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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이를위한 어벤저스, '개별화교육지원팀'

개별화교육지원 회의를 마치고

by 성실한 베짱이

찐이의 불안

— 하교 아이요.
— 엄마 기아여
— 바머거~ 끄~
학교 안 가요 / 엄마 (학교 앞에서) 기다려 / 밥 먹고, (학교) 끝~

찐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 이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분명히 어제 학교를 간 것 같은데... 왜 오늘 또 가는 거지? 설마 내일도 가는 건가? 아니지... 아침에 갔다가 저녁때 또 가는 거 아니야? 오늘은 왜 안 가지? 도대체 학교는 언제 어떻게 가는 거야?


요일이나 시간 개념이 이리 어려운 개념인 줄은 몰랐다. 찐이는 월요일이 뭔지, 휴일이 뭔지 잘 모른다. 당연히 불금도 모른다. 찐이가 아는 시간은 '3시'뿐이다. 어린이 집 하원 시간이 3시였기에 찐이 머릿속에 '언제'는 무조건 3시다. '학교 끝나고'라는 답변을 기대하며 "엄마가 언제 기다리지?"라고 물어보면 찐이는 울먹이며 "3시!"라고 대답한다.


비장애 아이들은 월~금까지 학교에 가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신나게 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찐이는 언제 또 학교를 갈지 잘 모른다. 여러 번 반복해서 몸으로 알게 될 때까지 불안할 거다.


게다가 이번 주는 찐이가 감기에 걸려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다. 지난 2주간 학교를 다니며 어느 정도 규칙을 익혔고, 불안도 꽤 많이 줄어들었기에 더욱 아쉬웠다. 2주간 겨우겨우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질까 두려웠다.


찐이를 위한 어벤저스

'개별화교육지원팀'

이런 불안이 점점 고조되고 있을 무렵 개별화교육지원팀이 구성되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라 각급 학교의 장은 매 학년의 시작일부터 2주 이내에 각각의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한 개별화교육지원팀을 구성하여야 한다. 이 팀은 교감, 담임, 특수교사, 부모로 이루어지고 매 학기 시작일부터 30일 이내에 개별화교육계획을 작성하여 제출해야 한다. 코로나 상황이라 대면이 불가능하여 '줌 Zoom'을 이용해 미팅을 진행했다.


아내는 교육 계획 작성을 위해 요건을 갖추는 것이 목적인 형식적인 자리일 거라 말했다. 회사에서도 형식적인 미팅이나 요건을 갖추기 위한 절차가 절반이 넘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한 편으로는 너무 형식적이진 않길 바랬다.


'개별화교육지원팀'이 꾸려지기 전에 면담과 전화로 기본적인 내용은 합의를 한다. 예를 들면, 국어와 수학은 도움반에서 수업을 하고 나머지 수업은 원반에서 하는 부분 통합을 한다던지, 실무사 선생님의 배치는 어떻게 한다던지, 도서관 교육 같은 특별활동이 있는데 이 교육에 대한 참여는 어떻게 한다던지 하는 내용들이다. 이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겨 놓는 것이 이 미팅의 가장 큰 목적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하기로 하셨는데 맞나요?"라고 질문하면,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는 형식적인 미팅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목적과 형식을 비판하는 건 전혀 아니다. 구두상으로 가볍게 합의한 내용을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서 확정하는 것은 필요한 절차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이 방법이라는 것에도 동의한다.


다시 한번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을 보면, “개별화교육”이란 각급 학교의 장이 특수교육대상자 개인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장애유형 및 장애특성에 적합한 교육목표ㆍ교육방법ㆍ교육내용ㆍ특수교육 관련 서비스 등이 포함된 계획을 수립하여 실시하는 교육을 말한다. 입학 후 30일 이내에 작성해야 하는 '개별화교육계획서'는 개별화 교육을 실행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며, 그 계획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목표 설정이다. 그리고 장애인 부모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 아이의 안전과 차별 금지'다. 찐이를 위해 어벤저스가 모이는 건 1년에 단 2번. 그저 형식적인 질문과 대답이 되풀이되어서는 '아이의 안전과 차별 금지'라는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의 안전과 차별 금지'를 위한 3가지 메시지

'우리 아이의 안전과 차별 금지'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 수업 형식이나 내용, 교육 서비스에 대한 확인 못지않게 중요한 건 메시지를 던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크게 관심이 없다.


