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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an 24. 2019

#16 왜 퇴사를 준비해야 하는가?

[13주 차] 개인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난다. 난 이들을 존중하고 인정하려 노력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다. 사실을 잘못 알고 있거나 인과관계가 틀주장을 하는 사람이 그렇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머리로는 전혀 수긍하고 싶지 않은데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적절한 반론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회사에 대한 다른 생각


난 마케팅팀에서 일한다. 주관하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가 '전략회의'다. 그중 가장 신경을 쓰는 건 1월 회의다. 사업본부 전 조직원이 참여하고 팀장이 한해의 마케팅 방향을 전달하는 단 한 번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 회의 자료 작성이 내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자료에는 매번 동기부여 동영상이 들어간다. 관련해서 팀장에게 카톡이 하나 왔다.


개인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동영상 찾아봐.


그 팀장은 회의 중에 이런 식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회사가 망하면 누가 손해야?
우리가 손해야!
회사가 잘 되어야 우리가 잘 되는 거야.


올해 유난히 노사협상이 길어졌다. 그러자 내 옆의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뭐 이렇게 불평불만이 많아. 회사가 싫으면 그만 두면 되는 거 아니야? 왜 입사할 때는 간이든 쓸개든 다 빼줄 것처럼 하더니 지금 와서 왜 이리 불평불만이 많아? 꼭 일도 열심히 안 하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이게  맞는 말인가?


이 말을 듣는 순간 짜증이 나는데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 하기엔 왠지 수긍이 간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화가 나는데, 맞는 말인거 같기도 하다.


무우궁화 사암천리 화려 가앙산 대한 사람은 대한으로 길이 보전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익이 우선 되어야 할 것 같고, 회사가 망하면 다 잘리기 때문에 당연히 내 손해인 것 같고, 회사일을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회사에 들어왔으니 회사가 싫으면 그만두는 게 합리적인 것 같다.


내 몸이 회사의 이익이 먼저라고, 회사의 이익이 곧 내 이익이라고, 회사가 싫으면 떠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거부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초중고 12년간 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라고 선생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는 매일 같이 떠든다. 기업이 어려우면 우리가 손해이니 기업 중심의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자에게 유리한 논리만 교육하고 언론은 떠들어 댄다.



회사의 이익 vs 개인의 이익


회사를 다니면서 개인이 얻는 이익이 무엇이 있을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크게  '돈', '삶의 만족도', '소속감'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회사의 이익이 커지면 이 세가지도 커질까?


1. 돈

회사의 이익이 커졌다. 당기 순이익이 천억에서 2천억으로 두배가 뛰었다. 내 월급이 오르는가? 뭐 다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회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시장 상황이 어려울 때는 정확히 반영이 되지만 순이익이 두배로 뛰더라도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건 거의 없다.

'우리 회사는 이익이 나면 PS 같은 걸로 잘 보상해 줘'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익이 나면 직원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회사도 있을 거다. 그러나 일단 우리 회사는 아니고 내가 아는 한 그런 회사는 별로 없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원에게 혜택을 주었더라도 상대적으로 투자자, 주주, 회사가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받았을 거다. 배당이나 사내 유보금 형태로 말이다.


2. 삶의 만족도.

윌리엄 맥어스킬은 『냉정한 이타주의자』에서 직무만족도를 가장 일관성 있게 보여 주는 지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자율성: 업무에 대한 주도권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2) 완결성: 맡은 업무가 전체 업무의 완결성에 얼마나 기여하는가? 최종 결과에 대한 기여도가 단순한 부품 역할에 그치는 게 아니라 눈에 띌 정도로 큰가?
(3) 다양성: 다양한 역량과 재능이 필요한 폭넓은 활동이 요구되는가?
(4) 평가: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가?
(5) 기여도: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타인의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이 지표에 따르자면, 회사의 이익과 삶의 만족도는 전혀 관련이 없다. 내가 회사에서 어떠한 직무, 어떠한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가 만족도를 결정한다.


3. 소속감.

