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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an 16. 2020

회사에서 해서는 안 되는 말 3가지

어제도 들은 말이지만...

팀장이 바뀌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팀장과 저녁을 먹었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야근을 했고 팀장은 저녁이나 먹고 가자고 제안했다. 평소라면 거절했을 테지만 인사이동 후 처음 제안이라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같이 저녁을 먹지 않기로.


"미리 해 놓지 그랬어!"

식사 중에 팀장은 나에게 미리 해 놓지 그랬냐고 말했다. 이 말은 2가지를 가능하게 한다. 듣는 사람에게 짜증을 불러일으고, 말 하는 사람 그권위를 확인 준다. 2가지 기능을 절묘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수행.

이 말이 할 수 없는 일도 2가지가 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바꾸기'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가 그것이다.

'미리 해 놓지 그랬어.'라는 말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그저 듣는 이의 짜증만을 돋운다. 미리 해 놓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하지 못했다는 것은 미리 할 상황이 아니었거나 미리 할 일을 몰랐던 거다. 뭐... 의지가 부족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미리 할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제일 아쉬웠을 거다. 몰랐다면 마찬가지 자신이 제일 아쉬웠을 거다. 의지가 부족했다면 역시 자신이 제일 아쉽고 후회가 될 거다. 미리 해 놓지 그랬냐는 말을 듣고 '아... 그렇지... 미리 했어야지... 반성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거의 없다.

어제저녁 식사 자리에서 팀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그게 바뀐 게 2달 전이잖아. 바꾸고 나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않았어? 근데 왜 미리 안 해 놓고 하필 지금 하고 있어."


난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조금 더 챙기겠습니다."


사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팀장님. 지금 이 말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이 말을 하시는 순간 달라지는 건 제 기분뿐입니다. 짜증이 나거든요. 만약 팀장님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일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이의가 있으시다면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검토해 보고 반영할지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왜 주의를 여기까지 기울이지 못했는지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주의는 언제나 한계가 있습니다. 어떠한 일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옆의 부수적인 일까지 모두 세세하게 챙길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 일을 누락시키지 않았습니다. 단지 부수적인 일이라 생각했기에 상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에 더 많은 주의를 집중한 거죠. 단지 제가 부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일의 퀄리티가 낮아졌던 겁니다. 제가 상대적으로 중요하다 생각했던 일에 더욱 많은 주의를 집중해서 결과를 내기 위해서요.

이 일의 결과, 사실 결과가 나빠진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빠졌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이나 제가 주의를 기울이던 업무에 대한 고려 없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를 책망하신 거라면 다음부터는 하지 마시고 충고나 조언을 하고 싶으신 거라도 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그러한 것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당신의 행동을 보고 바뀌는 거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 업무에 대한 어떤 의견이 있으시다면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금과 같은 말로는 그 무엇도 바뀌지 않습니다."



"날 편안하게 대해줘."

팀장도 바뀌었지만 임원도 함께 바뀌었다. 내가 지금껏 보아온 회사 사람 중 가장 권위적인 사람이 우리 부서의 최고 권력자로 왔다. 사람들은 나에게 부고장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전에 있던 임원은 방임 주의자였다. 팀장에게 팀 운영의 거의 전권을 위임했고 팀장도 이 영향으로 우리에게 자율성을 강조했다. 덕분에 회사가 재밌었다. 그런 타이밍에 권위적이라 소문이 무성한 임원이 부임했다.

그 임원은 오자마자 미팅을 소집하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편안하게 대해달라고. 언제든 무슨 일이 있으면 카톡을 보내라고. 어떤 의견이든 개진해 달라고.

편하게 대하라고 하니 더욱 불편해졌다.

편하게 대하라고 한다고 불편한 사람이 편해지지 않는다. 그동안 그의 행동이 편안했어야 그 사람을 편하게 대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람은 주변을 웃기는 사람이다.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라 말하며 최불암 시리즈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재미없는 사람이다.

그 임원은 부서의 전체 임직원 100여 명이 모인 자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웃어 보세요! 활짝! 다시 한번 더 웃어봅시다! 그래요! 이제 만나면 그렇게 웃으며 인사하는 겁니다!"



"일단 한 번 만들어봐"

미장원을 가면 "어떻게 잘라드릴까요?"라는 질문이 필수적으로 들어온다. 나에게는 참 어려운 질문이다. 어떤 헤어 스타일이 나와 잘 어울릴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보통 '멋지게 잘라주세요'라고 말한다. 이 말의 속 뜻은 이렇다


"난 모르겠고, 나에게 잘 어울리는 머리를 선사해 줘. 어떤 게 나랑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어. 그냥 날 예쁘게 만들어줘."


회사는 미장원이 아니다. 회사에서 상사로서 무언가를 지시할 때는 최소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꺼내야 한다.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 미장원에서 처럼 그저 멋지게 만들어서 가져오길 원하면 안된다. 미장원은 돈을 주고 서비스를 받는 거고 회사는 네가 돈을 받고 있으니 알아서 상사의 욕구나 생각을 잘 헤아려 일을 하라고? 그럼 상사는 돈 내면서 일하

난 상사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주로 만든다. 그들은 항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두서없이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일단 한 번 만들어 봐."

자신의 메시지와 생각을 전달하는 자료를 만드는 거다. 내가 발표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할 말을 정리하지 않고 지시 할 수 있을까? 조직장이 되면 이런 일 보다 더 집중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인가? 관리하고 방향성을 설정하는 일에 주의를 더 집중해서 인가?



다시는 팀장님과 저녁을 먹지 않으리.

8시 30분까지 먹기로 한 저녁이 9시 30분까지 이어졌다. 그 한 시간은 골프 이야기로 채워졌다. 난 골프를 치지 않는다.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나와는 안 맞는다. 난 농구나 달리기를 훨씬 좋아한다. 골프 이야기로 채워진 한 시간은 졸려움을 참고 불편한 '가식 웃음 가면'을 얼굴 쓰고 있어야 하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다시는 팀장님과 저녁을 먹지 않으련다.

(발행 버튼을 누르는 이 순간, 이 글이 널리널리 퍼져 팀장과 담당 임원의 눈에 띄었으면 하는 바램과 내가 썼다는 사실을 몰라야 할텐데 라는 바램이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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