첫 번째로 내가 던진 메시지는 찐이의 불안과 부모의 시각으로 본 불안의 이유였다. 아이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안정이 중요하다. 찐이는 지금 학교에 대한 큰 불안을 표출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기존 어린이 집이나 미술치료, 언어치료와 같은 치료실의 환경보다 학교의 환경이 위압적이기 때문에 찐이는 불안하다. 큰 건물, 많은 아이들, 의자와 책상 뭐 하나 위압적이지 않은 게 없다. 급식실은 병원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요일과 시간 개념이 없기 때문에 항상 학교에 갈까 봐 불안하다.


이에 대해 특수 선생님은 아침을 든든히 먹여서 보내보라고 하셨다. 배가 고프다는 이야기를 찐이가 하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불안이 올라갈 수 있다는 거다. 아침을 거르지 않고 든든히 먹는 찐이인데 요 며칠 잘 먹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아침을 든든히 먹여서 보내야겠다.


아이의 불안은 당연한 거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남은 수업시간을 시각적으로 나타내 주니 아이가 불안이 줄어든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원반 선생님은 아이가 눈치가 없진 않아서, 앞으로 불안이 조금 더 줄고,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적응에는 큰 문제없을 거라 했다.


두 번째로 정진이에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른 아이들의 경우 오늘 10개를 배워야 하는데, 4개만 배운다고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금세 따라잡을 거다. 오늘 조금 덜 배웠기 때문에 다른 세계를 접할 기회가 사라진다거나, 인생이 바뀌는 영향까지는 없을 거다. 그러나 찐이는 다르다.


한 번 부정적인 인식이 고착화되면 웬 간 해서 그 인식을 바꾸기 힘들다. 찐이는 처음에 먹은 빵이 맛이 없었는지, 아직까지도 빵을 먹지 않는다. 학교도 빵처럼 될 수 있다. 빵이야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학교는 그럴 수 없다.


학교에 잘 적응한다면 찐이는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노력과 주변의 호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기적이 일어야만 만날 수 있는 어려운 세상이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바뀌는 그 기로에 찐이가 서 있다. 우리 아이는 늦게 배울 뿐 다른 아이들과 같다며,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달라고 부탁드렸다.


세 번째로 장애인의 교육권에 대해 메시지를 던졌다. 10년 전, 20년 전을 생각해보면 인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많은 부분 개선되었지만 아직 부족하다. 장애 아동이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체육 시설이나 프로그램은 매우 부족하여 1~2년은 대기를 걸어놔야 겨우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저상버스는 2004년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도입률은 30%에 못 미친다.


장애아동을 위한 복지 시설을 갖추는 것이나 저상 버스를 도입하는 것이 장애인들을 생각해서 '특별히', '해 주는' 것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살라는 차별적인 시선이 아직까지 존재한다. 다수의 편의에 맞춰진 여러 시스템이 장애인이라는 소수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님들은 당연히 이런 차별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다. 특수교사는 물론이고 장애인-비장애인 통합 초등학교의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김지혜 교수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말한 것처럼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지만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그래서 난 찐이의 교육권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소수에 의한 다수의 피해가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다수에 의한 소수의 피해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찐이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다.

1시간도 걸리지 않을 거라 예상했던 미팅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끝났다.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선생님들은 그 메시지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메시지의 의미나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우리의 마음이 전달했다는 사실이다. 찐이를 중심으로 한 개별화교육지원팀 사이의 유대감이 높아졌다. 자칫 형식적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던 회의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어 통합 학교에 가야 한다면 개별화교육지원 미팅에 대해 준비해야 하는 것은 필요하다. 전달할 메시지를 글로 써 놓아도 좋고, 미리 조금만 생각해놔도 큰 도움이 된다. 아무런 준비 없이 참여하여 일방적으로 이야기만 듣는 것보다는 의견을 말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 좋다. 긍정적인 태도로 경청하고 의견을 교환한다면 훨씬 깊어진 유대감을 가지고 아이를 대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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