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 여자가 정말 싫어요

by 성실한 베짱이

저 여자가 싫다. 아... 너무 싫다. 꼴도 보기 싫다.


평소에는 잊고 살지만 어느 순간 그 여자의 이미지가 떠오를 때면 심장이 뛴다. 혈액이 돌면서 얼굴은 빨개진다. 불쾌한 감정이 돌이 되어 갈비뼈 사이에 꽉 박혀있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싫어해본 적이 거의 없다. 질투를 하거나 불편한 사람은 있었지만 싫어서 어찌할 바 모르겠는 상대는 없었다.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빠는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야?
전두환

내 대답은 이랬다. 이제 이 대답은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네 친구 A의 엄마!

이렇게.


3년 전이었나. A의 엄마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과격할 수 있느냐, 이제 자신의 아이와 빤뽀를 놀지 못하게 하겠다, 만약 내 말을 어기고 놀면 천륜을 끊겠다고 아이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고 말했다.


A는 친구 B와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 네가 이런 말을 했네, 안 했네. 초등학생의 흔한 논쟁거리다. 내 딸 빤뽀는 자신의 친구인 A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빤뽀는 말싸움에 약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생의 말싸움은 논리와 사실은 제쳐놓고 발음이 좋고, 말이 빠르고, 끊기지 않으면 웬만하면 이긴다. 빤뽀는 말이 빨랐고, 발음도 좋았다. 말이 되든 안 되든 끊기지 않고 말의 뒤를 물고 다음 말을 뱉을 수 있었다.


애들 말싸움에서 갖추어야 할 기본기가 탄탄했다. 학교에서 래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그때도 말을 매우 빠르게 아웃사이더 급으로 쏘아 댔을 거라 생각한다.


말싸움은 보통 큰 유혈사태 없이 흐지부지 끝나기 마련이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서로의 대화를 녹음하고, 증거로 내밀고, 평소보다 더 과격하고 톤이 높은 대화가 이어졌다. B와 빤뽀의 통화소리는 옆에 있던 B의 엄마 귀로 흘러들어 갔고 빤뽀라는 아이가 누구냐고, 조그만 아이가 어쩜 이리 과격하게 말할 수 있냐, 고 A의 엄마에게 말했고, A의 엄마는 아내에게 전화해서 충조평판을 날렸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난 빤뽀에게 욕을 하거나 때린 건 아니지만 과격한 말도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B와 그 엄마를 찾아가 정식으로 사과했다. 빤뽀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나도 그 아이의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미움이 자리 잡았다.


이 사건은 빤뽀의 친구인 A, A의 친구인 B 그리고 빤뽀, 이렇게 세 친구 간의 트러블이었다. 그러나 A의 엄마는 자신의 착하고, 순수한 딸이 빤뽀라는 친구를 잘못 만나 이 일이 발생했다고 멋대로 판단해버렸다. 빤뽀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리고 우리 가족에게 아이를 이런 식으로 관리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하며 우리 가족을 멋대로 평가해버렸다.


아내가 그 여자에게 되지도 않는 충고를 들었을 때,

네. 잘 알았고요. 사실관계는 알아보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달해 주신 건 고맙습니다. 허나 당신 마음대로 평가하고 판단하고 충고하는 지금 이 말은 적절치 않네요. 기분이 몹시 상합니다. 앞으로 연 락하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여자는 동네에서 공부방을 운영한다. 주변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굉장히 살갑게 대한다. 공부방에 보내는 엄마들에게 평판이 매우 좋다. 우리에게 그 여자는 선량한 누군가를 멋대로 가해자로 만들어버리고 한 가족의 문화를 멋대로 그러면 안 되는 것으로 평가해 버린 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하는 폭력적인 사람일 뿐이지만 말이다.


아내가 이 이야기를 또 꺼냈을 때도 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잊고 살고 싶었다.

제발, 벗어나자 우리. 더 이상 그 여자 이야기하지 말자. 마음을 잘 다스려야지! 넌 이 이야기를 또 하면 짜증이 풀리는지 몰라도 난 아니야. 너무 짜증 나고 화가 나서 가서 그 여자 뺨이라도 한 대 때리고 오고 싶다고. 우리가 이런다고 그 여자한테 무슨 일이 생겨? 아니잖아? 우리만 짜증 나고, 우리만 지금 싸우고, 우리만 피해를 본다고, 우리만!"

아내에게 마음을 다스리라 말했지만 정작 제일 마음을 다스리고 있지 못한 건 나였다.



난 왜 그 여자가 미울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여자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여자의 이미지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사람들에겐 똑 부러지게 공부방을 운영하는 성격 좋은 여자지만 나에겐 함부로 충조평판을 날리는 폭력적인 사람이다. 이 차이를 메꾸고 싶은 욕망, 다른 사람들에게 그 여자의 본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사람은 기껏해야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 남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싫은 여자를 좋은 여자로, 내 마음을 바꿀 필요도 없다. 그냥 난 그 여자가 싫다. 그거면 된다. 난 그 여자가 싫다. 이 사실을 알아차릴 뿐이다. 욕망을 알아차리면 거짓말처럼 욕망이 사라진다.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내 아이만 가해자, 나쁜 아이로 만들어 버리고 자신은 쏙 빠져버린, 아니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한 그 영리함에 당한 내가 억울했다.


아이는 이 사건으로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 깨닫게 되었을 거다. B에게 사과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라 말하지 않았다.

"아빠. 마음이 편안해졌어."

아이는 온전한 사과의 효과를 경험한 듯했다. 우리 아이에게 이런 멋진 기회를 선물해준 여자다. 억울할 필요는 없다. 그 여자는 싫지만.


깊은 곳에는 열등감도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며, 공부방을 운영하고, 돈도 많이 버는 그 여자. 반면에 발달장애를 가진 찐이 덕분에 주변과 소통 없이 약간 고립된 아내, 약간 기운이 빠진 상태로 동네를 거니는 나와 친구가 자신을 떠날까 걱정하는 빤뽀. 이 차이가 내 열등감을 더욱 자극했다.


난 책 <해방촌의 채식주의자>에서 전범선이 말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개인들이 모여 살면서 느슨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공동체'를 꿈꾼다. 약간의 고립과 기운이 빠진 상태로 동네를 거니는 건 느슨한 유대감의 필수요건이다. 친구가 자신을 떠날까 걱정하는 빤뽀는 어렸을 때 나와 같다. 나도 같은 불안을 가졌지만 지금은 약간의 고립과 기운 빠진 상태와 느슨한 유대감을 원하고 있다.


용서는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다.

미움은 가장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다.

이기적으로 나를 사랑하려 한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싫은 건 여전하니까 친한 척은 하지 말아 주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내가 내 뺨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