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 차] 점심시간을 힐링타임으로...
회사원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퇴근 시간과 박빙이지만 매우 근소한 차이로 점심시간이 이길 거라 생각한다. 내 퇴근시간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장이 결정한다. 그러나 점심시간은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다. 퇴근시간이 되었다고 업무 보고를 멈추지 않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업무 보고를 멈추고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회사원에게 가장 소중한 점심시간을 그들은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11시 40분이 살짝 넘어가는 시간. 부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지?" 부장님의 말에 모두 "네!"라고 대답하고 부산스럽게 일어난다. 김 과장은 약속이 있다며 슬쩍 빠진다. 김 과장을 제외한 4명은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간다. 신입사원인 나는 올해 들어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점심을 먹지 못했다. 메뉴는 부장님이 정한다. 물론 뭘 먹을지 물어본다.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오늘은 왠지 수제 버거가 먹고 싶지만 청국장을 먹으러 간다.
한 달치 점심식사 일정이 가득 찼다. 유관부서 사람들과 점심을 먹어 놔야 일하기가 편하다. 회사는 역시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가끔 불편한 사람들과 점심을 먹는 게 힘들긴 하지만 회사 생활을 위해서는 견뎌야 한다.
회사원의 점심시간은 위 두 가지가 대부분일 거라 생각한다. 부서에서 일괄적으로 밥을 먹으러 가거나, 미리 점심 약속을 분주히 잡아놓는 경우다. 물론 식당이 따로 있는 회사도 있다. 영업 부서에 있다면 비즈니스 식사 자리가 일주일에 2~3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이를 제외하면 아마 위 2가지 경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점심 식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장한업 교수의 『단어로 읽는 5분 세계사』를 보면 하루에 2끼만 먹는 역사가 약 18세기까지 이어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서양 사람들은 하루에 2끼만 먹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기계는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으니 기계에 사람의 시간을 맞추게 되었다. 가장 효율적인 노동 시간은 9시~6시였고 아침을 먹고 저녁까지 시간차가 너무 생겨 1시에 간단히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이 규칙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2끼를 먹었다. 점심(點心)의 어원은 딤섬으로 흔히 만두를 일컫는 말로 알고 있지만 아침과 저녁 사이에 간단한 음식을 먹는 행위를 말한다.(나무 위키) 즉, 점심을 대부분 먹지 않았고 먹더라도 간단히 먹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19세기 중엽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낮이 길고 일을 많이 하는 음력 2월부터 8월까지는 하루 세 끼를, 낮이 짧고 일이 별로 없는 9월부터 2월까지는 하루 두 끼를 먹었다고 한다. 육체노동이 많은 농번기는 2끼에 새참을 1끼 이상 먹었던 것이고 농한기는 2끼만 먹었다. 이도 육체노동자인 농민에게 해당하는 말이고 관원들의 경우도 하루에 2끼를 먹었다고 한다. 아침과 저녁은 순우리말이지만 점심은 한자어인 것만 봐도 점심의 역사가 길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점심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고, 그것도 간단히 먹는 형태로 발전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점심은 주된 식사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잘 차려 먹는다. 영양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비즈니스 점심식사가 아닌 이상 구태여 점심을 거하게 챙겨 먹을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간헐적 단식도 유행이고 최고의 보양식은 굶는 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매일 세 끼씩 배부르게 먹는 것이 정말로 몸에 좋을까? 지나치게 많이 먹었을 때 활동하는 생명력 유전자는 거의 없다. 그래서 포식이나 잘못된 식생활 탓으로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나구모 요시노리,《1일 1식》
<운동>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내가 아는 타 부서의 선배도 매주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헬스장으로 운동을 하러 간다. 그 선배의 말을 빌리면, 11시 30분에서 40분 사이에(우리 회사의 점심시간은 12시 ~ 오후 1시다.) 눈치를 잘 보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야만 온전히 40분 정도를 운동에 쏟을 수 있다. 당연히 체육관은 가까워야 한다. 11시 40분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시작하면 11시 50분. 40분 정도 운동을 하고 씻고 회사에 가면 간신히 1시를 맞춘다고 했다. 유산소 운동은 시간상 할 수 없고 하루 혹은 2~3일 단위로 부위를 바꾸어 가며 근력 운동 위주로 한다고 했다.
<휴식>
해먹이 설치되어 있거나, 안마의자를 설치해 놓은 수면 카페가 많이 생기고 있다. 이를 활용하여 30분의 꿀잠을 자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독서>
대부분의 회사원은 독서를 하고 싶어 한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독서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들다. 퇴근 후 집에 가면 몸과 마음이 풀어지고 TV와 침대가 날 유혹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독서를 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 또한 11시 50분 경 카페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한적한 카페에 들어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커피와 베이글 혹은 샌드위치를 시키고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다. 무언가 하루가 충만해진 느낌이 든다.
<산책 or 사색>
가끔 미친 듯이 일이 치고 들어올 때가 있다. 이런 날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다가온다. 이 때 필요한 건 생각정리다.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산책이나 사색을 해본다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며 걷거나 카페에서 차를 한잔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부>
타 부서 후배는 점심시간에 빈 회의실을 잡는다. 점심시간에 회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회의실이 텅텅 비어 있다. 그 회의실에서 자격증 공부를 한다. 그렇게 3달을 하더니 자격증을 취득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점심>
큰 아이가 방학을 하면 가끔 점심을 먹으러 회사 앞으로 나온다. 이렇게 먹는 점심이 어찌나 맛있을 수가 없다. 비싼 거 좋은 거 먹는다. 돈이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이런 날은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행복해진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과 가끔 맛있는, 비싼 점심을 먹는 것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 편한 동기나 친한 선후배와 한 달에 한번 맛있는 점심을 먹는 건 어떨까?
점심 약속을 잡지 않은지 2달이 넘어가고 있다. 일주일에 1번 정도는 피하기 힘든 점심 약속이 생긴다. 이를 제외하고는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브런치 글을 쓴다. 처음에는 점심시간에 혼자 있는 것이 힘들었다. 소외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점심을 누군가와 함께 먹지 않는 것이 난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는 사회성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존감이 높다면 혼자 먹던 같이 먹던 아무 상관이 없다. 어떤 점심시간이 나에게 더 좋은 영향을 주는지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