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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Aug 13. 2021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

실패하기 위한 이유를 찾는 인생

실패의 이유

난 실패가 두려웠다. 우스운 꼴을 보여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무서웠다. 핑계를 찾아다녔다. 실패해도 괜찮을 핑계, 잘 못했을 때 내세울 방패막이가 되는 이유들을 미리 수집했다.


중요한 농구대회 전, 발목이나 무릎을 다쳤다. 수능 시험 전에는 배가 아팠다. 밴드 공연 전 날 워크숍이 잡혔다. 거기서 난 목이 쉬었다. 다음 공연, 난 감기에 걸렸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는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가기도 했다.


상황을 보면 언뜻 불가항력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핑계는 찾으면 찾을수록 만들어져 내 앞에 나타났다. 간절히 생각하면 현실이 된다는 시크릿 류의 근거 없는 신비주의는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핑계를 생각하면 어느새 내 앞에 핑계가 와있었다. 핑계로 인해 편안함을 느꼈다. 겉으로는 아쉬운 척했지만.


내 능력의 바닥이 드러나거나, 관객들의 반응이 심드렁하거나, 과도한 긴장으로 실수를 할까 두렵다. 이 두려움이 핑계를 애타게 찾게 만든다. 때마침 입사 2년 차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단합대회가 벌어진다. 충분히 술을 적게 마시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목구멍에 던져 넣고 부장님 옆에서 크게 웃고 소리를 지른다. 공연을 망친다면, 빌어먹을 회사와 꼰대 부장 때문이다.


프레젠테이션을 망치고, 시험에 떨어진 건 아이가 아파 응급실에 갔기 때문이고, 배가 아팠기 때문이다. 연습과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얼마나 편안한가. 난 열심히 했지만 빌어먹을 세상이 날 도와주지 않는다.


젠장! 하필이면, 하필이면! 왜 지금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

철학자: 가령 자네가 A라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세. 왜냐하면 A에게는 용서하기 힘든 결점이 있으니까. 하지만 A의 결점을 용서 못해서 싫어하는 것이 아닐세. 자네에게는 'A를 싫어한다'는 목적이 앞서고, 그 목적에 맞는 결점을 나중에 찾아낸 거니까.

청년: 그러면 제가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해,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간관계를 회피하기 위해, 고작 그런 걸 위해 남의 결점을 꾸며냈다고요?

철학자: 그렇다네. 아들러는 여러 가지 구실을 만들어서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려는 사태를 가리켜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했어. 잔인한 말이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한다. 남 탓으로 돌리고, 환경 탓으로 돌리고,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친다.

청년: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단언할 수 있죠? 제가 어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

철학자: 맞아. 나는 자네의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네. 다만 한 가지는 알고 있지?

청년: 뭘요?

철학자: 자네의 생활양식, 인생을 사는 방식을 결정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 자신이라는 사실.

p137~138,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인플루엔셜


실패의 이유를 미리 찾고 있었다.


긴 시간이 흘렀고, 이제야 알아차렸다. 이제라도 알아차렸으니 다행인가. 배가 아파서, 무릎을 다쳐서, 꼰대 부장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난 실패해야만 했고 실패하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도전하지 않거나, 미리 실패의 이유를 마련해 놓는 것이다. '인생을 사는 방식을 결정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실패의 원인을 모두 남과 환경으로 돌렸다. 가혹하리만치 편안한 거짓말 뒤에 숨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알아차리니 실패가 두렵기는 해도 핑계는 사라진다. 두려움은 여전히 거북하지만 제거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친구 정도로 여기니 견딜만하다.


실패의 이유는 나에게 있다.

6월부터 8월까지 2달간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일상이 조금 흔들렸음을 느낀다. 아침 루틴도 글쓰기, 책 읽기도 프로젝트와 함께 멈췄다. 매일매일 끊임없이, 흔들림 없이 하는 것이 습관이지만 그러지 못했다. 기한이 주는 압박에 흔들리고 실패의 두려움에 조급했다.


프로젝트의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온다. 실패할까 봐 두렵다. 더 두려운 건, 나도 모르게 실패의 이유를 차곡차곡 쌓아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곰곰이 2달 간을 되짚어 본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고, 이 사람 저 사람 탓도 해봤고, 날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핑계는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를 오롯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실패하면 여전히 거북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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