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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un 30. 2020

다시 휴직할까?

최호진, <퇴사 말고 휴직>, YH Media, 2020.6.30

최호진 작가와 만난 적은 없다. 페이스 북 사진으로 얼굴만 봤다. 그 사람의 브런치와 페이스북을 보며 많이 닮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모습이 많이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나와 다른 길을 가는 모습 때문일 수도 있다.


그와는 신정철 작가가 이끄는 '성장판'에서 만났다. 그리고 (기수는 다르지만) 함께 청울림의 '자기혁명캠프'를 수강했다는 거다(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 캠프에서 청울림이 했던 말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여러분 전 기수에 최호진이라는 분이 있어요. 휴직을 하고 지리산 단식원으로 갔습니다. 포도만 먹으며 책을 쓰겠다는 열망을 다지고 있죠. 자기혁명캠프 MVP까지 거머쥐었는데요, 그가 왜 책을 쓰지 못하겠습니까. 반드시 책을 쓰게 될 거예요."


그 최호진이 이 최호진이었다. 그는 책을 냈다. 추천사는 '청울림'이 써 주었다. 이제 그는 작가가 되었다. 책 제목은 <퇴사 말고 휴직>.



'그의' 휴직과 '나의' 휴직

난 이미 약 1년간의 휴직 후 복직했다. 무언가 변화한 듯 하지만 아직 결과물이 없는 나에게 이 책은 조금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금융회사에 다니던 필자는 1년 반 동안 휴직을 했다. 휴직을 하며 변화한 자기 자신에 대해 써 내려갔다. 지리산 단식원을 찾아가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이성을 잃고 화를 내던 자신과 결별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결이 다른 에너지를 얻었다. 아이들과 70일 간 엄마 없이 여행을 떠났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글쓰기 강의를 했다. 꾸준히 새벽 루틴을 실행했고, 도전하고 실패를 맛봤다.

휴직은 그에게 멈춤을 허락했고, 잠시 멈춘 그는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자신이 변하니, 세상이 변했고, 그에게는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여러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 책도 그 결과물 중 하나이다.


2017년 10월. 난 육아 휴직을 했다. 다소 충동적으로 난 휴직을 저질렀다.


아내가 너무 힘들었다, 는 핑계를 댔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어 큰 병원을 드나들던 찐이, (그로 인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무척 예민한 첫째 딸 빤뽀, 입만 살아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집 밖으로 나돌던 남편. 이 모든 짐을 아내가 둘러매고 있었다.


충동적인 휴직원을 제출하고 난 출근하지 않는 첫 날을 맞이했다. 어떠한 준비도 고민도 없었다. 그렇게 내 휴직은 시작되었다.


아내는 내가 휴직을 시작하면 상당히 편안해질 거라 여겼다. 나도 아내가 '상당히' 편안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예전보다 친구들을 더 만날 수 있고, 일주일에 하룻밤 정도는 삼국지 게임을 하며 천하통일에 매진하고, 드디어! 넷플릭스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생각은 대부분 맞았다. 하나만 빼고. 아내는 '전혀' 편안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휴직기간의 절반 정도를 싸웠다. 난 항상 집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였다. 내 직업은 회사원이었고, '남편'과 '아빠'라는 직업은 내 사전에 없었다.


난 항상 외부에 있었다. 아니, 외부에 있고 싶었다. 내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을 견딜 수 없었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병원과 센터에 아웃 소싱하고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아... 한 발 늦었네...

휴직이 끝나갈 때 즈음 알았다. 문제는 내 태도였다. 내 태도가 조금씩 변하자, 싸움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아내와 나는 비로소 멈추어 서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얼마나 내 진심이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제는 정말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렇게 충동적이었고, 미숙했던 휴직이 끝나고 난 회사로 돌아갔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최호진 작가는 신정철의 <메모 습관의 힘>을 보며 삶에 '균열'이 생겼다.


'내 콘텐츠 하나 없이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존재가 되어버린 내가 싫었다.'

'내가 언제든 누구와도 대체 가능하다는 것은 내 삶의 에너지를 갉아먹어 버렸다.'


이 '균열'이 나에게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난 균열이 생긴 상태로 휴직을 하지 못했을까? 왜 휴직 중에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아빠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을까? 왜! 난 한 발 늦어버린 걸까?




시간이 없어

'휴직 후 한동안 나는 미친 듯이 열정을 쏟아 냈다. 새벽같이 일어나 달리기를 했고 몇 시간씩 공을 들여 글을 썼다.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었다.'


위에서 처럼, 최호진 작가는 견고한 루틴을 만들어 낸 듯하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고, 달리고, 읽고, 쓴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사람들과 소통한다. 견고한 루틴 외에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듣고 싶은 강의를 들었고, 그 강사를 찾아가 질문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김민식 PD', '강원국 작가'다. 이들은 이 책에 추천사를 써 주었다.


휴직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멈추고 회사에 쏟던 시간을 자신에게 쏟았기에 그는 성장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통제 가능한 대상이 내 말을 듣지 않으니 분풀이를 해야 했던 것이다.'


필자는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낸 후 정재승, 최재정 교수의 강의를 듣고 아이는 통제의 대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이 휴직과 만났다. 그 시너지가 바로 아이들과 70일 동안 엄마 없는 여행을 가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나름 견고한 루틴이 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고, 달리고, 읽고, 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딱 여기까지다. 시간이 부족하다.


강의를 찾아 듣고 싶고, 영어도 공부하고 싶다. 더욱 많은 글을 쓰고 싶고, 더욱 많은 책도 읽고 싶다. 아이들과 70일간 여행도 가고 싶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새벽에 일어나 가질 수 있는 2시간뿐이다. 그 외에는 회사에 매여 있다.




겨우 한 발

난 꾸준함을 엄마 배에 버리고 나왔다.

난 피곤함을 엄마 배에서 얻어 나왔다.



친구들은 항상 내 어깨 위에 곰을 보기 위해 줄을 섰었다. 그래서 뭘 좀 하면 아프다. 그러다 보니 '자기 합리화' 역량이 향상되었다. 여기저기서 핑계를 그럴듯하게 가져오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제 재능을 한 번 발휘해 보자.


난 겨우 한 발 늦었을 뿐이다. 뭐... 한 발 정도 늦어버리긴 했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하며 살고 있다. 나름 견고한 루틴을 만들며 1년 이상을 버텼다. 아내와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더 이상 나는 회사원이 주 캐릭터가 아니다. 남편과 아빠라는 주 캐릭터에 브런치 작가 '성실한 베짱이'라는 부캐를 얻었다.


한 발 늦었지만 난 멈추지 않고 계속 한 발을 내딛는 중이다.



언제 한 번 최호진 작가를 만나봐야겠다. 그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복직은 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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