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는 내 인생의 장애물이다.

by 성실한 베짱이

입학식

찐이는 태어나자마자 아팠고, 원인은 잘 모르지만 (원인은 중요하지도 않지만)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찐이는 생각만큼 쑥쑥 자라지 않는다. 찐이의 누나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발달했던 것을 경험했던 터라 그 간극이 좀처럼 메꿔지지 않는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어디에 있든 항상 불안하다. 어제는 아내가 화장실에 잠깐 간 사이 문틈에 손을 찧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의 시간은 지독히 느리다. 20년은 힘들었던 듯 하지만 아이는 고작 3~4년 자란 듯하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다가도 앞으로 남은 시간을 내다보면 절망에 빠지곤 한다.


찐이가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갔다. 며칠 전부터 가슴이 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입학실 날 그냥 휴가를 낼 걸 그랬다. 함께 있으면 불안감이라도 줄어들 텐데 말이다. 회사에서 찐이가 교문을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슴은 계속 뛴다. 아니 떠 뛴다.


줄을 서면 많이 흥분하는 데, 뒤의 아이를 잡아당기지는 않을지, 소리를 지르지 않을지, 수업 시간에 너무 돌아다니지는 않을지, 너무 불안해서 집에 간다는 이야기만 반복하지는 않을지, 선생님을 그런 아이를 윽박지르지는 않을지, 만약 그러면 아이는 학교를 안 가려할 텐데, 더 소리를 지를 텐데, 이런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미리 해 놓을 걸 그랬는지, 아니지, 내가 뭐라고 이런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할 수가 있나, 그저 선생님을 믿는 수밖엔 없는데, 등등 1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걱정이 머리를 흩어 지나간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벌써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되었구나라는 벅차오름은 있었어도 불안감은 거의 없었다.


장애물

너는 내 인생의 장애물이다. 너로 인해 난 힘들다. 너로 인해 난 불안하다. 너로 인해 내 감정은 고갈되어 버린다. 너로 인해 내 인생은 사라져 버린다.


마음대로 술을 마시지도, 마음대로 친구들을 만나지도, 마음대로 여행을 가지도, 마음대로 아내와 시간을 보내지도 못한다. 내가 결혼 전 꿈꾸던 아들과의 생활, 함께 농구를 하고, 선술집에 가고, 이성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거다. 네가 내 꿈을 찢어 놓았다.


꿈. 그래, 꿈...... 찐이가 태어나기 전 내 꿈은 뭐였지? 엄청난 꿈이 있었을 거야. 그러니 내가 이리 힘들지. 아니 엄청나진 않아도 소박하게 행복을 가꿀 꿈이 있었을 거야. 뭐였지? 남들보다 빠른 승진? 부장님에게 칭찬받는 거? 친구들과 만나 내가 아주 조금 잘난 것을 말하며 우월감에 빠지는 거? 고작 이런 거였나?


꿈은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갔었다. 관성적으로 어제 했던 일을 오늘도 하고, 오늘 했던 일을 내일도 했다. 술을 마시고, 유튜브를 보며 손쉽게 자극을 받아들였다. 그 자극을 행복이라 믿으며, 힘들게 회사 다녀왔으니 그래도 된다는 값싼 합리화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내 생각을, 내 시선을 갖지 못한 채 내 삶이 아닌 남이 정해 놓은 삶을 내 삶이라 착각하며 살았다.


내가 모든 걸 안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수긍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아는 이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르고 내 아집에 빠져 작디작은 세계를 옳다 단정하며 살았다.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파란약'과 '빨간약'을 보여 주었지. 나에겐 찐이 네가 '파란약'과 '빨간약'을 건네주었구나. 다행스럽게도 난 과감히 '빨간약'을 집어 들었고 내가 그동안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 너를 장애물로 생각했다. 내 인생을 어렵고 힘들게 만든 네가 미웠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넌 오히려 날 다독거려 주는구나. 날 꼭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는구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다가도 앞으로 남은 시간을 내다보면 절망에 빠지곤 했다. 그 절망 속에서 허우적 대다 깨달았다. 모든 장애물은 내 안에 있음을. 찐이, 네 덕분이다. 네 덕분에 달리고, 읽고, 쓰며 날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지도, 앞으로 남은 시간을 내다보지도 않을 거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너에게 사랑한다 말할 거다.


널 장애물이라 생각했던 못난 아빠를 용서해주겠니?

43073770141_230849b118_o.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찐이 선생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