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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Mar 14. 2022

다른 사람들 위가 아닌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책.

책을 읽는 이유

(p55)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하잖아요.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요.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 강해져요. 바로 이 강해지는 면과 성공을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지기도 하거든요. 책 속에는 내 좁은 경험으론 결코 보지 못하던 세상의 고통이 가득해요. 예전엔 못 보던 고통이 이제는 보이는 거죠. 누군가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내 성공, 내 행복만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흔히 말하는 성공에서는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주지 않는 거죠. 대신,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클레이하우스


이 상태로 계속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이대로 산다면 나에게 남는 건 고작 한 줌도 안 되는 퇴직연금과 없어질지도 모르는 국민연금, 불안과 걱정에 잠식되고 있는 아내, 장애인 아들, 자존감 낮은 딸 그리고 여러모로 형편없는 '나'만 남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막연히 흔히 말하는 성공을 꿈꿨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동산, 주식, 금융상품 이따위 것에서 내 삶이 변화될 것만 같았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부동산, 주식에는 어떻게 투자해야 하지?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읽으면 돈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지, 어떨지 몰랐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나마 한 걸음 내 디딜 수 있는 가장 만만한 게 책이었다.


부의 추월차선, 나는 4시간만 일한다,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를 읽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 실행 계획들이 나와있을 줄 알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책들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면 돈을 벌 수 없다고 했다.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다 보면 얻어질 수도 있는 결과가 돈이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날 더 다그쳐야 했다.


돈을 벌고 성공해서 내 가족들이 세상 앞에 떳떳하게 살면 좋겠다는 바램, 더 솔직히 말해보면, 그 누구도 우리 가족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바램을 가졌다. 그 후 난 조급해지고 불행해졌다. 왜 빨리 성공할 수 없는지, 하루를 헛되지 보냈기 때문이지 않느냐며 울부짖었다.


책을 더 읽어야 했다. 책을 읽으면 내 정신이 조금씩 명료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느낌이 좋았다. 더 똑똑해지는 것 같았고, 성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는 듯했다. 난 강해지는 듯했다.


자기 계발서에서 경제경영서로, 경제경영서에서 에세이로, 에세이에서 소설로, 소설에서 인문, 사회, 과학 책으로 조금씩 넓어졌다. 그럴수록 타인의 고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지하철에서 책을 손에 들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조금은 다른 바램이 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돈이면 뭐든 하는 사람보다 더 존중받는 공간, 다른 사람 곁에 서려는 사람이 위에 서려는 사람보다 더 대우받는 공간을 만드는 바램이 있다.


한 사람의 힘은 작다. 그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때 힘을 얻는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다른 사람 곁에 서려는 사람 사이의 느슨한 연대를 꿈꾼다. 그 시작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아무래도 책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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