이는 두 번째 주장이었던 '회사가 망하면 우리가 손해'라는 주장과 연결된다. 이 주장은 이렇게 다시 망할 수 있다.

회사가 망하면 우리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그러니 회사가 망하면 안 된다.
회사를 망하게 하지 않으려면,
개인의 이익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회사는 무리한 투자, 확장, 글로벌 경제위기, 동종업계 경쟁 과열, 시장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을 때 망한다. 즉 경영진의 잘못된 방향 설정, 잘못된 판단, 비리 등이 파산 및 부도의 원인이다. 직원들이 개인의 이익을 우선 했기 때문에 회사가 망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망할 회사는 망한다.

그렇다고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다. 일을 열심히 해야 할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일을 잘해서 내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승진의 기회도 있을 것이고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 그러면 급여가 올라 개인의 금전적인 이득이 발생한다. 또한 자율성, 완결성, 기여도가 올라가므로 직무 만족도가 상승하여 삶이 풍족해진다. 그렇기 때문이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해야 하는 것이다. 회사가 망할까 봐, 회사의 이익이 무조건 먼저니까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건 아니다.



회사가 싫으면 그만 두면 되지!


처음엔 '어! 맞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말은 2가지 측면에서 잘못된 말이다.


첫 번째로 이는 회사와 직원을 계약 관계가 아닌 주종관계로 인식한 말이다.

'회사가 싫으면 떠나면 된다.'라는 말은 '회사가 어떠한 나쁜 짓을 하더라도 싫으면 그냥 그만둬라.'라는 말과 같다. 직원이 나쁜 짓을 하면 회사는 그 직원을 자른다. 하지만 회사가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우리는 회사를 자를 수 없다. 노조가 있어 단체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회사의 나쁜 짓을 그냥 수용해야 한다. 이는 노예나 마찬가지이다. 고용과 피고용이라는 계약관계가 아닌 주종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회사가 챙겨주는 것에 '뭐 이런 것 까지 챙겨주시나'하고 감사해하고 불이익에는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며 불평, 불만하지 않는다. 이는 김대감이 돌쇠를 챙겨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회사가 직원에게 나쁜 짓을 못하게 하려고 단체행동을 하고 감시하고 협상하는 것이다. 산업화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수준으로 노동자의 권익이 향상되었다. 이를 무시하는 이런 발언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로 이런 회사는 절대 발전할 수 없다.

해! 안 해? 싫으면 그만둬

직원에게 이렇게 말하는 회사에 누가 들어오겠는가? 당신이라면 입사하겠는가? 창의적이고, 능력 있고, 스펙 좋은 인재가 이런 회사를 거들떠나 보겠는가 말이다. 직원의 자기 계발에 투자하고 동기부여를 해주고 직원의 발전이 회사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기업도 굉장히 많다. 직원을 노예로 인식하는 기업은 경쟁력이 없다. 도태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퇴사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


회사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회사는 자신의 논리를 강요한다. 세상은 강자의 논리를 강요한다. 그들의 논리에 다르면 회사의 이익을 위해 우선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직원이다. 회장, 투자자, 주주, 회사는 절대 희생하지 않는다. 이게 맞다고, 이게 당연한 거라고 교육하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팀장과 내 동료는 회사에 속고 있다.


내가 존경했던 부장님이 있다. 그는 회사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으며 부하 직원에게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직원의 장점을 제대로 찾아 적재적소에 투입하였고 같이 일해 본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어디에서든 산하 조직원의 칭찬을 많이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올해 55세가 되어 임금피크제 대상이 되었다. 계속 회사에 다닐지, 퇴사를 할지 결정해야만 한다. 부장님은 회사를 계속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 후 회사가 내놓은 대답은 '그럼 하위 직무를 주겠다'였다. 부장님은 사원 대리급의 일을 하며 회사에 다녀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만약 부장님이 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최고의 위치에서 당당히 회사를 그만둘 수 있지 않았을까? 만족도가 떨어지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이 우리가 퇴사 준비를 해야하는 이유다. 회사는 개인의 이익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에게는 회사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라고 강요한다.

난 지금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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