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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내 뺨을 때렸다.

by 성실한 베짱이

— 어제 너 꿈자리 사납지 않았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내가 나에게 묻는다.


— 응? 꿈자리? 난 괜찮았는데? 중간에 잠깐 깨긴 했지만 찐이 태어난 이후로 안 깨고 잔 날이 있나 뭐... 왜 그러는데?

— 아니... 내가 니 뺨을 미친 듯이 때리는 꿈을 꿨거든!


뺨? 중학교 때 선생님께 맞아본 이후로 단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는 뺨이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25년 전, 교사의 권위로만 건드릴 수 있었던 내 뺨을 때렸다니 도대체 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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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갑자기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아이의 흔적이 없다. 이름을 불러봐도 되돌아오는 건 메아리로 변한 내 목소리뿐이다.


도대체 이 아이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불길한 생각이 날 사로잡는다. 아니야! 아니야! 머리를 흔들어 엄습해 오는 검은 그림자를 겨우 털어내고 집으로 달려간다.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집에는 남편이 있을 거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손을 잡아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었던 그 남자. 평소에는 한 없이 가볍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어느새 듬직한 영웅이 되어주는 그 남자. 그 남자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다.


됐다. 집에 도착했다. '삑삑삑' 다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간 집 현관 앞에서 잠시 멈춘다. 눈 앞에는 양주 병과 소주병이 보였고, 거실에는 어떤 남자가 자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잠시 생각하는 찰나 남편이 하품을 하며 화장실에서 걸어나온다. 남편의 충혈된 눈과 내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남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하루방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린다. 안방 문이 열리더니 어떤 여자가 걸어 나오고 나와 눈이 마주친다. 거실에 자고 있던 남자가 나를 보고 벌떡 일어서더니 이렇게 말한다.


— 어! 누나!


남편은 내 대학 1년 후배다. 남편 대학 친구는 내 1년 후배가 된다. 이 새끼가 친구를 불렀구나. 게다가 내가 아는 얼굴이다. 어이가 없네. 지금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넌 족발에 술이나 쳐 마시고 있었구나. 옆에 여자는 또 뭐냐?


'이런 족발'


난 남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서 뺨을 후려치기 시작한다.


거실에서 남편 친구이자 내 대학 후배가 날 말리려 황급히 다가오다 족발 뼈다귀를 밟고 쓰러진다. 옆에 있던 여자는 놀랐는지 소리를 지르며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난 꿈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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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꿈은 스펙터클했다. 아이가 없어졌는데, 내가 친구를 집으로 불러 술을 마시고 있었고, 게다가 여자? 내 인생에 여자는 단 한 명! 당신뿐인데, 아무리 꿈이라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줄이야. 내가 만약 아내의 상황이었다면 '뺨'보다는 '족발 뼈다귀'를 선택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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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꿈 이야기를 듣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어넘기곤 회사로 향했다. 아내도 그저 그런 꿈을 꾸었던 게 흥미로워 나에게 이야기했을 뿐, 큰 의미는 두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아내가 꿈 이야기를 하며 나를 살짝 째려보던 그 눈빛이 문득 떠오른다. 왜 이런 꿈을 꾼 걸까? 혹시 잠재의식 속에 나에 대한 미움이 남아있나? 왜지? 저번에 몰래 반차 내고 등산 간던 배신감이 아직 남아있나?


꿈보다 해몽이다. 구글에 물어보자. 주머니에서 스마폰을 꺼내 '뺨 때리는 꿈'을 검색했다. 다행히 길몽이었다. 자신이 때린 사람과 사이가 돈독해진다는 뜻이란다. 묵혀있던 감정이 있다면 해소될 것이며, 사랑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아내가 내 뺨을 미친 듯이 때렸으니 우리 사이는 미친 듯이 돈독해지겠구나.


이 해몽은 맞는 듯하다. 실제로 우리 사이는 돈독해졌다. 찐이 덕분이다.


지난주 찐이 초등학교 면담이 있었다. 찐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의 몇 마디 말이 우리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다. 선생님은 찐이가 글씨를 너무 잘 써오고, 대답을 잘한다며 이렇게 칭찬한다고 했다.

"여러분, 찐이가 글씨 써온 거 보세요! 찐이도 이렇게 글씨를 써오는 데 여러분들은 더 잘 써야겠죠?"
"여러분, 찐이도 이렇게 '네!'하고 대답을 잘하는 데, '왜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안 되겠죠?"

'장애인은 열등한 존재다. 찐이는 장애인이다. 너희들이 찐이보다 못하면 되겠니?'

이 말과 같은 말이라고 한다면 심한 비약일까?


찐이가 수업시간에 돌아다니거나 떠들면 제지하고, 울면 엄마에게 전화해서 오지 못하게 할 거라 협박한다. 아이 안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하며 아이가 친구를 미는 이유, 건드리는 이유, 때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듯 느껴졌다.


'장애인은 폭력적인 성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밀거나 때릴 수 있어요.'라고 받아들인다면 이 또한 심한 비약일까?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내 직업과 아내의 직업까지 묻는 선생님에게 불쾌감을 전혀 표시하지 못하고, 끝까지 웃으며 성실히 모두 대답한 후, '우리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며 나왔다.


아내는 내 손을 잡았다.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깊게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우린 미친 듯이 돈독해졌다.


이런 뺨이라면 얼마든지 맞아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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