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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Feb 13. 2020

부모님께 읽어 보시라 강요하고 싶은 책

유인경, <기쁨 채집>, 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 부모님은 책을 읽지 않는다. 어머니는 책을 읽으려 노력은 하시지만 한 권을 6개월 동안 읽으시곤 한다. 아버지는 책을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적도 없다. 부모님께 책을 읽으시라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책을 읽으시면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워지고 충만해 지리라 가끔 이야기하곤 한다. 어머니는 그렇지. 맞지. 하시며 다시 6개월의 대 장정을 시작하시고, 아버지는 묵묵부답, 문답무용이다.


이런 부모님께 조금은 강요하고 싶은 책이 생겼다. 유인경 기쁨 채집가의 <기쁨 채집>.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유인경 님의 책을 읽은 적도 없고, 이력을 알지도 못했다. 뭐...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TV에 나오는 전업 강사 정도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당연한 소리나, 지루하게 늘어놓는 책이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했다.


작년, 하정우의 <걷는 사람>이라는 책을 읽었다. 배우가 글을 써봤자겠지, 제 자랑만 늘어놓고 조언이랍시고 열심히 노력하세요라는 말을 하겠지 생각했다.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형광펜을 찾아 들고 밑줄을 치고 서평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가볍게 읽어 나가다 형광펜을 찾아들었고, 책에 메모를 하고, 책 귀를 접고, TAG를 붙이는 나를 발견했다.


유인경은 자신을 기쁨 채집 가라고 소개한다. 자신이 수집한 기쁨, 특히 소소한 기쁨들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일상에서, 기존의 인터뷰에서, 심지어 떼 지어 움직이는 구름에서 얻은 기쁨을 하나하나씩 풀어낸다. 이 기쁨들을 읽어나가며 어떤 부분은 공감을 했고, 어떤 부분은 통찰력에 감탄했다. 어떤 부분은 나를 다짐하게 만들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위로를 받았다.


어른이 되면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잘 물어보지도 않는다."그것도 모르세요?"라는 말에 "모르긴 누가 몰라?"하고 역정을 내기도 하고 꼭 필요해 물어봐야 할 때도 "뭐 이렇게 다 있어" "대체 뭐 하는 거야"라며 질문이 아닌 화부터 낸다. 잘 모르면 누구에게나 물어보고(아주 귀여운 태도로) 작은 일에 감사와 기쁨을 표현하고 실수를 했어도 툴툴 털고 일어서면 된다.
-p63-


회사에서 보고를 할 때 상사의 얼굴을 살피게 된다. 그리고 상사의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못했을 경우가 있다. 상사가 별말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일 못하는 사람으로 볼까 봐 전전긍긍한다. 왜 몰랐는지 자책을 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그저 모른다고 알아보겠다고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알아야 할 대상이면 알면 되고, 몰라도 되는 대상이면 그냥 모르면 된다. 그런데 난 왜 모르는 것에 화가 나는 걸까. 모르는 것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른다는 것을 남들이 알까 봐 화가 나는 걸 거다. 작가의 말처럼 그 누구도 나를 어떤 사람이라 규정할 수 없다. 누가 나를 평가하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다. 내가 흔들릴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나를 인정하는 편이 낫다.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다.


작가는 진짜 위로가 되는 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아프지 마 얼른 나아야지'라는 말보다 '아픈 거 계속 가지 않아. 잠깐이야. 알지? 끝나고 재밌게 놀자','우리 oo야 아파도 돼, 맨날 아파도 되고 맘껏 아파도 엄아 아빠가 있으니까 괜찮아'라는 부모님의 말이 훨씬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내 딸에게 온전히 사랑받았다는 확신을 주는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사례를 전한다.


'힘내'라는 말보다는 '얼마나 힘들었겠니. 힘들고 슬프고 짜증 나도 괜찮은 거야. 당연한 거야.'라는 말이 훨씬 위로가 된다.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가 아닌 이미 훌륭한 작품을 썼고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메시지가 오히려 부담 없는 진실한 칭찬이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진정한 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간다 건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긴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때마다 받은 위로의 말들은 전혀 위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해준 위로도 그랬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위로가 되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작가와 함께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작가는 후반부를 나이 들어감에 대해 할애한다. 어른의 의무는 '불평하지 않고 잘난 척하지 않고 옛날이야기만 하지 않고 상황에 상관없이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삶에 시달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짊어진 삶의 무게가 커질수록, 날 뒤흔드는 기운이 강해질수록 불평은 많아지고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있을 때가 많아진다. 20대의 나와 30대의 나는 과연 누가 더 기분 좋은 상태에 많이 있을까? 40대의 나는, 50대의 나는 지금보다 더욱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내가 기분이 나쁘니 누군가 풀어주길 원하는 건 10살 우리 딸이나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른이라면, 어제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줄어들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항상심과 평정심이 내 안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내 50대가, 내 60대가 그랬으면 좋겠다.


100세에 개인전을 연 화가 '카르멘 에레라', 디자이너, 패션 디렉터면서 99세에 패션모델로서 에이전시와 계약한 '아이리스 아펠', "이제 나는 희미하게 사라질게요"라고 말한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사회적 약자를 변호하는 87세의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이들의 사례를 통해 작가는 '타인의 인정이나 세속적 성취에 상관없이'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풍요롭게 살지 못해도 풍성하게 늙어가고 싶다'라는 작가의 바램은 점점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바램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영자는 거북이가 토끼와 경주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열등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열등감이 없었기에 토끼와 경주를 할 수 있었고 그랬기에 묵묵히 한 걸음씩 옮겨 토끼를 이길 수 있었다. 열등감의 뿌리는 비교에 있다. 남들과 비교하며 그들보다 더 잘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열등감이 싹튼다. 나보다 더 젊어 보이는 동료, 나보다 더 잘나가는 대학 친구, 나보다 더 잘나가는 아내를 둔 친구, 나보다 집값이 더 오른 선배, 나보다 상사에게 더 인정받는 후배. 이런 비교가 열등감의 근원이 된다. 작가는 '남들과 비교해 나를 불쌍하고 불행하고 비참한 존재로 만드는 대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와 내 처지를 즐기기로'결심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사는 삶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너무 비교해서 불쌍하고 불행하고 비참한 존재로 까지는 만들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이 책을 덮으니 부모님이 떠오른다. 우리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계실까? 부모님의 내일, 1년 후, 10년 후는 어떨까? 나이 들어감에 대해 어떤 감정이실까? 아이에게만 모든 관심을 쏟던 지난 10년이었다. 아이가 전부였고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책은 부모님도 감정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나에게 일깨워 주었다. 얼른 이 서평을 마치고 부모님께 빌려드리고 싶다. 이 책을 읽으신 부모님과 나이 들어감에 대해, 위로에 대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기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착지'야. 체조선수들이 공중에서 다섯 바퀴, 여섯 바퀴를 완벽하게 돌아도 착지를 잘못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거야."
 -p232, 최인호-


인생은 항해다. 천천히 가더라도 표류하거나 좌초하지 않고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정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아는 것, 아니 자주 생각하는 것이 안전한 항해, 멋진 착지를 위한 방법이 아닐까. 
-p235-



*이 책은 성장판 서평단 3기 활동으로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위의 서평은 전적으로 제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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