함이 핑계를 불러오는 건지 헷갈린다. 뭐... 그냥 같이 손잡고 온다고 하자. 확실한 건 이 둘이 만나는 순간 절친 '합리화'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거다.
합리화. 겉모습은 아주 그럴듯하다.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다. 멀끔하게 생겼다. 어디 하나 삐져나와 있는 곳 없는 단정한 머리.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입술과 자신감 있는 눈빛은 신뢰감을 준다. 훤칠한 키와 잘 빠진 정장은 추가 옵션이다. 말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듣는 내내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 인생은 이 '합리화'라는 놈과 함께 했다. 날 항상 편안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네 잘못은 없어! 네 주변이, 상황이, 옆 사람이 널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어 버린 거야!"
이렇게 나에게 면죄부를 준다. 합리화를 좋아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와 이야기하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편안하다.
문제는 그와 이야기하고 난 후다.
술자리에 있는 나에게 합리화는 달콤하게 속삭인다.
"오늘 어쩔 수 없었잖아! 오늘 술 마신 건 너에겐 선택권이 없었어! 그러니 걱정 마!"
인사이동으로 새로 부임한 임원과의 첫 번째 술자리였다. 갑자기 잡힌 술자리. 권하는 술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렇게 술을 마시니 머리도 아프고 몸이 너무 안 좋다. 술을 마신 다음날. 아픈 머리를 잡고 겨우겨우 일어났다. 아침 명상, 독서, 운동은 모두 집어치우고 지각만 하지 않게 회사로 향했다. 머리가 웅웅거린다. 끈덕진 액체가 뇌를 뒤덮고 있는 듯하다. 두개골을 열어 뇌를 꺼내 깨끗이 씻어 다시 집어넣고 싶다.
그렇게 회사를 마치고 집에 오니 녹초다. 피곤이 미친 듯이 밀려온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못하고 그냥 잔다. 다음날 4시. 알람이 울린다. 자연스레 끄고 잔다. '합리화'는 또 나에게 속삭인다. 술을 마시고 리듬이 어그러져 일어날 수 없는 거란다. 내 탓이 아니란다. 술이 문제지. 그 술이 내 리듬을 흐트러 놓은 거지 난 문제가 없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삶의 충만감이 사라진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시간이 흘러간다. 그저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처리하기 급급하다. 어쩔 수 없는 술자리고 내 몸이 아팠다. 그로 인해 리듬이 무너졌다. 그 리듬을 다시 찾아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난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다.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을 너무 책망하지 말아라. 그리고 그 시간이라는 건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러니 더 자라. 더 쉬어라. 그래도 된다
헷갈린다. 합리화는 좋은 친구인가? 나쁜 친구인가?
달콤한 '합리화'의 말이 귓가에 들려온다. 편안하기도 하고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동시에 너무 옆에 착 붙어 있으니 질린다. 지겹다. 그가 해주는 말은 달콤하지만 내 삶은 비어있는 느낌이 든다. 영양가 없는 사탕과 젤리만 입안에 가득 쳐 넣은 기분이다.
지금 이 순간 난 행복한가? 내 삶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충만한가?
한 가지는 확실한 듯하다. 합리화는 소모적이라는 것. 내 영혼에 에너지를 넣어주지는 않는다. 에너지를 사용하여 나에게 약간의 면죄부를 줄 뿐이다. 합리화로 주어지는 면죄부는 유효기간이 있다. 충만함으로 주어지는 면죄부는 유효기간이 없다. 내 몸에 붙어 있는 죄책감을 씻겨주는 샤워기의 물줄기는 충만감에서 온다. 영혼의 에너지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