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겁이 났다. 교육청? 민원? 어떻게 해야 하지? 아내는 말라갔다. 나도 살이 조금 빠진 듯했다. 역시 다이어트는 마음고생이 최고다. 아내는 5년간 체중계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숫자를 드디어 봤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난 맞장구치며 깔깔 웃었다. 웃음의 뒷 맛이 참 쓰다.
찐이는 불안하다
친숙한 어린이 집 선생님 대신 처음 보는 (무언가 무서워 보이는) 선생님이 눈 앞에 나타났다. 교문은 어린이 집 문에 비하면 수십 배는 커 보인다. 위압감이 느껴진다. 무서워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실무사 선생님의 손을 잡자마자 엄마는 사라졌다(찐이는 교실에 혼자 있을 수 없기에 실무사 선생님이 옆에서 생활을 지원해 주신다.).
어린이 집, 특히 작년은 코로나로 인해 갈 때 보다 안 갈 때가 더 많았다. 몇 달을 쉬다 하루 나가면, 다시 며칠을 쉬었다. 그냥 내키는 대로 가는 곳이 작년 찐이의 머릿속 어린이 집이었다. 찐이는 이렇게 어린이 집을 다니다 학교에 갔다.
다른 아이들은 학교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안다. 찐이는 모른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위험한지, 안전한지, 언제 가고, 언제 가지 않는지 모른다. 오랜 시간 몸으로 익혀야 한다. 급식실을 가니 하얀 옷을 입은 선생님이 있다. 병원인가? 주사? 초음파? MRI?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어 무섭다. 건물, 계단이 참 크고 많다.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찐이는 계속 물어보고, 확인하기 시작했다. 학교 끝나고 엄마 기다려? 학교에서 밥 먹어? 밥 먹고 끝나? 학교에서 공부해?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 이런 질문을 수십, 아니 수백 번 하기 시작했다. 뭐... 그 덕에 아내와 나는 다이어트가 가능했지만.
집에서만 하더 질문을 3일째 되는 날, 수업시간에 하기 시작했다. "엄마 집", "밥 먹어", "기다려" 이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주변 아이들은 찐이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너무 시끄러워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찐이 때문에 10개를 가르쳐야 하는데 4개밖에 가르치지 못했다.
평등한 교육권?
찐이가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했다. 찐이가 너무 시끄러워 수업을 진행하지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찰나의 순간 미래가 보이더라.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 찐이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겠지. 그럼 엄마들은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우리 찐이가 침해했다고 생각하겠지.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생각하면 엄마들이 모여 우리 찐이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그리고 교육청에 민원을 넣든, 학교 측에 민원을 넣든, 아이들의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겠지. 우리 찐이는 결국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겠지.
교육권은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교육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수업 시간에 너무 떠들어 수업 분위기를 흐리거나,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돌아다녀서도 안된다. 만약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 지식, 경험, 인프라, 프로세스, 제도 등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잊는다. 아니, 생각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 찐이에게도 교육권이 있다는 사실을. 발당장애 아이의 교육권은 더 작고, 비장애 아이의 교육권은 그 가치가 더 큰가? 아니다. 교육권은 똑같다.
장애 아동의 교육권은 태어나면서부터 침해받고 있다. 비장애 아동에게 맞춰져 있는 교육 환경으로 인해 태어나는 순간부터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소수가 다수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이, 다수도 소수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다수에게 이익이 된다고 소수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